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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의 유령
이분법의 유령
  • 이중원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3.01.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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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나와 같은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를 싫어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나를 특별대우하지 않으면, 떠나버릴 테다’, ‘나의 흠을 지적하는 것은 곧 나를 반대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볼 때,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으로 어처구니없어 할 말들이다.

어떻게 평등한 사회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는 인간이 그럴 수 있는가라고 혀를 찰지도 모르고,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지도 모른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같은 편이 아니라고 해서 모두 적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흠이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곧 반대나 부정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를 무시하고 누군가가 제왕처럼 오만하게 군림하려 한다면, 분명 아무도 그를 함께 신뢰할 수 있는 이웃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전부 아니면 무.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인간사의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부정 뿐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편 가르기를 통해 대립 구도를 설정함으로써 특정한 반사이익을 얻어내려 한다는 적극적인 부정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대립구도의 설정 자체가 이를 의도했던 자들에게 특정의 이익을 가져다 줬다는 수많은 역사적 경험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상대방을 왜곡하고 그들의 정당한 주장들조차 이데올로기로 포장하며 사람들의 합리적 판단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감성을 자극함으로써, 대립을 위한 대립을 격화시키는 것은 이같은 이분법적 사고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 이 낡은 유령은 죽지 않고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맴도는 수준을 넘어서서 우리의 사고 및 행동을 계속해서 지배하려 한다.
2003년 벽두부터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고 있자면, 이러한 유령의 실재가 실감난다.

그러나 이 역시 더 이상 시대적인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성의 표출과 상호 연결을 통한 쌍방향의 교차검증을 중요한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 디지털 시대. 따라서 다양한 차이들이 차별로 강제되지 않고 인정되며, 그러한 차이들 역시 차이로만 머물지 않고 수많은 네트워크의 접속 및 토론을 거쳐 어떤 공동체적 지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시대.

이 새로운 시대에 우리를 규격화된 이데올로기로 일방적으로 몰고 가는 낡은 이분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모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원`/`편집기획위원·서울시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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