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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눈
역사의 눈
  • 논설위원
  • 승인 2003.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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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참여정부’가 출범했지만, 새로운 정부의 탄생에 걸맞는 격려, 우정어린 비판의 분위기를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개혁 화두를 짊어진 세 번째 민간 정부를 맞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와 얽혀 있어서 그렇다.


북핵과 미국 문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그늘을 에워싼 여야간의 힘겨루기, 권력의 단 맛에 입이 익은 보수 언론의 불쾌감, 그리고 대구지하철참사로 어수선하기만 하다.


김영삼씨가 노태우씨의 바톤을 넘겨받아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10년의 시간은 개혁이라는 테마에 중심 자리를 맞췄다. 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이 정부에 입각했고, 지금도 또 그렇다. 기왕의 교수들의 정권 참여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지난 1992년이래 한국사회의 일급 테제는 개혁이었고, 남북관계 정상화였다. 개혁은 삶의 질적 측면을 겨냥한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빈부문제를 비롯한 경제정의 실현, 갈 데까지 간 지역감정의 폐해 극복, 남녀평등, 새로운 노사문화 창출, 공공성을 강조한 교육 시스템 구축 등이 탐구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의 새 정부가 이러한 과제를 앞에 두고 무슨 대단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서 저 혼자 기발한 박수를 받는 묘책을 내놓는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정당한 공론, 더 잘하라는 비판이 뒤따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왜소한 여당조차도, 발목잡기가 주특기가 돼 버린 거대 야당과 함께 ‘개혁’을 위한 자기 반성과 성찰에는 소홀하기만 하니, 곳곳에서 삐그덕거리는 잡음이 쏟아지는 것이 당연 지사다. 언론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보수 언론은 입으로는 변화를 외치고 있지만, 과거 자신들이 호가호위했던 권력의 부패한 부산물에 길들여져 미몽에 젖어 있다. 출범 직후 보여준, 일부 부처의 수장 인선 과정도 석연치 않다.


대미외교, 대북관계 그리고 내치,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즐비한 때다. 개혁 10년의 시간이 ‘피로’를 가져왔다면, 그것은 개혁의 후유증이라기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개혁이 여전히 필요한 우리 사회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개혁은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여야하고, 이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해관계에 얽매인 시정잡배들의 꼼수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하늘에서, 바다에서 혹은 잠자다가 그렇게 재난을 입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다수 국민들의 믿음에 좌우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은 정쟁으로 국론을 분열, 소모할 때가 아니다. 패륜적이며 소모적인 정치권과 언론, 개발론자들의 자기 학대는 모멸감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개혁의 초심, 동기의 순수성을 확보하고 그것을 확장해 나가는 원칙이 필요하다. 참여정부는 이해관계자들의 얄팍한 속삭임 대신 국민의 지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저 부릅뜬 역사의 눈을 의식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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