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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괴테와의 대화』(요한 페터 에커만 지음, 푸른숲 刊)
[책의 향기]『괴테와의 대화』(요한 페터 에커만 지음, 푸른숲 刊)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1.01.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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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균형과 절제의 미덕

‘괴테와의 대화’는 괴테의 조수였던 에커만이 만년의 괴테와의 대화를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에커만의 기록을 읽다보면, 이처럼 ‘마음속에 평온한 세계를 간직하는’ 조화로운 영혼들이 불과 150여 년 전까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경이롭다. 에커만의 일기가 쓰여진 시대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다고 믿었고, 총명하고 기품 있는 정치가와 과학자가 친교를 나눴고, 무엇보다도 위대함을 식별하는 안목이 있었다.

물론 21세기의 독자가 괴테의 ‘말씀’을 삶의 지침으로 수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괴테가 구현하는 고전주의의 이상들이 우리에겐 부럽지만 누릴 수 없는 것, 감탄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념이란 판단을 거스르기 마련이라는 가정을 내면화해온 세기말적 취향으론 ‘원기 왕성한 사랑이 도덕적인 정신에 의해 부드럽게 완화’돼 ‘충동과 선의’가 서로를 북돋우는 괴테의 세계에서 이물감을 느낄 것이다. 균형과 절제라는 고전주의적 가치를 탈중심의 시대에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는 내내 독자를 괴롭히는 문제다.

괴테 예술론의 건강함과 명료함에 매료되다보면, 당시의 가치를 가져와 현재를 교정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고전을 해체하느라 바빠 정작 읽을 시간이 없는 이들에게: “우리 소인들이 해마다 고전을 읽는 것은 위대함을 마음속에 간직해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고대와 당대의 고전들을 아우르는 괴테의 비평 역시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빼어난 시금석임에 분명하다. 이를테면, 문학의 동료였던 실러에 대해서: “레싱은 최고의 지성이었는데, 그만큼 위대하지 않으면 그에게 진정으로 뭔가를 배울 수 없었네. 설익은 재능을 갖춘 자에게 그는 위험한 존재였지.” 에커만은 괴테의 열렬한 추종자로 친교를 시작하여 절친한 동료가 되었던 인물이다. 혹자는 에커만이 괴테를 돕기 위해 생업을 포기했고 괴테의 만류로 결혼을 연기했다는 이유를 들면서 괴테의 도덕성을 비난하지만, 정작 에커만은 괴테가 “이루지 못할 동경의 가시를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게”까지 배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정아 기자 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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