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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화제] 통권 500권 펴낸 대우학술총서
[출판화제] 통권 500권 펴낸 대우학술총서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1.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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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출판시스템…학술출판 새지평 열다

叢書란 “하나의 주제나 편집방침 아래 저술된, 다른 저자들의 책을 한 데 모은 기획출판물”을 지칭한다. 흔히‘출판의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고전이나 문학․과학․철학 등 특정 분야를 미리 선정하고 기획과 출간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나, 일본의 ‘이와나미’ 신서나 프랑스의 ‘플레야드’ 총서처럼 다양한 학문분야를 망라한 ‘백과전서식’ 총서들도 있다. 여기에 견줄만한 국내의 총서물을 꼽으라면 단연 대우학술총서(이하․대우총서)다. 첫 번째 책‘한국어의 계통’(김방한 지음)이 출간된 것은 지난 1983년. 이달 초 ‘해석의 갈등’(폴 리쾨르 지음)을 출간함으로써 마침내 통권 5백권을 돌파했다. 출판계에서는 “상업성 없는 순수 학술총서로 5백권을 돌파한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 평하기도 한다.

물론 국내에서 ‘총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들은 많다. 학술서를 간행하는 출판사 대부분이 한 두 개씩의 총서물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뚜렷한 편집철학이나 일관된 출판기조 아래 묶여 나온 총서물이 드물다는 점이다. 재원조달도 쉽지 않은데다 학술출판에 필요한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까닭이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대우총서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해진다.

한때 ‘기업과 출판의 행복한 만남’으로 일컬어질 만큼 대우총서의 출판 시스템은 탄탄함을 자랑했다. 재정은 대우재단이, 기획은 한국학술협의회가, 출판은 민음사가 전담하는 형태로 지난 98년까지 16년에 걸쳐 4백21권의 학술서를 펴냈던 것. 물론 지나온 길이 평탄치만은 않았다. IMF 경제위기로 대우재단과 민음사가 결별했던 98년과 모그룹 대우가 부도위기에 처했던 99년, 주변에서는 대우총서의 앞길을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대우총서는 지속됐다. 대우재단이 그룹에서 독립돼 운영되는 비영리법인이었던 탓에 모그룹의 부도에도 불구하고 재단의 재정지원은 중단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논저․연구번역․공동연구의 형태로 재단이 지원한 학술연구는 1천5백여건. 재단이 설립된 81년 66건이 지원된 이래 매년 평균 70여건씩 지원이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총서로 묶여 나온 것이 5백권이니, 앞으로도 1천여건이 책으로 출간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 동안 총서에서 선보인 책들은 다양하다. 분야별로는 인문사회과학 1백24권, 자연과학 1백53권, 번역 1백53권, 공동연구 64권, 자료집 6권 등으로, 이 가운데 상당수가 언어학, 물리학, 화학 등 국내의 연구 인프라가 취약한 기초학문분야의 책들이다. ‘기초․낙후분야 지원을 통해 학문의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대우총서의 출판기조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수상경력도 화려할 뿐만 아니라 스테디셀러도 꾸준히 양산했다. 논저들 가운데는 90년 작고한 故김현 교수의 ‘문학사회학’과 길희성 서강대 교수의 ‘인도철학사’, 최창조 前서울대 교수의 ‘한국의 풍수사상’ 등이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 들뢰즈/가타리의 ‘앙티 오이디푸스’도 독자들이 꾸준히 찾는 번역서들이다.

대우총서에서는 기존의 논저, 공동연구, 번역 시리즈에 더해 ‘고전총서’ 출간을 준비중이다. 올해 안에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와 안셀무스의 ‘모놀로기온’, 헤겔의 ‘신앙과 지식’ 등이 출간된다. 20년 가까이 순수학술출판에 매진해온 대우총서의 실험이 새해에도 변함없는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본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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