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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이리가라이 지음, 동문선 刊)
[깊이읽기]『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이리가라이 지음, 동문선 刊)
  • 고정갑희 / 한신대 영문학
  • 승인 2001.01.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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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지식체계에 던진 도전장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 페미니스트 철학자이며 정신분석가인 뤼스 이리가라이의 ‘하나이지 않은 성’은 우리 사회의 지식 시장을 어떻게 건드리는가? 이 책은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언어심리학과 정신분석을 공부한 이리가라이의 지적 족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캉학파에 소속되었다가 기존의 라캉연구자들과의 격렬한 대립으로 파문당한 그녀의 이력을 반영하고 있다. 기존의 제도나 영역으로부터 파문당하는 개인사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하나이지 않은 성’에서 이리가라이는 자신의 중심 화두인 ‘성적 차이’론을 통해 남근논리에 대한 비판과 여성 욕망의 실현 가능성을 제안한다. 서구 철학의 중심담론들이 성적 차이를 은폐하는 동일성의 논리에 빠져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1970년대의 이리가라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하나의 성(남성, 남근)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한국의 지식 시장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이 목소리는 기성지식인이든 ‘지식게릴라’이든 성차에 입각한 지식의 내용과 시장의 재분배를 과감히 감행하지 않고 여전히 남성적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비출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한다. 현대사에서 여성운동이 시작되고 페미니즘이 소개된지도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차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여성들 사이에서 진행되며 중심 담론의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성과 관련된 지식체계를 문제삼는 성찰이 부족하다는 점은 지식생산의 역사성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 생산이란 무엇을 묻고 묻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 물을 것인가와 관련된다. 이리가라이가 문제삼는 레비 스트로스, 프로이트, 라캉 등의 서구 남성이론가들이 성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다루는 산물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문제삼지 않는다. 이들의 지식 생산은 상징질서가 남성의 것임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리가라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의 관계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하는 것은 지식과 재현의 상징체계에 대한 이리가라이의 진단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상한 나라의 이리가라이가 본 세계는 ‘남성동성애적’ 동일성과 ‘하나의 성’이 지배하는 세계다. 이 곳에서 여자는 추방되거나 실어증을 앓는다. 그리고 남성철학자들의 ‘질료’로 존재하며 남성들 사이의 상품 즉 교환가치로만 존재한다. 사회의 상징계는 실제로는 남성들의 상상계이고 그들만의 환상이다. 그들의 환상이 여자들과 다른 점은 곧 법이 되어버린다는 점에 있다. 여기서 여성의 상상계는 인정되지 않으며 여성은 ‘주체’(남성)가 만든 거울의 파편들 혹은 잉여물들로만 존재한다. 여성의 문화적 신경증과 히스테리는 바로 이러한 거부와 배제에서 출발하는 방어적이고 피학적인 메커니즘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욕망과 쾌락에 대한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여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하는가? 여성 성기인 질의 쾌락이라는 말조차 실은 남성의 쾌락이고 여성의 성기는 남자의 성기의 연장일 뿐인 그래서 남성 욕망의 덮개가 되는 여자의 ‘구멍’(자궁)을 생산한 가부장적 남근논리의 사회, 아버지의 고유명사만이 유통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새로운 공간과 재현체계를 찾을 것인가?이러한 물음과 함께 이리가라이는 자기성애적인 두음순의 언어, 액체의 논리, 오목거울의 촉각을 제안한다. 그녀는 여성의 성기(두음순, 두입술)의 자기 성애를 통해 여성욕망의 새로운 재현체계를 발견한다고 주장한다. 프로이트의 음경과는 달리 둘이 아니면서 하나이지도 않은 두 음순은 너무 가까이 있기에 소유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자신과의 접촉을 통해 자기 성애의 쾌락에 도달한다. 남근이라는 중재자의 침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 두 음순의 마찰을 통해 여성은 자신의 욕망과 언어를 찾을 수 있다.
가시적이고 단단한 형태만을 비추는 남성들의 거울(재현체계)은 거울의 뒷면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리가라이는 여성들의 질을 검사하는 오목거울인 검시경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며, 딱딱함에 의미를 두는 남성들의 고체적인 칸막이(범주, 개념)들을 넘나들 수 있는 비가시적인 액체를 중요시해야 된다고 본다. 우리도 우리 사회의 고체적인 칸막이들의 범주를 가로지르고 넘나드는 액체적인 지식의 장을 열 수 있게 되면 이리가라이의 도전이 지적 실천으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리가라이의 사유가 서구중심적이며 여성들 사이의 차이(계급, 인종 등)를 간과하고 있음은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이론이 유물론적이 아니라거나 몰역사적이라거나 생물학적 본질론이라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음을 이 책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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