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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 <41> 김원룡의 『한국미술사』
[우리시대의 고전] <41> 김원룡의 『한국미술사』
  • 조은정 한남대
  • 승인 2003.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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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정 / 한남대 겸임교수·미술사

 

1968년 출판된 김원룡 교수의 ‘한국미술사’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한국미술사학의 준거점이 되고 있다. 한국미술사를 왕조별로 시대구분하고 이를 토대로 장르별 분류인 조각, 회화, 공예 등을 직조해 가는 방식은 여전히 한국미술사 서술의 기초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자칫 간과할 수 있는 시대를 대표하는 소분류도 소홀히 하지 않아 목차를 통해 한국미술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책은 선사시대, 고구려시대, 백제시대부터 이씨조선시대까지 7장으로 구성되고 그 안에 각 시대의 대표적 미술 장르를 편입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고구려시대는 시대개관에 이어 분묘 및 벽화, 고분관계유물, 사지 및 와당, 불교조각의 5개 절로 이뤄졌다. 이는 한국미술사에서 각 시기마다 중요한 미술 장르를 살펴야 한다는 안목을 제시한 것으로 고려시대 이후는 회화와 서예를 편입시켜 畵師가 등장하고 선비문화가 일궈낸 시대적 미술을 정리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분명 한국미술의 특성을 시대적으로 배열, 재구성한 것으로 서술방식에서 특기할 만한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국미술사 강의의 주 교재로 채택될 수 있는 이유로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한국미술을 대하는 기본에 충실한 점이다. 한국미술의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한국미술사를 시대적 미가 구현된 작품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둘째는 한국미술사의 시대구분을 시공간으로 절단해 시대를 배경으로 미술작품을 들여다보는 시각으로 사회사적 입장에서 미술품의 생산과 유통을 바라보는 발전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는 과거지향적 가치판단이 아니라 새로운 유물의 출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셋째는 미술사의 연구 영역을 확대해 놓았다는 데 있다. 자칫 민속의 영역으로 분류돼 버릴 수 있는 가면이나 공예품, 능묘석물까지 미술사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마지막으로 도자기, 그림, 글씨 등을 골동품에서부터 미술품으로 끌어왔다는 점은, 금전적 가치기준에 휘둘리던 전통미술을 골동 완상의 대상이 아니라 민족의 실체를 알기 위한 연구의 대상으로 확립한 일이었다. 또한 흔히 미술품 앞에서 내뱉는 감탄사를 생략한 주관성이 배제된 글쓰기는 당시로서는 주목할 만한 일로 철저한 객관적 판단을 중시하는 양식사의 접근법을 드러내 보였다.

한국미술의 분류법에서부터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업적을 한 권의 책이 이뤄냈음은 유사한 양식의 책자가 자기 증식했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1973년에 증보개정판이 나오고, 1980년에는 이 책의 축쇄판으로 내용의 정수만을 가려 엮은 ‘한국고미술의 이해’가 발간됐는데 이 책은 가장 널리 한국미술사를 알리는 책자가 되었다. 1994년 안휘준 교수의 참여로 증보된 ‘신판 한국미술사’는 김원룡 교수의 마지막 역작이자 가장 최근의 역량 있는 한국미술사 서적이라 할 수 있다. 1968년의 ‘한국미술사’가 1994년에 이르기까지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아쉬운 점은 한국미술사라는 현재진행형의 미술사를 여전히 조선이 멸망한 1910년까지 한정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미술사를 단절의 상황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오점이다. 또한 한국 미의식의 중심을 조선에 둬 고대세계를 집중 연구하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양식의 ‘쇠퇴’로 보는 시각은 역사와 미술을 보는 안목에서 치명적인 한계점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이는 결국 연구가 축적되지 못한 상태에서 서술된 한국미술사의 한계점이기도 하다.

‘한국미술사’는 1968년 김원룡 교수가 출판한 책이자 오늘날 각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강좌명이기도 하다. 책 후미의 ‘跋’에서는 이 책이 1962년에 구상됐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5·16에 의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민족적 저력을 강조하던 시기에 구상되고 궁극적으로 완전 민족 자립을 주장하며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착실히 진행되던 시기에 이 책은 출판됐다. 시대적 요구에 맞춰 민족적 자긍심 고취라는 면에서 한국미술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하지만 ‘한국미술사’가 동시대를 선도한 이론적 틀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金元龍(1922∼1993)
평북 태천 출생. 호는 三佛. 1945년 경성제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미국 뉴욕대에서 신라토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1년 서울대에 고고인류학과가 창설된 이래 계속 재직하며 후진양성과 연구에 힘썼다. 국립박물관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한국고고학회 및 미술사학회 회장, 서울대 대학원장을 역임했고 모두 58편의 저서 및 발굴보고서와 250여 편의 논문을 남김으로써 해방 이후 불모상태의 한국고고학과 한국미술사 연구를 이끌었다. 주요저서로는 '한국고고학개설' '한국미술사' '한국미의 탐구' '한국벽화고분' '한국미술사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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