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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 『한국 1950 : 전쟁과 평화』(박명림 지음, 나남출판 刊)
깊이읽기 : 『한국 1950 : 전쟁과 평화』(박명림 지음, 나남출판 刊)
  • 김성보 충북대·사학
  • 승인 2003.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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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국제적 전개과정 성찰

탈냉전과 민주화의 시대에 접어들어 한국 학계는 현대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이념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것은 이전의 좌우편향에서 벗어나 균형적인 역사인식을 세우는 과정이며, 학문의 수준에서 본다면 수입학문과 국내고립적 학문의 한계를 벗어나 국제적 시야와 주체적 시각을 겸비한 학문적 성숙의 과정이라고 하겠다. 이 학문적 균형과 성숙의 과정 한 복판에서 우리는 박명림 교수의 한국전쟁 연구성과들을 만나게 된다.

1996년에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Ⅰ·Ⅱ’를 출간한 바 있는 저자는 올해 다시 ‘한국 1950 : 전쟁과 평화’를 출판했다. 전쟁의 기원·전개·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의 3부작 중 제2부작에 해당한다. 저자는 제1부작에서 수정주의 학자들의 전쟁기원론과 전통주의 학자들의 전쟁책임론 모두를 비판하면서 전쟁의 구조적 기원과 권력주체에 의한 전쟁 발발 책임의 문제를 구분하고, 나아가 동태적 대쌍관계의 이론적 틀을 통해 남북한 국가 형성을 균형적으로 고찰한 바 있다. 제2부작에서는 1부작에 이어 ‘6·25’부터 ‘1·4후퇴’까지 6개월간의 전쟁 전개과정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속에서 전쟁·폭력·분단을 넘어 평화·인권·통일을 지향하려는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한국전쟁의 국제적 전개과정 성찰

저자는 한국전쟁을 해방전쟁, 또는 혁명적 내전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다음의 두가지 각도에서 비판한다. 첫째, 전쟁의 폭력성은 그 목적 자체의 정당성을 파괴한다. 전쟁을 혁명의 수단으로 파악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正義의 전쟁’관은 물론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 이해하는 클라우제비츠의 고전적인 명제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둘째, 북한은 전쟁의 명분 중 하나로 남한 농민의 해방을 내세웠으나, 남한에서는 이미 농지개혁이 실행에 옮겨진 상태였으며 북한이 점령기간에 시행한 토지개혁이 남한 정부의 농지개혁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전쟁의 폭력성, 특히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북한 정부 및 미국 어느 쪽도 이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1차 자료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특히 전쟁 초기에 남한 정부에 의해 학살된 보도연맹 가입자들 가운데 좌익경력이 없는 양민이 많았음을 실증한 것은 귀중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또한 황해도 신천의 학살사건은 미군이나 국군이 저지른 게 아니라 좌우익 갈등의 산물임을 밝힌 점도 주목된다.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이념 대립 속에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가 철저히 좌우, 남북으로 분열됐으며 그 속에서 인권, 민족의 가치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전쟁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더불어 이 책의 내용을 채우고 있는 또 다른 한 축은 한국전쟁이 처음부터 국제전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는 한편, 전쟁의 국제적 전개과정과 관련해 기존의 연구들이 안고 있는 오류를 시정하는 데 있다. 38선은 단순한 민족의 분단선이 아니라 세계냉전의 분단선이었으며, 북한·중국·소련은 전쟁 준비 단계부터 이미 미국의 개입에 의해 국제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전쟁 개입과 관련해 몇 가지 기존 학설에 반론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전쟁의 목표·범위·물자동원에서 제한을 두고 있었다는 ‘제한전쟁 이론’은 사실과 어긋난다. 맥아더는 북한의 무조건 항복을 원했으며, 미국이 제한된 전쟁을 펼쳤다면 그것은 중국의 참전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이다. 또한 한국전쟁의 주요국면이 오인의 연속이라는 ‘오인 이론’도 사실과 다르다고 본다. 인천상륙작전은 완벽한 기습이 아니라 이미 북한에 의해 예상된 것이었으며, 중국의 참전도 미국이 전쟁 초기에 예상했다는 지적이다.

토지개혁 관련 북한비판은 세심히 검토해야

저자의 한국전쟁사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한 가지 의문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저자는 토지개혁을 검토하면서 집단적, 폭력적 방식으로 진행되는 혁명적 방식이 점진적 평화적 방식으로 진행되는 자유주의적 개혁보다 바람직하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는 맥락에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며 동시에 인민군에 의한 남한 점령정책을 비판한다. 그러나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 집단적 폭력이 더 심한 쪽은 남한이었다. 혁명의 길을 걸어간 북한에서보다 혁명을 억누른 남한에서 보다 많은 폭력과 충돌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북간, 좌우간 갈등은 극단적으로 증폭돼 전쟁의 한 배경이 되었다. 전쟁 자체는 분명 정당화될 수 없으며 한국전쟁이 처음부터 국제전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도 명확하지만, 그것이 곧 한국전쟁의 내전(civil war)으로서의 성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과학적 분석과 윤리적 성찰의 작업을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 이를 통해 평화·인권·통일시대의 역사인식 정립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김성보 / 충북대·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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