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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로 풀어낸 양띠 교수들
세대별로 풀어낸 양띠 교수들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1.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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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띠라 해서 다 같은 양띠는 아니다. 12년. 그 시간 사이의 간격은 엄연히 존재해 세대를 만들고 변화를 만들어낸다. 계미년을 맞아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1931년생, 1943년생, 1955년생, 그리고 1967년생 등 양띠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궁핍한 피난세대의 학문하기

장한기 동국대 명예교수(연극학), 오현봉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국문학), 최동철 인하대 명예교수(물리학). 모두 1931년 양띠 생들이다. 우리 나라의 연극학을 처음으로 정립한 장한기 교수는 피난대학에서 학문을 한 ‘피난세대’. 8·15 광복의 기쁨과 전란의 참혹함과 피폐함의 혼재 속에서 고교 시절과 대학 생활을 해야했던 세대이다. 정년퇴임까지 38년간을 강단에서 보내고 내년 새로운 소설 집필을 모색 중인 장 교수는 “12살, 24살 어린 후배 교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에 내가 강단에 섰던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다. 제대로 된 연구실은커녕 교수들이 전국적으로 다 해봐야 3백 명밖에 되지 않았던 그 때와 이제 한 대학만 하더라도 당시 전국 숫자를 훌쩍 넘어버리는 지금의 교수사회 규모는 학문1세대라 불리는 이들에게 새로움을 넘어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1943년생과 1955년생. 후속학문세대와 선배의 학문세계를 함께 짊어지고 나가는 한국 학계의 허리에 해당하는 세대들은 어떨까. 분단 역사의 시발점이 된 1945년 6월 25일 전후로 태어난 세대는 어린 시절을 전쟁의 생채기 속에서, 청년기를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 아래에서 맞이하게 된다. 대학 역시 마찬가지. 그 때에는 대학이 많이 설립돼 있지도 못했을 뿐더러 교수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때문에 교수의 위상은 하늘과 같이 높았다고 한다.

1943년 생이자 62학번인 강영계 건국대 교수(철학)는 그 당시를 한 마디로 “개인과 사회의 방향이 상실된 시대였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강 교수는 “지금 대학보다 시설도 훨씬 낙후돼 있었고 분위기도 자유롭지 못했지만 학문을 향한 열정이나 사색은 더욱 폭이 넓고 깊었던 것 같다”라며 자신의 대학시절을 반추한다.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들이 하나둘 함께 강단에 서는 것을 보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이자 보람이지만, 함께 강단에 서고 있는 후배 교수들이나 어린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염려는 마찬가지다. 학문의 폭은 넓어졌으되, 그 생각의 깊이는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 강 교수 이외에도 학계에는 길희성 서강대 교수(종교학), 정순택 목포대 교수(식품생물공학), 박정자 상명대 교수(불문학),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등이 1943년생 양띠 세대를 이룬다.

자신의 제자와 함께 강단에 서서

1955년생 양띠들은 긴급조치 7·9호와 함께 그들의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1975년 5월 13일 발동한 긴급조치 9호는 1호부터 7호까지 그 모든 조치의 내용을 하나로 집대성해 선포한 것으로 이로 인해 각 대학에는 휴업령이 내려졌고, 그 결과 이들의 첫 학기는 한 달만에 막을 내리고 만다. 수업보다는 계속되는 시위와 자욱한 연기 냄새와 함께 시작해야 했던 대학생활은 임철우 한신대 교수(문예창작학과)의 장편소설 ‘봄날’에서도 잘 드러난다. 눈을 뜨면 선배들이 잡혀가고 또다시 취루탄과 투쟁가 소리로 뒤덮인 채 하루를 마무리하는 대학의 모습은 다름 아닌 이들 세대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75학번이었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정치학)는 “학부 때 전공은 행정학이었지만, 공부를 계속 하게 되면서 정치 분야로 전공을 바꾸게 됐다. 알게 모르게 시대가 건네 준 비판적 의식이 영향을 미친 듯 하다”라고 말한다. 김창희 전북대 교수(정치외교학), 김창수 부산대 교수(무역학), 서지학회와 한국도서관협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강순애 한성대 교수(지식정보학) 등도 ‘긴급조치 9호’ 세대인 양띠 교수들.

학문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스승이 한없이 높아 보였던’ 불과 30년 전의 모습과 비교한다면 1967년생 최윤정 충북대 교수(주거환경소비자학)의 신년 바람은 이상할지도 모른다. 최 교수의 신년 바람은 “학생들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것”. 통기타와 포크송, 장발, 그리고 생맥주. 대학문화에 있어 낭만의 시대로 불리는 세대라 그럴까. 비록 이전 세대들의 최루탄 냄새는 85학번 386 세대로 불리는 이들 세대에서도 가시지 않았지만 예전의 세대와는 다른 여유가 느껴진다. 아직 가야 할 학문의 길이 더 많이 남아있는 젊은 세대라 자신의 연구와 학생들에 대한 가르침의 욕심 모두 대단한 것도 이들 세대가 가지고 있는 일면이라 할 수 있다.

학문의 방향과 하고자 하는 바는 다를 지 몰라도 새로운 한 해 바라는 마음은 하나다. 좋은 연구와 강의로 인정받는 것. 강 교수는 여기에 “새 정부에 걸맞는 교육대통령”과 “교수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한 양적 업적 평가 개선”을, 최 교수는 “대학의 자율화”와 “자신의 건강지키기”도 계미년의 바람으로 내놓는다. 시간의 차이만큼 다르게 보이지만, 온화하며 인내심 많은 하지만 무언가 몰입할 때에는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양의 성질은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길몽의 상징인 ‘양’의 행운이 올 한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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