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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변천사
광화문의 변천사
  • 교수신문
  • 승인 2003.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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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은 세조 4년인 1395년 건립됐다. 당시에는 ‘이 문을 닫아서는 괴이한 말을 하는 부정한 백성을 거절하고, 이 문을 열어서는 사방의 어진 이를 오게 하리니 이것이 다 바르고 큰 것’이라는 뜻에서 ‘午門’이라 지었는데, 세조 때 ‘光化門’으로 바뀌었다.

당시에도 서울의 중심지였던 광화문 사거리는 운종가, 경희궁, 돈의문∼서대문, 경복궁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중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육조거리’라 불렀다. 육조거리 좌측에는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 기로소가, 우측으로는 예조, 병조, 사헌부, 형조, 공조, 장예원이 줄지어 있었다. 이 거리는 왕족이나 고관이 아니면 드나들지 못했고, 따라서 일반 백성들은 뒷골목에 형성된 ‘피맛골’로 모여들었다. ‘피맛골’은 지금의 종로 뒤편이다.

광화문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때 중건된 적이 있으며, 이후 1927년에는 일제가 조선 총독부를 짓는다는 명목으로 건춘문 뒤로 옮겼다. 이조차 6·25 전쟁으로 인해 불에 타서 석축만 남았다가 1968년 복원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광화문은 아직 완전히 복원되지 않았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추느라 축의 방향을 3.5°동향으로 틀어 놓았으며, 석축 위의 2층짜리 문루는 목조가 아니라 목조를 흉내낸 콘크리트이다.
광화문 한편에는 미국의 잔재가, 다른 한편에는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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