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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2001년 ‘지역문화의 해’- (1) 지역문화의 개념과 의미
[특집기획] 2001년 ‘지역문화의 해’- (1) 지역문화의 개념과 의미
  • 교수신문
  • 승인 200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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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17 11:13:26
제1세계의 식민지와 서울의 半식민지에서 벗어나기

김승환 / 충북대·국문학

남한 정부는 2001년을 ‘지역문화의 해’로 설정했다.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믿는다. 2001년의 속도에 맞추어 곧바로 논의의 핵심으로 지쳐 들어가자. 地域文化란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가? 있다. 지역문화는 지역과 문화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지역의 문화다. 여기까지는 간단하다. 즉, 어떤 공간의 문화 전체를 지역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때의 공간은 기하학적인 도형개념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이렇듯 지역문화는 어떤 공간 속의 삶의 총체인 문화 전체를 일컫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엔 역사성도 포함돼 있고 생존과 생활의 모든 것이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까지 아우르고 있다.

‘지역’은 중심해체의 의지

이렇듯 지역문화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며 특징적이면서 보편적인 개념으로 쓰인다. 그런데 이 지역문화는 완성돼 있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이 정립돼 가는 과정의 개념이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regional culture’이지만, 지역문화는 그런 차원에서 이해되기보다는 역사적인 차원에서 남한 사회의 사회사적 변혁을 반영하는 개념으로 이해돼야 한다. 이 때 유의할 것은 지방이라고 하는 京鄕의 이분법적 어휘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지방문화’ 대신 ‘지역문화’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용어 차이를 넘어 거기에 담겨 있는 역사성과 사상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봉건시대의 鄕土나 地方을 배제하려는 것은 이유가 있다. 앞의 용어들은 중앙과 지방을 이분화하는 봉건적 개념이며 중앙권력의 독점과 지배를 용인하는 전근대적 개념이다. 지금까지 권력의 독점은 지방인들의 삶을 제한하고 지배하는 부정적인 기능을 해 왔다. 따라서 봉건적 개념인 지방문화를 거부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간의 민주화 과정이 얻어낸 果實이며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는 눈물서린 성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지역문화는 문화의 독점과 배타성 그리고 중앙집권을 해체하려는 강한 의지로서 새롭게 대두한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 역시 하나의 지역임을 겸허하게 인정하라는 강력한 의지를 담아서 지역문화라는 개념을 채택했다.
자, 이번에는 더 깊이 미분해 들어가 보자. 지역은 地와 域의 합성어이고 문화는 文과 化의 합성어다. 풀어 보면 “땅의 어떤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상과 감정을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는 일”이라고 다소 어렵게 풀이할 수 있다. 이것은 정태적 개념이니 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이해한다면 또 다시 “삶의 총체”로 결론이 난다. 그렇다면 지역문화는 “지역인들의 삶의 총체”라고 환원해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화는 문학이라든가 미술 등 표현예술이 중심에 놓이면서 큰 영역을 이루는 한편, 철학이나 역사학 등의 학문에 의해서 견인돼 간다. 따라서 표현예술 뿐 아니라 인간의 지성과 감정들의 품격을 높이는 활동 전반이 곧 문화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념과 의미에 대한 논의를 줄이고 이번에는 남한의 지역문화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현재 남한의 문화는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 민족의 전통문화를 긍정적으로 근대화하지도 못했고 서양 문화의 훌륭한 점을 올바로 수용하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이식·천민·상업주의 문화다. 근대화의 길을 걸으면서 외래문화를 강제로 이식한 결과 移植文化의 속성을 가지게 됐고, 품격이나 인간다움을 상실해 마구잡이 천민 문화로 드러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자본주의 가치로 재단하는 장사꾼 기질이 횡행하고 있다. 이러한 민족문화의 왜곡은 분단체제로 인해 더욱 심각해져서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비문화적인 요소들이 문화예술을 심각하게 유린한 결과 무국적의 백화점식 문화가 만연해 있다. 이것은 식민지 근대화의 과정에서 移植文化로 인해서 전통을 상실한 수난상이며 본질적으로 왜곡된 우리 문화의 자화상이다. 특히 반식민지 체제 하에서 경제와 권력의 독점으로 인해 지역문화는 더욱 극심한 파괴와 수탈을 겪었고 세계사적 변화와 아울러 자본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지역문화는 자본의 약탈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한마디로 지역문화는 제1세계 문화제국주의의 식민지인 동시에 자기를 중심이라고 오판하고 있는 서울문화권력의 반식민지라는 이중의 모순에 놓여 있다. 세계화라는 假面을 쓰고 있는 野獸 신자유주의가 전세계를 시장으로 간주하고 이윤을 찾아서 문화의 상품화를 가속화시키고 있음을 보라. 그 틈바구니에서 제1세계와 중심의 문화권력자들이 지역문화를 토속 취미나 신비 취향을 만족시키는 대상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참담하다. 지역문화는 영원한 弔鐘을 울리고 말았는가!
그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지역간의 문화적 불균등이 치유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러 있다는 점이다. 특히 스스로를 중앙이라고 오판하는 오만한 서울중심문화와 토속적이고 전통적이라고 오해받고 있는 지역주변문화가 확연한 이분법의 틀로써 정형화돼 있음은 모두 다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이것은 잘못이다.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 거기 새로운 개념의 ‘지역문화’가 있다. 지역문화는 ‘문화에 위계서열화는 없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지역의 문화상품화를 경계하며

이 의식의 지향성은 문화의 독점을 해체하라는 요청과 함께 문화권력의 부당성을 강력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역문화는 각 지역 간의 문화적 불균등을 해소하고 모든 지역이 평등한 인간주의 아래 존재해야 한다는 의의를 실현하는 것인 동시에 문화예술의 독점을 해체하고 모든 지역이 독자적인 생명체로 존재하면서 상호관계 속에서 민족문화를 이룩하자는 변혁운동인 것이다. 지역문화는 또한 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국가 체제 속에서 인간주의를 내걸고 진실한 삶과 아름다운 생존을 위한 헌걸찬 전망을 걸어가는 것이다.
말을 아끼자. 자, 지역문화를 위해서 진심의 기도를 드리자.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이 그리워/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인 ‘마음의 지역’을 위해 우리 진실의 정수박이에 샘물을 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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