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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광화문을 움직였나
무엇이 광화문을 움직였나
  • 교수신문
  • 승인 2003.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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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세종로는 통치의 거리였다. 쉽게 말해서 권력을 쥔 자들이 권력을 과시하는 거리였던 것이다. 세종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앞에 들어섰던 것과 연관이 있다. 물론 조선조에도 세종로의 전신인 육조거리는 분명히 통치의 거리였지만, 말 그대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바뀐 것은 일제에 의해서이다.

일제가 쫓겨간 뒤에도 세종로는 여전히 통치의 거리로 남았다. 청와대를 가운데에 두고 오른쪽으로는 정부종합청사가, 왼쪽으로는 미 대사관이 자리잡게 된 결과였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강력한 통치기관들이 이곳에 모두 몰려 있으니 이곳이 통치의 거리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세종로는 여전히 통치의 거리이다. 이 길에서 우리는 순찰을 돌고 있는 전경들을 언제나 볼 수 있다. 지하도의 입구에서도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전경들을 언제나 볼 수 있다. 미 대사관 옆 길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서도 언제나 볼썽사나운 경찰 버스들과 마찬가지로 볼썽사나운 전경의 무리들을 볼 수 있다. 한심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이곳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 물결을 일으킨 것은 다름아닌 지난 6월의 ‘붉은 악마’였다. 이곳에 모여 월드컵을 함께 보며 응원하자는 ‘붉은 악마’의 제의에 수많은 시민들이 호응했고, 이렇게 해서 세종로는 졸지에 통치의 거리에서 시민의 거리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12월이 돼 ‘살인 미군 무죄재판쇼’에 분노한 시민들이 다시 세종로에 모여서 미군의 행태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정말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세종로의 변화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민주화의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는 시민의 권리를 크게 강화시켰다. 세종로는 여전히 통치의 거리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통치세력이 독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시민이 세종로라는 공간적 중심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이 공간적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근대적 민주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예컨대 서구의 도시들은 그 중심에 대표적인 문화시설들이 자리잡고 있다. 시청 앞에는 보통 광장이 만들어져 있으며, 이 광장은 시민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곳이자 다른 시민들과 어울려 노는 곳으로 이용된다. 이런 점에서 세종로의 변화는 ‘공간의 민주화’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민주화의 동력은 두 곳에서 왔다. 하나는 주체적인 면으로 이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이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가리킨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움을 벌인 결과가 바로 민주화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서 다른 동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객관적인 면으로 무엇보다 고도성장을 가리킨다. 이것도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애써서 이룩한 놀라운 사회적 성과이다. 그리고 이 성과는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구와 욕망체계의 변화를 가져오고 나아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 놓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도성장과 함께 문화적 다양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고도성장은 이런 문화적 변화를 통해 민주화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붉은 악마’의 등장, 그리고 세종로라는 ‘공간의 민주화’는 이러한 문화적 다양화의 중요한 양상이다. 고도성장은 단순한 물질적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바탕을 둔 거대한 사회적 변화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 점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세종로의 변화는 지난 30년을 지나며 한국 사회가 이룩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공간적 징후 혹은 지표이다. 불행하게도 정치인과 정부는 이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세력들은 결국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홍성태 / 상지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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