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1:45 (목)
2002 학술담론 결산 : 올 한해 우리 학계의 주요 흐름을 정리한다
2002 학술담론 결산 : 올 한해 우리 학계의 주요 흐름을 정리한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1.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 한해 학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월드컵 열풍과 반미 질풍으로 사회 분위기가 냉온탕을 오락가락했고, 노풍, 정풍, 텔레비전 대선토론회는 정치의 한복판으로 국민들을 끌어당겼다. 부시 외풍이 북한을 압박하면서 남한까지 한기를 뿜어냈고, 정부의 동북아 구상은 극심한 찬반의 회오리를 일으켰다. 사회 이슈들의 덩치가 워낙 압도적이라, 이와 연관된 학술담론이 많이 생겨났다. 이런 와중에도 역사학계의 친일청산, 정치사회학계의 민주주의론 전면재검토, 지역주의 연구, 학문세대교체와 선학 비판적으로 넘어서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논쟁의 주제는 지난해와 달랐지만 지식인들의 화두는 여전히 ‘권력’과 ‘폭력’에 머물렀다.
자연과학계는 생명윤리법 제정을 둘러싼 대규모 논란과 이공계 위기감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학술적으로 질 높은 연구성과를 내는 등 일희일비를 그렸다.

역사 문학
친일청산과 문학권력 논란

친일청산이 역사학자, 국문학자들 중심으로 연초부터 목소리를 높였다. 올 2월 일부 국회의원과 광복회가 친일 주요인사 7백8명의 명단을 공개해 정국이 흥분됐고, 이어 ‘실천문학’이 최남선, 서정주 등 42명의 친일문인 명단을 공개해 이른바 ‘역사의 죄인’들이 모두 국민의 심판대에 섰다. 역사, 국문학계는 이런 분위기를 적극 수용해 ‘친일’을 학문적 청산 대상으로 공고히 다져나갔다. 김재용 원광대 교수는 서정주, 최남선, 이광수의 친일문학은 “친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논리가 드러난 작품”이라며 그 자발성과 내적 원리를 주장했고,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친일세력을 민족의 자주성을 부인한 세력으로 규정, 이에 대한 학문적 분석을 심화할 것”을 주문했다. 정근식 전남대 교수는 “과거 청산 문제는 민주주의로의 이행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조속한 평가가 시급하다”는 논리를 보여줬다. 반면 안병직 서울대 교수는 “친일청산은 아직 때 이르며, 정치적·도덕적 관점에서 접근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나서 논쟁이 벌어졌다. 안 교수는 “독일 나치시대 일상사 연구에서 보듯 식민지 시대에 대한 긍정적 경험”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고, 최갑수 서울대 교수는 “과거 책임을 묻는 것을 일상사와 연결시킬 수 없다”며 반론했다. 이에 윤해동 서울대 강사는 “수치와 부끄러움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정치, 도덕적 책임 추궁은 폭력”이라며 안 교수의 논지를 뒷받침했다. 수구언론의 친일세력 비호와 학계의 신중론이 겹쳐 친일청산은 초반의 여세에 비해 흐지부지된 측면이 있었다. 임헌영 중앙대 교수는 “상황론, 재능론, 업적론, 식민지 근대화론 등 물타기 논리가 성행한다”면서 개탄했다.
한편 한국 자본주의 발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층위에서, 하드웨어적 근대의 성장 드라이브를 식민지의 제도적 여건이 제공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을 비판계승한 내재적 발전론이 재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상호간 깊은 인식차이만 확인했고, 기존 논의를 맴도는 감이 있었다.
역사학계의 또 하나의 화제는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춰 출간된 국정교과서와 검인정 근현대사교과서를 둘러싼 논의들이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일부 언론들이 현정부를 미화했다고 공격에 나섰고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으나, 학자들은 이런 언론보도가 과장됐다는 태도를 보여줬다. 이어 새 교과서의 역사관, 역사기술방법, 내용의 수준에 논의가 대대적으로 집중됐다. 민족중심 역사해석의 잔재가 아직 많은 반면 분류사 서술의 참신성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검인정제에 정부가 너무 개입하고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할 과제로 제시됐다.
한편 문학계에서는 지난해 문학권력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젊은 문학평론가들이 공치사 비평을 논박한 글을 모은 ‘주례사비평을 넘어서’를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후속 대응이 미진했다. ‘창작과비평’ 지면에서는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이 재연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황종연 동국대 교수, 임규찬 성공회대 교수,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등이 논쟁자로 나서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사이에 놓인 세계관의 근본적인 대립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새로운 리얼리즘의 미학의 필요성과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대립 관계가 아니라 “언제나 의존해야 할 타자”로 대화가 오갔다는 점은 성과로 보인다.
그 외 올해는 1950년대 초 출범한 역사학회와 국어국문학회가 50주년을 맞아 각각 대규모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과의 정체성, 학문의 방법론 등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엄숙한 자리에서 역사학회는 탈국수주의적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국문학계는 세계화시대를 맞아 국문학의 경계짓기를 다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철학
들뢰즈 논쟁과 인문콘텐츠학회 발족

철학계에서는 동양철학 열풍이 잠잠해진 가운데 간헐적으로 학자들간 논쟁이 이어졌다. 들뢰즈 이론 수입을 둘러싼 논전이 벌어졌고, 칸트철학의 불교이해를 두고 한자경 이화여대 교수와 김진 울산대 교수가 입씨름이 벌였는가 하면, 연말에는 비판철학회에서 열암 박종홍 철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자리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들뢰즈 논쟁은 “들뢰즈-가타리는 反파시즘의 탈을 쓴 파시스트”라는 이종영 ‘진보평론’ 편집위원의 글에서 촉발됐다. 반론자로 나선 김재인 서울대 강사는 들뢰즈 원전 이해조차 되지 않는 상태에서 논지를 왜곡시켰다며 한국의 들뢰즈 수용 자체가 피상적 수준에 머문다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 논쟁이 벌어진 후 ‘노마디즘’, ‘들뢰즈와 문학-기계’ 등 들뢰즈 해석서들이 줄을 이어 한국의 들뢰즈 수용이 본격화했다는 느낌을 줬다.
김진-한자경 논쟁은 칸트·불교 연구자의 불꽃 논전이었다. 김 교수는 칸트의 시각에서 불교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방법론적 시도를 펼쳤고, 한 교수는 불교와 칸트 철학이 인간 이해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김 교수의 기독교적 관점이 문제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 논쟁은 골 깊은 관점 차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 아쉬움을 남겼다.
올 11월 발족한 인문콘텐츠학회는 철학, 역사, 문학을 세 꼭지점으로 디지털시대의 인문콘텐츠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디지털내용물 관련 여러 정책 및 사업들이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사명감을 안고 발족한 이 학회는 소재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문화생산자들과 인문학의 사회적 영역을 확보하자는 인문학자들의 조우가 인상적이었다.

정치사회
중진들 대거 퇴장과 반미 담론 확산

정치사회 분야는 사회과학계 중진학자들의 대거 은퇴, 반미 담론 확산 속 북한학 세미나 활발, 문부식 발언 둘러싼 민주화운동 등 사회의 제반 폭력성 성찰, 지역공동체·참여사회·소수자 연대 논의 담론화 조짐, 노풍·정풍 이후 민주주의론의 급부상, 외국인 노동자 등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 국내 맑시스트들의 학술축제 정례화를 선언한 ‘맑스 코뮤날레’ 구성, 동북아 물류기지국 구상에 대한 찬반 논의 등이 주요 이슈였다.
김경동(사회학), 김용구(외교학), 김진균(사회학), 백낙청(영문학), 신용하(사회학), 정진홍(종교학) 교수(이상 서울대), 임희섭(사회학, 고려대), 송복(사회학, 연세대), 이상우(정치외교학, 서강대), 김인희(교육학, 연세대) 교수 등이 강단을 떠나면서 학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이들은 1950년대 후반에 대학에 입학해 재학 중 4·19 혁명을 겪은 세대로 각 분야에서 근대적 학문의 방법론을 수립한 세대였고, 1970~80년대 민중·민족주의 이론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한 이들이다. 특히 사회학 분야는 지각변동이 유난히 두드러졌고, 송복·이상우 교수 등 소신파 보수논객의 퇴장도 진보진영과 대비해서 눈에 들어왔다.
‘사회비평’은 2002년 여름호에 ‘왜 미국에 부역하는가’라는 특집을 마련해 우리나라 친미 지식인 군상의 면모를 짚고, 미국이익에 봉사하는 한국언론의 부끄러운 현실을 점검했다. 특히 여중생 압사사건 이후 미국의 군사주의와 기지촌 여성문제에 대한 좌담회가 열리고, 교수7단체 시국선언 등 어지러운 속에서 반미 담론이 확산됐다. 이와 함께 새로운 동북아 질서 속에서 북한과의 관계, 북한을 보는 시각, 북한학의 방법론 정립을 위한 학술세미나들이 줄을 이어서 일정한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20년 전 미문화원 방화 사건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폭력성을 반성적으로 성찰한 문부식 당대비평 주간의 발언 때문에 민주주의 인사들 사이에서 북새통 같은 논전이 펼쳐졌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김진호 당대비평 편집위원, 김진석 인하대 교수 등이 논객으로 참여, 저항운동의 폭력성을 성찰했고, 이것이 학계의 ‘파시즘 논쟁’으로 불붙었다. 찬반 격론을 벌였지만, 결론은 극우적 정권이 발호하는 상황에서, 우리 안의 파시즘을 경계하는 것은 거대 국가파시즘을 두둔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고, 그런 논의가 자유주의 보수담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나눠갖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언제 심근경색을 맞을 지 모르는 우리사회의 중앙집중화를 비판하고 지역사회, 문화의 활로와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는 특집들이 계간지 ‘전통과현대’ ‘사회와이론’ ‘비평’ 등에서 연속적으로 다뤄졌지만 예년의 톤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 기타 인권문제와 함께 자기 반성적으로 논의돼 한국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구조를 드러내는 데 일조했다. ‘창작과비평’은 봄, 여름호에 걸쳐서 동북아 신질서를 전망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의 국제정치 속에서의 한국, 동북아시아와 일본의 화해 문제가 다뤄졌고, ‘오늘의 문예비평’에서는 동북아공동체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특별좌담이 열리기도 했다.
그 외에 학술진흥재단의 학술지 평가를 두고 본격적인 비판이 제기돼 학술권력의 문제점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학자들을 감쌌다. 계간 ‘사회비평’ 겨울호에서 장덕현 부산대 교수는 “형식만 갖춘 학술 논문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여기에 기계적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현행 학술진흥재단의 논문평가방식이 자유로운 글쓰기를 제약하고 나아가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단 학진 뿐만 아니라 연세대 마광수 교수에 대한 재임용 탈락 결정도 이런 왜곡된 논문평가 방식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어, 학계에 만연한 형식주의적이고 엄숙주의적인 경향이 문제로 떠올랐다.

문화

2002 월드컵은 스포츠를 민족-국가-자본주의와 연결시키던 기존의 단선적, 이론적 시각을 개방하고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계간지 특집호로 바통을 이어받던 월드컵 논의는 처음에는 사건사적 분석을 통해 국가 정체성 형성, 군부 이데올로기의 전파, 인종차별, 거대자본의 형성 등 월드컵의 빛과 그림자를 경계하던 논의로 출발했다가, 어느새 잠복했던 시대의 내면성을 드러낸 사건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으로 발빠르게 나아갔다.
10대와 여성 등 억눌린 열정이 배출된 것으로서 집단응원에 대한 분석, 현대스포츠에서의 수용자의 자발성, 노사모와 연결시켜 탈정치화됐던 대중의 자발적 공동체 구축에 대한 평가와 이것을 진보적 정치세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리고 포스트-월드컵의 정치경제학적 전망이 제시됐다. 월드컵 특수에 탄력 받은 경제논리가 다시 이 사회를 휩쓸 것이라는 우려, 10~20대에 대한 수구세력의 활용을 견제해야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연과학
생명복제 논란과 이공계 위기감 확산

올해 과학계 최대 논쟁거리는 생명윤리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 이후 생명공학은 급격한 발전을 거듭해 인간 복제까지도 가시권에 두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 예고하고 구체적인 법제화 작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9월이지만 학계의 논쟁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에 의료윤리교육학회가, 1998년에 생명윤리학회가, 올해 초에 임상연구심의기구협의회가 각각 설립됐고 지난 11월에는 아시아 생명윤리회의가 서울에서 열릴 정도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져 왔다. 법제화 과정의 쟁점은 배아복제의 허용 여부. 국내에서는 2000년 중반부터 배아간세포 연구, 치료용 배아복제, 동물장기를 이용한 인공장기 생산 등 배아복제 관련 연구가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과학계에서는 배아복제 연구의 허용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배아의 배양과 파괴가 필수적이고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반발의 거셌다. 현재 입법(안)은 원칙적으로 체세포 핵이식을 금지하되 현재 진행중인 연구에 대해서는 예외규정을 허용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드물게 인문, 과학,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여해 논쟁을 벌인 사안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제기된 ‘이공계 위기설’은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듯 하다. 2001년이 인문학 위기설로 한해를 지났다면 올해는 이공계 위기설이 휩쓴 해. 학부제 이후 한파를 맞은 것은 인문학만이 아니었다. 자식에게 야단을 치면 오히려 “아빠, 그러면 나, 공대 갈 거야”라며 협박했다는 한 연구소장의 고백이 위기의 단면을 반영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자에 대한 물질적·사회적 보상 부족, 기초학문에 대한 홀대, 대학원 교육의 부실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 와중에 지난 9월 석박사 이공계 대학원생 등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조직한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 이공계 대학원생 4백18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는 충격적이었다. 이공계의 연구자들이 당면한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됐기 때문이다. ‘연구외적 업무 중 업무량이 가장 많은 것을 골라 달라’는 설문에 대학원생들 36%(153명)가 ‘프로젝트와 관련된 부수적 관리 업무(영수증 정리, 공문 등 서류처리, 회계정산 관리 등)’를 꼽아 대학원 교육의 관행화된 문제점을 보였으며, 38%(161명)의 응답자가 ‘대학원생의 학비, 생활비 지원’을 연구 질 개선책으로 가장 많이 내세워,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이 시급함을 촉구했다. 대학과 대학원 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움직임이었던 셈.
정부의 해외유학장려책에 대한 반발도 같은 맥락에 서있다. 정부 기획예산처가 내년 예산 3백억원을 이공계 출신 유학생 1천명에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학계에서는 반가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해외유학장려책이 오히려 두뇌유출과 국내 이공계 대학원의 황폐화를 야기시킨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과학 기타
해외 권위지 등재 논문 급증 등 연구질 향상

‘이공계 위기’라는 현실 진단은 그간 과학과 기술에 대해 사회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였다는 반성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과학문화’라는 말이 유행처럼 시작되고, 과학 대중화 사업이 두드러진 흐름으로 나타났다. 2000년에 발족한 과학문화연구센터가 ‘과학문화’의 개념 정리에서 비롯해 학제간 연구를 통해 과학문화 형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동시에, 대중들을 겨냥한 각종 학술행사가 이어졌다. 50회를 맞은 물리학회가 노벨상 수상자 초청 강연을 벌이고, 과학문화재단이 지속적인 대중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그 예다. 동시에 과학 대중서 출간도 붐을 이뤘다. ‘나노기술이 미래를 바꾼다, ‘21세기를 지배하는 10대 공학기술’, ‘세계가 놀란 한국 핵심산업기술’, ‘과학, 그 위대한 호기심’ 등 전문적인 과학 기술을 평이하게 하게 서술해 대중과의 만남을 시도한 책부터 ‘이인식의 과학생각’과 같은 과학칼럼, ‘과학 종교 윤리의 대화’ 등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을 주선한 책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대열에 합류했다.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을 때, 이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열 손가락을 꼽는다고 했을 정도로 문외한들을 소외시키고 전문가주의의 벽을 쌓아왔던 과학이 이제는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학계의 외적 성장은 부인할 수 없다. 우선 대규모 국제학술대회를 연이어 개최함으로써 한국과학계의 위상을 확인했다. 한민족 과학자 네트워크, 세계생태학대회, 원자로물리학술대회 등 굵직굵직한 학술 행사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SCI급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과학자들의 소식도 연이어 들렸다.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해외 유명저널에 논문이 실리는 것은 화제였으나, 지금은 횟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SCI급 논문이라는 기준이 학자의 연구업적을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다. 지난 5월 우리 신문은 SCI가 교수 업적 평가의 절대적인 잣대로 적용돼서는 안 된다고 문제제기했다(제224호 참조). SCI(과학분야), AHCI(인문예술분야), SSCI(사회과학분야) 모두 ISI사가 제시하는 저명학술지 목록인 까닭에, 이것만으로 과학계의 발전 또는 과학자 개인의 연구 성과를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수준이 국제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 같다. 국내 연구기반의 부실함을 생각한다면, 과학계가 부른 쾌재이기도 하다.
뒤돌아보면 지난 한해는 위기설과 긍정론이 뒤엉켰던, 그리고 과학계가 스스로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굳이 평가를 시도한다면, 문제해결의 탈출구를 찾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아직 과학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속시원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아직 ‘문제제기’와 ‘문제해결’이란 두 꼭지점 사이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남은 과제는 이 문제들을 정체시키지 않고 치열하게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