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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정책의 조급증
문화예술정책의 조급증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17.10.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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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예산이 많이 깎였어요.” 요즘에 문화단체나 미술전시장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도, 시의 지원금이 삭감됐다는 푸념과 씁쓸한 뒷말들이 유난히 많아졌다. 사연인즉슨, 언론에도 익히 보도가 됐듯이 지난 문화관광체육부의 자유분방한 예산편성과 사용 여파로 예산이 대폭 감축돼 그동안도 별반 나랏돈의 혜택을 누리지 못해왔던 ‘무고한’ 각종 문화예술단체들이 올 하반기에는 더욱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언론에 천문학적 숫자로 등장했던 문화예술기금의 소위 갑들과는 거리가 먼 을들 이야기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N포세대가 우리 사회전반의 문제이긴 하지만, 예술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나이 사십이 넘도록 자의가 아니라,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혼집’(엄밀히 말해 ‘혼방’ 혹은 ‘혼실’)에서 ‘혼밥’ 먹고 홀로 사는 제자들과 미술인들이 주위에 많다보니 이에 대한 체감온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긴 대학졸업 후 단기간 내 국가경제 이익창출에 별 효용가치가 없는 문화예술관련 전공자들을 줄이고, 공학 등 ‘쓸모 있는’ 분야 학생들을 적극 양성하는 대학들을 선정해 국비지원을 몰아주는 것이 국가정책이었다 보니, 별로 ‘쓸모없는’ 예술대학 교원들의 입지도 아울러서 새우등처럼 쭈그러들고 있다.

“우리가 과학과 공학과 경제를 양성하는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가치와 이념을 대변하는 문화와 예술을 수호하기 위해서다.” 학위졸업식 때 ‘남북전쟁 The Civil War’을 비롯한 다큐멘터리 영상제작으로 잘 알려진 켄 번즈(Ken Burns)가 해 준 말이다. 수년 후 참석한 다음 학위식 때 초청연사였던 소설가, 톰 클랜시(Tom Clancy)의 강연은 한 단어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켄 번즈의 열변을 지금도 회상하는 것은 그의 말에 대한 수천 명 청중들의 반응 때문이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야외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졸업식에 청중들은 빠른 종료를 고대하며 심드렁하게 앉아있는 듯 했건만, 갑자기 이 말에 일제히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친 것이다. “이 사회가 역사, 문화예술, 윤리를 가르치지 않으면, 급변하는 과학과 공학과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우리는 현재 어디에 있고, 앞으로 어디로 향해 갈지 알 수 없다”는 그의 요지에 열렬한 호응과 지지를 보낸 군중들이 잊히지 않는다.

오늘 강단에서 예술전공생들에게 같은 말을 해 줄 수 있을지, 이 전공은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먼 시대에도 살아남을 직종이라는 말 몇 마디로 격려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요새 파급력이 큰 대중매체들을 비롯해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인문학강좌와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세금으로 운용되는 무수한 지역 문화예술축제, 국내외 전시지원, 작가지원 등은 대부분 장기적인 문화예술정책과 작가 양성보다는,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는 단발성, 일회성, 행사성 정책에 소비되고 있다. 사회 도처에 자리한 ‘빨리빨리’ 조급증의 행정주의적, 성과중심적 정책에 많은 유망한 문화예술인들이 새우등처럼 쭈그러들었다.

나라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세계 국가 문화예술의 총집합체인 워싱턴 DC 소재의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수년간 연구하면서, 각국의 전시 배후에 있는 문화예술정책을 직시하게 됐다. 안타까운 점은 자국의 문화예술자산의 경제적·산업적 가치를 일찍이 파악하고 이를 국제무대에서 자본화하기에 영악할 정도로 능숙해진 국가들 사이에서 우리는 단발성 성과주의와 그 성과의 국내홍보에 급급한 것이다. 그들은 문화예술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십수년 이상 동일인물에게 국공립 기관의 단체장과 전문직을 맡기는데, 우리는 2,3년마다, 심지어 매년 담당자를 교체한다. 전문성을 키우는 대신 단기간 내 가시적 업적쌓기에 연연한다면, 거시적인 문화정책은 새우 눈에 비친 고래 등인 셈이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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