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연구’를 다시 생각한다
‘인문학 연구’를 다시 생각한다
  • 남송우 논설위원/부경대·국문학
  • 승인 2017.10.2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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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남송우 논설위원/부경대·국문학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학의 인문학과들이 위축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다. 인문학의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국공립대 인문대학장들이 제주도에 모여 ‘인문학 제주 선언’을 발표한 것이 1996년 11월이었으니, 꽤나 시간이 지난 셈이다. 이후 인문학과 교수단체들의 다양한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이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인문학 증진을 위해 교육부는 HK사업을 시작했다. 인문학 발전을 위해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공개경쟁을 통해 선정된 전국에 산재한 대학에 각각의 인문학 연구소를 설립해서 전임연구원들을 중심으로 인문학 연구활동을 성실하게 수행해 왔다. 그 시간이 벌써 10년이 지났다. 10년 동안의 연구 성과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나름의 연구 성과가 대학의 인문학 연구에 분명히 보탬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제 10년 이후의 HK 프로그램이 새롭게 시작되는 단계에 와 있다.

그러나 대학의 내부를 냉정히 들여다보면, HK사업으로 인해 대학의 인문학이 활성화됐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오히려 대학 내에서 인문학의 비중과 역할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HK 사업 이후에 교육부가 인문교육의 강화를 위해 이른바 CORE사업을 또 시작한 데는 이런 사정이 반영돼 있다. 여기에다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2016년 8월 4일을 기해 발효됐다. 대학에서 인문학 연구가 활성화되고, 그 인문정신이 제대로 실현됐다면, 이렇게 법으로까지 강제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기에다 대학 밖에서의 인문학 열풍은 여전히 그 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 형국을 감안한다면, 그 동안의 대학에서 진행된 인문학 연구를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그 동안 각 대학들이 HK사업을 위해 설립한 인문 연구소들이 수행한 인문학 연구 결과물들이 대학에서 어느 정도 학생들의 인문교육에 실질적으로 활용됐는지 의문이다. 학생들의 인문교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인문학 연구가 ‘연구를 위한 연구’에 치중된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HK사업을 진행하는 대학들은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데 급급했지,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타 대학으로 환류시키는 데는 여력이 미치지 못했다. 연구의 내용과 방향이 대학의 인문교육에 실질적으로 활용되기 어려운 연구결과물들도 양산됐다. 모든 인문학 연구가 현실적 실용성에만 목을 맬 수는 없다. 이런 인문학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인문학의 위기가 도래된 것은 전통적 인문학을 현재적 상황 속에서 재해석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문학으로 전환시켜나가지 못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인문학 연구는 전통적 인문학의 본질과 가치를 어떻게 현재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지난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대학에서의 인문학 연구가 이런 현실적인 과제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하자 대학 밖에서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본질을 외면한 ‘왜곡된 인문학 열풍’으로 변질됐다. 대학에서의 인문학 연구가 제대로 실현돼 대학 사회에 인문학의 뿌리를 더욱 든든히 하고, 이를 대학 밖, 사회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넘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지 못한 결과다. 오히려 대학들이 인문학을 자본의 논리에 속박시켜 상업화함으로써 자본의 논리를 넘어서야 할 자기성찰의 비판정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대학은 인문학 연구의 방향과 내용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할 때다. 대학은 인문학 연구를 통해, 허물어진 인문학의 영역을 고쳐 세우고, 인간됨의 정체성과 삶의 내용을 동시대인들에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 갈수록 사람다운 삶이 더욱 힘들어지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맞설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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