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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예술’, 그 참뜻은?
‘요리는 예술’, 그 참뜻은?
  •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
  • 승인 2017.10.2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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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요즘은 ‘먹방시대’다. 「오늘은 뭐 먹지」, 「수요미식회」, 「냉장고를 부탁해」, 「한끼줍쇼」, 「집밥백서」 등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학생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물으면 “스타셰프요”라고 답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스타셰프라는 직업이 새로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요리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셰프는 곧 ‘스타’이고 ‘연예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요리하는 사람을 칭하는 용어도 어느 순간에 ‘요리사’, ‘주방장’에서 ‘셰프’로 바뀌었다. 그것이 듣기에도 세련돼 보이고 의미도 고급스러운가보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전 세계의 어느 나라 어떤 요리도 핸드폰으로 검색하면 만드는 방법까지 다 볼 수 있다. 마을주민센터에서도 요리를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주고 추운 겨울은 따스하게 난방도 해준다. 심지어는 설거지를 해주는 곳도 있으니 요리를 하는 일은 즐겁기만 하다.

필자는 1980년대에 중국어를 전공하고 요리연구가가 되겠다고 중국음식점 주방으로 들어갔다. 요리사축에도 못 끼는 보조요리사로서 주방장님이 탕수육 만들 때 어떤 양념을 얼마만큼 넣는지 면면히 살펴봤다. ‘물 떠와라’하셔서 볼 수 없었고, 물 떠와서 다시 보려고 하면 ‘접시 깔아라.’하셔서 접시를 까느라고 정작 탕수육에 어떤 양념이 들어가는지 볼 수도 없었다.

아침 10시에 출근하면 밤 10시 너머서야 일이 끝났다. 영업시간에는 요리 만드는 것 보조하느라고 바빴고 영업시간 외에는 재료를 준비하느라고 쉬지도 못했다. 무더운 여름에는 온 주방 식구들이 선풍기 한 대로 견디어야 했고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있으면 금세 수건에 땀이 차서 수건을 짜기에 바빴다.

잡다한 청소, 설거지, 자잘한 청소는 말하지 않아도 보조요리연구사가 나의 몫이었다. 꿀 맛 같은 휴일은 한 달에 두 번. 그렇게 8년을 정신없이 지나고 보니 20대이던 내 나이는 30대가 되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청춘기를 중국집 주방 불판 앞에서 보냈던 것이다.

그 후 석·박사학위를 받고 연구해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중국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산학현장실습을 나가겠다고 상담을 하러온다. 학생들이 제일 선호하는 곳은 단연 특급 호텔이다. 그다음은 순위는 유명한 요리선생님 조교자리이다. 나는 더 많이 힘든 곳, 더 많이 열악한 곳을 권한다.

현장실습을 다녀와서 하는 말은 그곳에 배울게 별로 없었고 설거지와 허드렛일만 하다 왔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제대로 된 현장실습을 하고 왔다고 칭찬을 해준다. 현장실습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한번 체험해 보는 곳이지 앉혀놓고 누군가가 살갑게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다. 얼마 멀지 않아 거세고 힘찬 파도가 밀려오는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데 미리 학교에 다닐 때 한번 거센 파도를 잠깐 맛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학생들이 취업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TV에서 보는 셰프의 모습은 화려하고 근사해 보였는데 자신이 사회로 나가려니 그저 부족한 생각이 드는가 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취직할건지 물으면 학생들은 “아직 좀 부족한 거 같아서 알바하면서 더 배우려고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다수를 이룬다.

되돌아보니 요리연구가가 되기 위해 걸어왔던 길은 ‘힘든 노동을 몸에 차곡차곡 쌓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농사를 지어서 재료를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 만들어준 재료를 새벽에 시장에 가서 사와야 하고. 다듬어야 하고, 씻어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식사하고 난 그릇을 설거지해서 정리해야 하는 일을 반복해서 해야 했다. 일정기간 그러한 힘듦의 시간을 겪고 난 후에 비로소 남들이 나에게 요리연구가라고 불러주었었다.

혹자는 ‘요리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 의미는 만들어 놓은 요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지금 만든 요리가 최고로 생각돼도 다음에 만들 때는 지금 만든 요리보다 더 정교한 요리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스타셰프를 꿈꾸는 학생들이 ‘힘든 노동을 몸에 차곡차곡 쌓는 작업’을 피하지 말고 부딪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누군가가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 사람은 이미 스타셰프다. 그런 마음이라면 곧 그렇게 될 것이므로.

 

신계숙 배화여대·전통조리학과

단국대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이화여대 「중국의 저(菹)변천사」로 가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배화여대 중국어통번역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금은 전통조리과에 몸담고 있다. 저서로는 『전통요리기행』, 『역사로 본 중국음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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