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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적 가치가 지역과 세상을 바꾸는 힘” … 20년 전 화두 실천하는 경제학자
“다원적 가치가 지역과 세상을 바꾸는 힘” … 20년 전 화두 실천하는 경제학자
  • 최성희 기자
  • 승인 2017.10.23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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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지역리더 육성에 애정 쏟는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

35년간 몸담았던 강단을 뒤로하고, 지역리더 육성에 힘을 쏟는 이가 있다.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로 있는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이다. 약 20년 전 충남대 재직 당시 그는 대학 은사와 동료들과 함께 ‘지역을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어 5년간 전국을 돌았다. 이 움직임을 시작으로 지역현장에서 ‘內發적 발전’의 싹을 직접 찾아다녔다. 그 모임이 지역재단으로 발전했다.

지역재단은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지 않는 순순 민간 비영리법인으로, 농업, 먹거리, 지역, 생태환경 등 각 분야 사람들이 고문, 이사, 감사, 자문위원,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600여명의 각 지역리더들이 재단 회원으로 있다. 그는 지역 현장에서 지속 가능하고 다원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지역리더 육성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을 서면으로 만났다.

정리: 최성희 기자 ish@kyosu.net

지역재단은 지역 현장의 변화를 추동하고 나아가서 중앙농정도 바꿀 수 있는 지역리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2004년 3월에 창립됐다. 당시 박 이사장의 스승이었던 정영일 교수가 이사장, 유정규 박사가 운영이사, 박경 교수가 이사를 맡았고, 박 이사장은 상임이사 자리에 있었다. 이들 창립 멤버들은 ‘지역을 바꾸어 세상을 바꾼다’는 지역재단의 슬로건을 내걸었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박진도 이사장이 보기에 지난 수십 년간의 ‘농촌의 도시 따라잡기’라는 외생적 개발은 ‘실패’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농촌은 아이 울음소리가 끊어진 ‘자연양로원’이다. 

지역재단은 지역의 內發적 발전을 지향한다. 이는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밖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되 지역의 운명은 지역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다. 지역재단은 이러한 ‘순환과 공생의 지역 만들기’를 추진할 지역의 주체 즉 ‘지역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연구, 교육, 컨설팅 등을 실시한다. 이때, ‘지역리더’란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혹은 조직’이다.

실제로 그가 접하는 지역의 주민들은 외생적 개발에 익숙하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 없이는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는 게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재단의 교육은 강의보다는 토론과 상호학습에 집중한다. 단발성 교육보다는 적어도 2박3일 혹은 3박4일의 교육을 여러 차례 시행을 한다. 모든 교육에서 지역재단 교육생의 30%만이라도 재단의 뜻을 이해한다면 나름 성공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농정에서 교육까지 ‘국민총행복’ 우선

박 이사장은 “컨설팅은 어렵다”고 말한다. 컨설팅이 거의 대부분 정부의 ‘마을만들기’ 사업 등과 관련이 있고 정부의 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기에 지역재단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역재단의 컨설팅 사업은 ‘내발적 발전전략을 실천할 주체역량강화’를 목표로 두고 있다. 보다 지역에 밀착한 컨설팅을 수행하기 위해 대전에 ‘지역순환경제센터’를 두고 대전 충남 지역의 컨설팅만 수행하고 있다.

그는 최근 의외의 책을 내놨다. 『부탄 행복의 비밀』(2017)이란 책이다. 여기서 부탄은 ‘국민총행복’을 국정 이념으로 한다. 그에 의하면 GDP(국내총생산)보다 GHN(국민총행복)가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국민총행복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강조해 말한 부탄의 핵심 정책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다. 부탄 정부는 국가 예산의 약 20%를 교육부문, 10%를 의료부문에 사용한단다.

박 이사장은 “빈곤과 결핍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앞으로도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다. 만약 가난한 이들에게 적절한 교육기회와 건강한 생활이 보장된다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본 ‘가난한 나라’ 부탄의 복지시스템은 매우 독보적이고 희망적이다.

‘이상적인 정부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농민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라는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국민총행복의 증진을 위해서는 농업과 농촌의 본래 가치가 제대로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 이외에, 건강, 교육, 문화, 공동체, 여가, 환경, 심리적 웰빙 등 다양한 요소들이 균형 있게 충족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말대로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이야말로 이러한 국민총행복의 토대이며, 그러한 사회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농민의 삶이 지속가능해야 한다.

그런 그가 정부의 패러다임을 경제성장에서 국민총행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경제성장 지상주의’라는 잘못된 농정 패러다임을 역대 정부의 농정이 실패한 원인으로 꼽는다. 그의 말대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한다’ 혹은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이 팽배했고 농업은 그에 따른 희생양이 됐다.

그가 보기에 지금도 ‘농정의 틀을 바꾸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역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는 뭘까. 박 이사장은 ‘농정철학의 부재’라고 단언한다. 박 이사장은 농업과 농촌을 모르는 파워 엘리트들이 이해관계자들을 무시한 채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작금의 현실을 ‘농업계 패싱’으로 표현한다. 파워 엘리트들 사이에 농업?농촌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 그는 농민, 소비자, 연구자, 시민단체 등이 함께 농정개혁의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생각 이면에는 ‘농업과 농촌이 가진 다원적 가치의 회복’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농정 패러다임을 경쟁력 지상주의에서 ‘국민총행복의 증진에 기여’하고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다기능 농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농업이 식량생산자로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사회문화적·환경적으로도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다기능 농업에 기초해볼 때, 농촌은 단순한 식량생산 공간이 아니라 생활공간, 경제활동 공간, 환경 및 경관 공간, 문화 및 휴식 공간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건강한 식품의 안정적 공급, 자연자원과 환경의 보전, 생물다양성의 증진,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공동체의 증진, 휴양과 교육 공간의 제공, 지역사회의 유지 등을 통해 국민총행복에 기여한다.

 

“지역 대학들, 지역 연계 취약 … 중앙만 바라보고 있다”

그의 철학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지역 대학 역할론에도 가닿고 있다. 지역의 대학이야말로 해당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리더’들을 발굴 및 양성하고 네트워킹하는 산실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뜻이다. 박 이사장은 “교육은 국가의 모든 정책에서 최우선순위다”라고 말한 부탄 국왕의 한 명언을 인용했다. 실제로 부탄에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공교육이 무료이기 때문에 돈이 없어 대학을 못가는 사람이 없다.

그가 보기에 우리나라 지역 대학은 단순히 지역에 소재할 뿐이다. 지역과의 유대나 연계가 취약하고 중앙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과 행정 그리고 주민이 함께하는 학습조직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학습조직에서 지역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찾아갔으면 하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그는 행정에서 이러한 학습조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고, 대학의 교수나 학생들도 지역에서 각자의 삶의 보람을 실현하도록 노력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은...

1979년부터 충남대 경제학과에 몸담았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농정연구센터와 ‘지역을 생각하는 모임’의 창립 멤버다. 충남발전연구원장직을 역임한 뒤 2013년 8월 학교로 복귀했고 1년 만에 조기 퇴직했다. 충남대를 퇴직한 후, 은사인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의 뒤를 이어 지역재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저서로는 『한국농촌개발정책의 재구성』, 『순환과 공생의 지역만들기』, 『부탄 행복의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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