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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 올 한해를 따뜻하게 해준 휴머니즘의 미학들
책들의 풍경 : 올 한해를 따뜻하게 해준 휴머니즘의 미학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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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듯이 겨울 독서계엔 휴머니즘이 함박눈처럼 내린다. 따뜻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이 지천으로 넘쳐나 심금을 떨리게 한다. 하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왕이면 따뜻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축을 택하는 게 훨씬 잘하는 장사다. 올해 출간된 책 가운데 비교적 인간적인 방향으로 쏠린 에세이들, 웅숭깊은 온기가 느껴지는 책들을 한번 모아본다.

미셸 투르니에의 ‘흡혈귀의 비상’(현대문학 刊)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범우세계문고의 주류작들을 읽고 남긴 투르니에 최초의 독서메모집이다. 저자와 텍스트가 서로 부피로 맞서서 스며드는 밀도 높은 독서와, 작품의 빈곳을 찾아 헤매다니는 상상력의 깃털소리가 낭자하게 울려 퍼진다. 투르니에는 발자크, 플로베르, 토마스 만 등을 마치 연인 대하듯 하는데, 그 첫 단계는 얼뜨기들(기존의 해석)을 먼저 해치우는 것이다. 주석과 평가로 거대해진 고전은 투르니에의 시선 앞에서 처음 태어날 때의 날렵함을 되찾고 현재적으로 풍부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인간에 대한 탐욕스런 관심과 애정

플로베르는 “나는 생각이 천한 사람은 누구라도 부르주아라고 부른다”는 댄디적 계급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호하고 반동적인 이데올로기는 그의 작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편소설 ‘순박한 마음’의 비길 데 없는 가치는, “펠리시테라는 늙은 하녀, 즉 순진하고 글도 모르며, 앵무새를 사랑하는 신비로운 미개인인 이 늙은 하녀를 둘러싸고 있는 플로베르의 존중과 애정의 질에 빚지고 있다”고 트루니에는 쓴다. 그가 플로베르에게서 본 건, “재(사실주의) 밑으로 은밀하게 일렁이는 뜨거운 불길(낭만적 경향)”이었다.

트루니에의 통찰은 대부분 작가들의 삶에 대한 관찰에 빚지고 있다. 어설픈 독자라면 작가와 작품을 한 줄에 놓는 데 그치겠지만, 트루니에는 삶이 픽션으로 전환하는 부분을 채워넣는 읽기를 통해 작품의 인과적인 측면, 비유적인 측면을 한껏 부풀려 놓는다.

트루니에의 책이 인간에 대한 탐욕스러운 관심과 애정을 심미적으로 쌓아올린 기록이라면, 고종석의 ‘서얼단상’(개마고원 刊)은 세상의 연줄과 파벌들에게 냉소하는 한 자유주의의자의 삶의 법도를 내보이고 있다. “나는 ‘희미한 우파’라는 딱지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가 右는 右인 것 같다. 그러나 내가 派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아무 파에도 속해 있지 않고, 아무 파도 대표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나에게만 속해 있고, 나만을 대표한다.” 서얼을 자처하는 고종석은 파벌로 연대한 한국사회에서 언제나 소수에 속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한국의 사회문화를 훑는 그의 비평적 감수성은 “집단주의적-기회주의적 인연의 논리로부터의 해방, 가족주의적 ‘웃어른 숭배’로부터의 해방, 피부빛깔로 결정되는 인종적 거푸집으로부터의 해방, 재력과 쓰임새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물화로부터의 해방”을 향해 안테나를 세운다. “다수결주의도 끔찍하다. 그런 견해는 대중이 늘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그런 가정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나는 ‘반민주주의자’이지만,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보다 상위에 있는 근본적 규범들을 포함하고 있고 그 규범들 가운데 하나가 소수집단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나는 민주주의자다”라는 중간자적 해석의 논리는 창의적인 만큼 저자의 개성을 훅 끼쳐온다.

미국의 대표적인 실천 지성 하워드 진 콜럼비아대 명예교수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 刊)에서는 부룩클린 빈민가에서 자라고 27살에 대학에 들어가 이 시대 대중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민권, 반전운동가, 역사학자가 된 한 지식인의 행복한 삶의 과정과 만나게 된다. 베트남전 반전운동을 위해 거리에 나서고 국방부 비밀 자료를 빼돌려 폭로하고, 징집 문서를 불태운 이들을 위해 증언대에 서며, 대학 행정비리를 고발한 학생을 두둔했다 종신교수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한 그의 삶은 고난에 찬 것이었지만, 확신에 찬 것이기도 했다.

이 책엔 성장기부터 사회운동의 격랑 속에서 실천가들과 함께 호흡했던 과정들이 모두 들어있다. 그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롬버스를 비롯,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탐욕, 폭력, 착취, 인종차별, 정복, 위선 등 미국의 가장 못된 가치들을 만들어왔다고 비판해왔다. 이 책의 제목에서 ‘중립’이란 CNN의 전쟁 생중계를 본 전세계인이 그랬듯 “미국이란 기차에 탑승한 승객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전쟁과 살육을 묵인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의 완곡한 표현이다.

악한 본성을 다스리는 과정 보여주기도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인간 자신의 위기의식이 오늘날처럼 고조된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워드 진이나 촘스키 같은 미국의 소수파들이 아무리 연대하고 반대해도 부시는 이라크를 공격하고야 말았다. 이 종교적 믿음에 가까운 전쟁논리 앞에서 우리는 폭력을 야기하는 국제적 역학 시스템 외에도, 인간 심성 깊숙이 숨은 폭력성의 존재를 느끼고 전율하게 된다. ‘간디’의 삶이 요즘 들어 주목받는 것도 그의 삶이 인간의 악한 본성을 다스리는 과정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간디평전’(내일을여는책 刊)은 간디의 육성을 가장 잘 전해들을 수 있는 책이다. 전기작가 로맹 롤랑이 쓴 ‘마하트마 간디’가 유명하지만, 미국의 신문기자 루이스 핏셔가 편집한 이 책이 더욱 다가오는 이유는 간디가 직접 쓰거나, 육성으로 남긴 말들을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청년시절에는 지독히 내성적이었던 그가 영국 유학시절 채식자 모임 앞에서 처음 발표하게 됐을 때 계속 “나는 생각하기를”이라고만 되풀이하고는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옆에서 이 딱한 꼴을 지켜보던 친구가 참지 못해 “이 사람은 애만 배고, 애는 낳지 못하는군” 하고 준비된 원고를 대독해줬다는 일화를 보거나, 아버지가 불치의 병으로 거의 생을 포기하다시피 했을 때 잠시 아내와의 정욕에 정신이 팔려 아버지의 임종을 놓친 일을 후회하는 장면들을 보면, 평범한 인간으로서 간디가 가졌던 심성과 고뇌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머레이 북친의 최근작 ‘휴머니즘의 옹호’(민음사 刊)는 제목이 매우 매력적이다. 이 책은 인간, 이성, 문명을 믿는 휴머니즘을 경시하거나 부정하는 각종 생태사상을 비판하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아나키즘을 옹호하고 있다. 북친은 인간에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사회생물학, 가이아이론, 신맬서스주의를, 또 문명을 경시한다는 점에서 생태신비주의, 원시주의, 기술부정론을, 이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슈마허나 뉴에이지 운동, 푸코를 비롯한 포스트모던 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현대사상 전반의 안티-휴머니티적 요소를 통시적으로 살필 수 있어 좋지만 번역자가 지적하듯 생태아나키즘을 휘두르듯이 적용하거나 반복한 측면도 있어 불안정한 책이다. 고졸 노동자 출신의 저자가 강단 지식인들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 듯한 수사적, 공격적 어휘로 인해 푹 빠질 수 없는 단점은 있지만, 생태문제를 사회문제로 보고, 인간들이 만들어온 가치와 이성의 추진력에 신뢰를 던지는 건강한 휴머니즘의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다면 되리라고 생각된다.

‘재수생’ 학자의 투박하고 진솔한 삶

책들이 많겠지만 민속학자 임재해 교수의 ‘민속문화의 생태학적 인식’(당대 刊)은 유독 정감이 느껴진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0년 간 관심을 기울여온 생태민속학을 이론적으로 묘파한 것으로 주술의 시대, 예술의 시대, 변혁의 시대에서 이제 공생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민속문화의 이해, 보존, 생활화를 통한 지속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투박하긴 해도 진정성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저자가 직접 작성한 아주 긴 ‘연보’가 눈에 들어온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오랫동안 하숙하며 지냈던 일, 1980년 5월 광주사태와 관련해 해직교수 명단에 조동일 교수가 끼어있었을 때 “만일 이 시기에 대학에서 해직된다면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개의치 않았던 것에서 느꼈던 지식인의 역사의식, 안정적인 국문학보다 신진학문인 민속학을 택했던 모험, 안동대 부임 후 동료 선후배들과 참꽃문학회 등을 결성해 학술 담론 반, 정치담론 반으로 밤을 샜던 시절, 도시락을 두 개, 세 개씩 싸다니며 오랜 도시락 친구인 임세권, 이윤화 교수와 연구실에서 오직 책만 들여다보던 광기 서린 공부에의 몰두 등이 차례로 회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학자와 실천가로서의 치열함이 투박함 속에서 묻어나는 것이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밖에 인디언의 멸망에 관한 역사책인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줘’(나무심는사람 刊), 독일 녹색당 창당, 티베트 독립을 위한 운동, 독일 통일의 숨은 주역이었던 페트라 켈리의 ‘나는 평화를 희망한다’(양문 刊) 등도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책들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관점이 있고, 정치적인 입장이 있고, 개별적인 취향이 있다. 하지만 성찰 없는 표현은 창끝이나 별로 다름없을 것이다. 아주 자그마할 뿐인 인간의 내면에, 다른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휴머니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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