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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나친 유럽 중심주의
총·균·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나친 유럽 중심주의
  • 교수신문
  • 승인 2017.10.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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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_ 27강. 김서형 인하대 교수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사 이해의 새 방법’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의 2017년 강연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이 강연 3섹션‘정치/경제’영역으로 이동했다. ‘정치/경제’ 강연들에서는 시대의 사상, 인식 체계의 틀을 깨고 정치·경제의 발전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변해 왔는지 살펴본다.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강연은 34강에 걸쳐 새로운 시대로 도약을 가능케 한 역사적 인물 혹은 작품을 선정해 혁신적 사유를 조명해보는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의 네 번째 강연 시리즈다. 제27강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사 이해의 새 방법」(김서형·인하대) 발표문 일부를 요약, 발췌했다.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다이아몬드는 누군가는 지배하고, 누군가는 지배를 받는 불균형적인 관계가 근본적으로 농경의 시작 및 발달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작물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고, 그 결과 전문 계층이 발생하면서 발달된 무기를 가진 군대와 병사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정복 전쟁을 통해 다른 지역을 지배했고, 이같은 현상에 따라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불균형적인 관계 형성에 보다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은 바로 가축화였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동물로부터 비롯된질병(인플루엔자, 천연두, 홍역, 결핵, 말라리아 등)들 때문에 불평등한 관계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대륙 혹은 지역마다 기술이 서로 다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다. 그는 기술이 발명된 이후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고 생각했고, 기술은 개인의 독창적인 행동이 아니라 누적되고 축적된 행동을 통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에서 살펴본다면, 유럽인들이 19세기 중반 이후 나머지 세계를 식민화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인들 사이에서 다양한 지식과 정보들이 축적되고, 이와 같은 지식과 정보가 문자를 통해 확산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륙간 발전 격차가 생기는 이유

그는 유럽에서 이와 같은 광범위한 지식의 축적이 가능했던 이유로 지리적 환경을 언급하고 있다. 확산을 통해 발명품이나 기술을 잘 습득할 수 있는 사회는 대륙에 속해 있는 사회라고 주장하면서, 다이아몬드는 이와 같은 사회에서 자신들이 만든 것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이나 사회에서 만든 것까지 흡수함으로써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뉴기니인들이 유럽인들처럼 총이나 균, 쇠를 가지지 못했던 이유는 이들이 유럽인들보다 인종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지리적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농경이 시작된 시기가 늦었고, 가축화시킬 수 있는 대형 동물이 없었으며, 이는 병원균에 대한 면역력의 부재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문자가 발명되지 못했거나 다른 지역에서 발명된 문자가 전파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과 기술의 축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다이아몬드는 농경의 시작으로부터 시작된 정주형 생활이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사회 혁신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유라시아 대륙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와는 달리 동서 방향으로 축이 뻗어 있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등장한 발명품이나 기술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랐다. 그 결과, 유라시아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빨리 병원균과 문자, 기술이 등장했고, 이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인간 사회가 무리 사회, 부족 사회, 추장 사회 그리고 국가의 형태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무리 사회나 부족 사회가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고 평등한 사회였다면, 추장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이익을 재분배하는 특권을 가진 지배자가 등장한다. 결국 모든 불평등 사회는 추장사회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권력이 중앙집권화되면서 군사력과 물자가 집중됐고, 전쟁을 통해 누군가는 지배하고, 누군가는 지배를 받게 됐다.

다이아몬드는 이와 같은 주장을 뉴기니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들로 확대시켜 설명했다.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등의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다이아몬드는 대륙 간 혹은 지역 간 역사가 다른 이유가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19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구가 많고 부유했던 중국이 유럽에 우위를 빼앗긴 이유로서 중국의 연결성을 언급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 초기에는 이점으로 작용했지만, 이후 분할되고 경쟁하는 유럽과 달리 통일된 중국에서는 혁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차이가 환경 차이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나타났던 차이가 특정 민족이나 인종의 우월성 때문이라고 강조했던 기존의 역사적 서술이나 설명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역사 서술은 여전히 유럽 중심적이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를 통합해 유라시아로 명명하면서, 19세기 중반까지 아시아에서 나타났던 기술과 지식들을 마치 유럽인들의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환경 차이가 서로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원동력이라면 19세기 중반까지 아프로-유라시아의 주변부에 위치했던 유럽이 전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환경 차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 차이는 환경 차이의 산물?

뿐만 아니라 다이아몬드는 지리적 환경이 인류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수십만 년 동안 수렵채집 생활을 영위했던 인류의 조상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생존에 매우 중요했다.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이 인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종들과 달리 더 많은 생산물을 얻기 위해 야생의 여러 종들 가운데 인간에게 가장 유리한 종들만 선택해서 인위적으로 기르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지리적 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게 됐다.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인간은 농경을 통해 지속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이아몬드가 자신의 저서에서 설명했던 다양한 기술들 가운데 일부는 이와 같은 환경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농경이 시작된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해왔다. 이러한 점에서 살펴본다면, 지리적 환경이 인류 역사에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다이아몬드의 전제는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정도가 서로 다른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주장으로 확대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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