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이 하사하던 효도지팡이의 재료
임금님이 하사하던 효도지팡이의 재료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7.10.1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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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85. 명아주

명아주는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로 동아시아(한국·일본·중국북부)가 원산이고, 지금은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며, 아시아·아프리카·북미 등지에서는 일부러 심어먹기도 한다. 명아주는 시금치 맛을 쏙 빼닮았다는데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장을 튼튼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남새 심은 밭에서는 몹쓸 잡초이고, 우리나라 농촌·들녘·쓰레기터·밭둑·묵정밭 등 좀 건조한 곳에 잘 자란다.

명아주는 地力이 좋으면 길길이 자라 키가 사람 키보다 크게 2m넘게 자라고, 줄기지름이 3cm로 굵고, 빳빳이 곧추선다. 줄기엔 여러 녹색 줄이 세로로 있고, 불규칙하게 모가 져 있다. 줄기 끝에 나는 새순은 붉은 빛이 살짝 돌고, 대궁이가 다 자라면 한결 가벼우면서 몹시 단단하다. 잎은 삼각형에 가깝고, 어긋나기하고, 잎 겉에 밀랍이 많아 윤기가 자르르 나면
서 매끈거리고, 가장자리에 물결모양의 톱니가 있다.

잎에 털이 거의 없고, 어린잎은 자홍색이나 자라면서 진녹색으로 변한다. 잎자루도 붉은색을 띠는 수가 있고, 줄기 아래의 잎은 다이아몬드 꼴이지만 윗자락의 것은 바소 꼴이다. 그런데 흡사한 흰명아주는 새싹과 어린잎줄기가 붉지 않다.

여름에는 꽃잎이 없는 황록색의 꽃이 가지 끝에 빽빽하게 이삭모양으로 달라붙어서 핀다. 꽃받침은 깊게 5개로 갈라지고, 수술은 5개, 암술은 2개다. 꽃받침 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흑갈색 씨가 들었는데 반질거리는 여문 종자에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비타민 A·칼슘·칼륨이 매우 푸지게 들었다 한다.

명아주(Chenopodium album)는 지방 말(鄕語)로 ‘명아쥬’, ‘청려쟝’, ‘명아줏대’, ‘능쟁이’, ‘는쟁이’이고, 한자로는‘藜’다. 명아주학명에서 ‘Cheno’는 거위, ‘podium’은 발을 뜻한다. 바꿔 말해서 잎사귀가 넓적한 거위 발을 닮았다해 ‘goosefoot’라 부르고, 줄기 최상부의 새순이 붉다해 ‘red goosefoot’라고도 한다.

명아주와 비슷한 종으로는 흰명아주·좀명아주·취명아주·청명아주·버들명아주들이 있는데 잎과
꽃의 모양이 서로 비슷해서 구별하기 매우 어렵다고 한다. 다른 생물이 다 그렇듯이 명아주는 땅이 아주 척박하거나 밀도가 높으면 키가 고작 5cm안팎 밖에 자라지 않지만 그래도 번식활동만은 하고야 만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생명체도 억척 같이 종자(후손)를 맺는다(남긴다)는 말씀. 種族保存의 悲願은 인간도 다르지 않을진대….

명아주의 어린잎이나 줄기는 한소끔 데쳐서 상큼 달큼한 나물로 먹을 뿐더러 예로부터 민간약으로 썩 많이 사용했다. 꽃이 피기 전의 어린잎과 줄기를 캐서 햇빛에 말려서 달여 먹어 위를
보호하고, 열을 내리게 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약효가 있어서 하리·습진·강장제로 썼고, 또 일사병에 걸렸을 때 명아주 생즙을 내 마시고, 독충에 물렸을 때 발랐다한다. 명아주 잎에 묻어있는 하얀 가루는 피부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명아주를 날 것이나 생즙으로 많이 먹으면 해롭고, 꽃가루는 꽃가루 알레르기 일으킨다. 또한 다 큰 줄기로는 지팡이를 만들었고, 중국 사람들은 명아주줄기로 침대를 만들었다 한다. 오늘 명아주 글의 고갱이는 여기에 있다하겠다. 퇴계 선생의 지팡이로도 유명한 靑藜杖은 명아주의 굵은 줄기(대)로 만든다. 명아주는 풀이지만 다 여문 명아주 원줄기는 가볍고 단단하기에 지팡이로 안성맞춤이다. 늦가을쯤에 딱딱하게 야물어진 명아주를 포기 째 뽑아 자잘한 곁가지를 잘라버리고, 그늘에 진득하게 두어서 바싹 말리면 번듯한 지팡이가 된다.

명아주지팡이를 더 정성껏, 멋있게 만들어 본다. 늦가을에 곧게 자란 명아주를 뿌리(나중에 움켜 쥘손잡이가 됨) 채 캐어서 통째로 푹 삶아 꺼내서 껍질을 벗기고 그늘에 말린다. 그리고 예리한 칼과 거친 사포로 줄기막대를 싹싹 긁고, 매끄럽게 문질러 갈아서 아주까리(피마자)기름으로 문대어 끝마무리 한다.

‘가을 더위와 노인의 건강’이란 말은 가을의 더위와 노인의 건강은 오래갈 수 없다는 뜻으로, 끝장이 가까워 그 기운이 쇠하고, 오래가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늙은이 기운 좋은 것과 가을 날씨 좋은 것은 믿을 수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명아주지팡이를 짚으면 그 氣運이 지팡이 쥔 노인의 손을 통해 심장으로 들어가 장수한다는 청려장이다.

아무튼몸이 축나서 만지걸음에 힘이 부대끼는 노인에게 지팡이는 어진 효자보다 낫다. 아무렴‘본초강목’에도“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부모님이 반 백 살이 되면 아들이 명아주줄기로 효도지팡이를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했다고 한다. 그리고 통일신라 때부터 나라에서 七旬이 되면‘國杖’을 내리고, 八旬엔 임금이‘朝杖’이란 이름으로 청려장을 직접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 전통을 이어받아 매년 10월 2일(노인의 날)에 上壽(100세)가 되는 장수노인에게 청려장을 드린다고 한다. 어허, 세월이 덧없어서 옛날 같으면 필자도 어느새 임금에게서 청려장을 받을 나이가 코앞에 오고야 말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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