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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영 거점 전문대’ 확대 운영돼야
‘준공영 거점 전문대’ 확대 운영돼야
  •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17.10.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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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문대를 생각한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의 전문대는 교육의 질이 높지 못해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요구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대의 낮은 교육의 질은 4년제 대학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켜왔고, 정부 정책 역시 전문대보다 4년제 대학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여 전문대의 교육 개선을 어렵게 하는 등 악순환의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직면한 학령인구의 감소는 전문대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황이라면, 전문대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여러 노력들 역시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성 높은 실무교육을 통한 ‘전문직업인 양성’이라는 전문대의 존립 목적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연구중심과 교육중심이 혼재돼 오히려 전문대보다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도가 떨어질 수도 있는 4년제 대학에서만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것으로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직업인’ 수요에 결코 부응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볼 수 있는 높은 눈높이에 따른 미스매치 문제는 지금보다 심화될 것이며, 이에 따라 청년 고용문제는 더욱 해결하기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전문대의 존립 필요성에 전문대가 충실히 화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전문대가 사립 일색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OECD에서 일반적으로 구분하는 것처럼 정부의존형 사립대를 국공립대와 동일 범주에 포함시킬 경우 여기에 속하는 학생 비중이 100%에 달하는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은 그 비율이 2%로 대단히 예외적으로 낮은 상황이다. OECD 주요국(체제전환국과 최근 OECD 가입국 제외)을 대상으로 전문대 재정지원 실태를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공립의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 사립비중이 높은 국가들과 비교해서 교육투자가 더 충실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수 1인당 학생 수로 파악된 교육의 질이 보다 높았고, 고용률이나 고졸자 대비 전문대 졸업생의 상대임금 수준으로 파악한 전문대 졸업생의 노동시장이행 성과가 더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사립 위주의 전문대 구조가 낮은 교육의 질로 귀결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편, 우리나라 전문대의 설립유형에 따른 학교효과 분석 모형의 회귀분석 결과에 따르면, 학생 장학금,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 학생 인당 재정지원 사업 지원비 등 재정지원과 관련된 부분이 취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는 학생과 학교에 대한 재정적 지원의 확대가 전문대의 취업률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 요인들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폴리텍대학이 훨씬 높은 취업률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재정 요인의 통제와 무관하게 준공립 형태로 운영되는 폴리텍대학이 사립대에 비해 높은 취업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이들 학교가 교육 여건이 좋기 때문만이 아니라, 효과적인 학교운영 등 재정지원과 무관한 다른 요인들도 취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 두 가지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전문대에 대한 해법이 명확해진다. 폴리텍대학과 유사하게 준공영 형태로 운영되는 전문대의 확대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적어도 학생 수 기준 50% 수준까지 준공영 형태로 운영되는 전문대 육성을 장기 목표로 해서, 재정상황에 맞게 단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비율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물론 새롭게 준공영 형태의 전문대를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사립대학들이 정부의 충분한 재정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국가적, 사회적 책무성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준공영제로의 전환, 운영은 개별 사립대들의 자발적 선택에 따르도록 한다. 또한 준공영제로의 전환, 운영을 희망하는 사립대학 모두의 전환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 사립대학 중에서 재단의 교육의지, 지역 내 상황, 재정 지원 가능 규모 등을 감안해 일정한 절차를 통해 전환 대상 대학을 선별하는 식이 돼야 한다.

지역별로 다수의 준공영 전문대를 두기 보다는 지역별 거점대학으로 1개의 준공영 전문대가 운영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 때 규모의 경제가 작동될 수 있도록 지역별 거점대학은 지역 내에 산재해 있는 여러 개의 대학들이 연합, 연계하는 종합 전문대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존 사립대의 전환을 전제로 지역별 준공영 거점 전문대를 별도로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지역별로 존재하는 기존의 폴리텍대학을 적극 활용하는 전문대 구조개편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기존 전문대에 비해 경영 성과도 우수하고 보다 효율적인 학교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기존 폴리텍대학이 중심이 돼 일부 사립전문대를 흡수, 합병하는 방식으로 지역별 준공영 거점 전문대를 육성하는 문제에 대한 전향적 논의도 가능해 보인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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