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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지식의 객관성 강조... 철학의 역할은?
역사적 지식의 객관성 강조... 철학의 역할은?
  • 신중섭 강원대·윤리교육과
  • 승인 2017.10.16 09: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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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역사와 철학의 만남』 이한구 지음 | 세창출판사 | 298쪽 | 21,000원

지난 5월 31일 그동안 사회적으로 치열한 논쟁과 이념 투쟁의 장이 됐던 중·고등학교 국정 역사 교과서가 공식 폐지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역점 추진 사업이었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업’ 폐기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기자 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상식과 정의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구시대적인 획일적 역사 교육과 국민을 분열시키는 편가르기 교육의 상징인 국정교과서의 폐지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공식 폐지 과정은 단순했다. 교과서를 국정·검정 혼용으로 할 것인가 검정만으로 할 것인가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교육부장관의 결정 사항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철학의 만남』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행한 3차례 강의와 한 차례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3개의 장 곧 ‘역사를 보는 두 입장’, ‘사관이란 무엇인가’, ‘세계화를 보는 시각’으로 구성돼 있다. 3개의 장은 기존의 학문적 주장들을 논박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1장에서는 역사를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로 보는 역사주관주의를 비판하면서 역사를 과거의 재현으로 보는 역사객관주의를 옹호하고, 2장에서는 “사관 없는 역사 서술은 맹목이고, 객관성 없는 사관은 공허하다”라는 주장을 개진하고, 3장에서는 세계화를 문명의 충돌이나 공존이 아니라 융합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역사를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는 이유를 ‘역사가 과학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이념의 영역’이라는 사실에서 찾는다. 역사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재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과학의 영역에 속하지만, 과거를 재현할 때 현재의 가치가 개입되기 때문에 이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는 역사를 ‘현재의 가치’가 개입하는 ‘재현의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현재의 가치가 개입되지 않은 재현은 가능하지 않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가 존재하는가와 ‘역사관’의 우열을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역사존재론과 역사인식론의 문제다. 저자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가 존재하며, 역사관의 우열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 세계의 地圖이며, 지도를 그리는 지리학이 과학이듯이 과거를 재현하려는 역사학도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과감하고 대담하게 ‘역사적 지식의 객관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관점이나 용도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지도가 있을 수 있듯이, 역사관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역사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사관을 역사를 바라보는 통일적 관점으로 정의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사관을 절대적 진리로 생각하고 타인의 사관을 모두 잘못됐다고 배척하는 태도나, 모든 사관이 동일한 값을 갖기 때문에 어떤 사관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상대주의를 함께 비판하면서, 사관은 역사를 설명하는 실재론적 가설이며 설명력에 의해 그것의 진위와 우열을 가릴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70년대 과학철학계에서 과학의 합리성 논쟁이 전개됐을 당시 이론 선택에 대한 포퍼의 합리주의와 쿤의 상대주의를 종합하면서 새로운 합리성의 이론을 제시한 라카토슈의 ‘과학적 연구프로램의 방법론’을 원용한 것이다.

역사관에 과학적 가설과 동일한 지위를 부여하고, 과학적 가설(패러다임 또는 연구프로그램)의 진위와 우열을 판단할 수 있듯이 역사관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많은 논쟁의 여지를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신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문명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 기초하여 세계화를 해석하고 있다. 문명의 충돌(헌팅턴)과 문명의 공존을 넘어 문명은 융합한다는 ‘문명 융합론’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문명은 충돌하기도 하고 공존하기도 하면서 또한 융합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문명의 충돌론·공존론·융합론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 개념이다.

이 책의 강점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인스턴트 인문학’을 넘어 독자의 심도 있는 생각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학은 더 나은 문제를 제기할 뿐 확정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떤 철학자가 확정적 해답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사고를 출발시키기 위함이지, 사고를 종결하기 위함이 아니다.

『역사와 철학의 만남』이 역사 서술의 객관성에 대한 대답을 주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이론적으로 객관적 역사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구체적인 역사 서술의 객관성에 대해 의견 일치가 어려운 경우, 역사철학자의 주장이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 국가와 국가 사이, 이념을 달리 하는 사람들 사이에 역사 논쟁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개관적 역사 서술이 실제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철학적 분석 곧 역사철학에는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고, 우리가 어떤 이론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실제 역사 서술의 객관성에 대한 판단은 달라진다.

철학은 모든 문제에 대해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잠자는 이성을 깨워 사유로 이끌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 서문에서 “나는 나의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고를 덜어주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사고에 이르도록 북돋워 주고 싶다.”고 했는데, 『역사와 철학의 만남』은 비트겐슈타인이 의도한 바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의 만남』은 대중강연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철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이 역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철학의 대중화’ 또는 ‘인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본문읽기

열린 문명은 역사의 필연적 방향인가? 우리가 역사 법칙주의자가 아닌 한에서 이런 주장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역사가 미리 정해진 필연적 길을 따라 전진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을 무력화한다. 또한 열린 문명의 길은 순전히 당위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도 아니다. 열린 문명으로의 길은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 초래할 미래다. 이제 세계는 하나의 사회적 관계망을 갖게 됐고, 서로 다른 지역들 사이에는 사람과 재화의 흐름과 함께 문명의 핵심인 문화 유전자들이 빠른 속도로 뒤섞이며 융합되고 있다. 융합은 새로운 차원이나 보다 높은 단계의 창조가능성을 함축한다. 이런 상황과 이성과 자유의 비가역성 원리를 고려하면 열린 문명의 길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21세기에 들어 경제적 불황이 깊어지면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과거의 닫힌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화 패권주의나 일본의 국수주의가 그런 실례들이다. 미국의 고립주의나 영국의 브렉시트도 세계화 시대를 역행하는 퇴행적 모습들이다. 이런 대응은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에 대한 방어적 몸짓이지만, 문명사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의 후퇴로 해석된다. 우리가 이성적 존재자인 한, 열린 문명의 길이 인류사의 방향일 수밖에 없다.

 

신중섭 강원대·윤리교육과

1986년부터 강원대 윤리교육과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관심분야는 과학철학과 사회철학이다. 최근 저서와 논문으로 『샌델의 정의론 바로 읽기』, 「도덕적 자격과 정의」,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의 한계」, 「샌델의 시민적 공화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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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17-10-19 23:50:26
철학은 본질을 탐구하고 과학은 현상을 연구한다. 그들이 다른 길로 가지만 결국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본질을 발견하면 현상을 이해하고 반대로 현상을 이해하면 본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유명한 과학자들(김정욱, 김진의, 임지순, 김필립)도 반론을 못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면 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 책을 보라! 이 책은 과학으로 철학을 증명하고 철학으로 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