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8:45 (토)
[Cogitamus]촘스키가 논어를 읽는다면...
[Cogitamus]촘스키가 논어를 읽는다면...
  • 이강재 서울대·중어중문학과
  • 승인 2017.10.16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나는 여러 해 전에 해방 후 간행된 논어 관련 서적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까지 200종 가까운 책이 간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매년 십 여 종의 논어 관련 서적이 출간된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현재시점에서 다시 조사한다면 대략 300종 이상의 책이 간행된 것으로 조사될 것이다. 문사철을 막론하고 동아시아의 고대를 전공하는 학자들에게 자신만의 논어를 한 권 써보는 것은 일종의 로망에 속하기에 이처럼 많은 책이 출간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그런데 최근의 논어 출판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저자가 동아시아 고대 전공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가 입장에서 논어를 해설해 ‘논어경영학’의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이 이미 여러 종이고 CEO를 위한 논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도 있으며 기자의 입장에서 또는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사회적 문제와 함께 논어를 논한 서적도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존숭되어온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고, 유학의 기본 정신이 자기 자신을 수양한다는 修己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다스린다는 治人 역시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처럼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논어를 자기의 자리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논어가 갖고 있는 원래의 취지에도 맞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8월 출간된 『공식으로 읽는 논어명구』(김종호 지음, 한국외대교지식출판원 刊)라는 책은 이전과는 다른 방법론으로 논어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책이다. 이 책은 논어 전편 중 101구에 대해 문법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특히 촘스키에 의해서 발전해온 생성문법적 관점을 바탕으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그 동안 문법에 입각한 논어 해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의 淸代를 중심으로 유가 경전을 언어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주로 허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뤄졌다. 현대에 와서 대만의 언어학자 許世瑛이 『논어 20편의 문법 연구[論語二十篇句法硏究]』(1973년 臺灣 開明書店)라는 책을 내면서 논어의 전체 20편에 대한 문법 분석을 시도한 바 있다. 이 책은 구조 분석이라는 전통적인 문법 연구 방법에 따라 논어 전편에 대한 문법적 분석을 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중국의 대륙에서 논어에 대한 문법적 분석이 많이 들어간 책으로, 楊伯峻이 썼던 『논어역주[論語譯注]』(1958년 초판, 2002년 국내에 번역 출간)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비록 ‘문법적 연구’라는 말을 책의 제목에서 내세우지 않았지만, 각 구절의 해설에 문법적 분석이 많이 반영돼 있어서 논어를 문법적으로 읽을 때 도움이 된다.

국내에도 논어에 대한 문법적 분석을 시도한 책이 출간된 바 있다. 비록 중국언어학 전공자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류종목의 『논어의 문법적 이해』(문학과지성사, 2000)가 그것이다. 이 책은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오지 않은 문법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 논어책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평가에서는 호오가 엇갈렸다. 전통적으로 논어를 공부했던 학자들에게는 비판을 많이 받은 면이 있지만, 한자와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새롭게 논어를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한문으로 된 논어 문장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류종목의 책에 대해 호오가 엇갈렸던 것처럼, 최근에 간행된 『공식으로 읽는 논어명구』라는 책은 중국언어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나 유학을 전공한 학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이 책이 논어 전체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생성문법에 근거한 것이어서 일반 독자에게는 불친절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논어를 공부하는 생성문법 전공자라는 것이 이 책의 저자가 지닌 특징으로 높이 평가될 수도 있지만, 출판된 책만으로 볼 때에는 일반 독자를 불편하게 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또한 문법적 분석의 전제는 각 구절에 대한 정해진 해석의 방법을 따르는 것인데, 해석의 방법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 당연히 문법적 분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에서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논어 구절은 이설이 없는 구절은 없다고 할 정도로 해석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해석 방법이 제시됐기 때문에 일방적인 하나의 해석만으로 문법을 분석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한다.

다음으로 논어의 문법적 분석을 통해 원래의 뜻은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갖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논어를 통해서 논어를 해석한다는 ‘以論解論’의 전통을 생각한다면 논어의 언어적 분석이 갖는 가치는 크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는 철학적 분석은 기본적으로 후대의 해석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언어적, 문법적 분석이 지닌 가치를 살펴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논어를 전공하고 논어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인 나로서는 이러한 책이 간행된 것에 대해 반갑고 기쁜 마음이다.

이강재 서울대·중어중문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