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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 사자성어로 풀어보는 교수들의 2002년, 그리고 2003년
분석 : 사자성어로 풀어보는 교수들의 2002년, 그리고 2003년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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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세밑 풍경은 각양각색이기 마련이다.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이 영사기의 필름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다음 해를 기대하는 설렘에 들뜨기도 한다. 마냥 다사다난했다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2002년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교수신문에서는 전국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해 ‘교수들이 바라본 2002년’이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은 인터넷과 팩스를 통해 진행했으며 약 1백20여명의 교수들이 참여했다.

‘대~한민국’, 여중생 그리고 대선

2002년 6월 전국 방방곡곡을 출렁이게 했던 붉은 물결을 기억하는가. 광화문과 시청 앞을 타고 흘러 한반도 전역에 울려 퍼졌던 함성을 기억하는가.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바로 ‘월드컵 개최와 4강 진출’. 온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한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는 교수들이 뽑은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어록으로 뽑히기도 했다.
‘여중생 압사사건과 촛불시위’도 빼놓을 수 없다. 월드컵과 공동 1위를 기록한 ‘여중생 사건’은 ‘SOFA 개정운동’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시위’, ‘교수들의 시국선언’까지 이끌어내는 등 아직도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사건. 지난 19일 치뤄졌던 ‘대통령 선거’와 ‘국민경선과 후보 단일화’가 그 뒤를 이었으며, 이외에도 ‘친일인사 명단공개’, ‘북한 핵 재가동’, ‘진보정당의 약진’, ‘서해교전’, ‘여름을 강타했던 태풍과 수해’ 등이 2002년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뽑혔다.
올해로 마감하는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 중 베스트 정책으로는 62%에 이르는 교수들이 ‘인문학 지원정책’을 꼽았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고는 잘 된 정책으로 꼽힌 항목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좋은 정책이 없었다’ 등의 기타 의견이 26%에 이르고 있어 대부분의 교수들이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패한 교육정책으로는 사립학교법 개정 폐기(29%), 두뇌한국 21(26%), 계약제·연봉제 도입(20%), 모집단위 광역화(14%), 국립대 발전계획안(6%) 등의 항목 순으로 집계됐다.
2002년 대학·교수사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는 많은 교수들이 ‘교수노조 설립 1년’과 팔등신 사건의 김동우 교수 재임용 탈락, 한성대 김동애 비정규직 교수 사건 등 ‘부당한 교육인사’를 꼽았다. 커져만 가는 강의실, 내몰리는 학생들, 기초학문 등 대학교육의 황폐화 등 ‘모집단위 광역화’가 빚어내고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올해에도 교수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남기에 충분했다. 설문에 응한 모 교수는 학부제, 기초학문 붕괴로 나타난 “교육황폐화의 여러 징후들 앞에서 교수로서 무력감과 한심함을 느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봉건적 사제관계를 보여줬던 논문 무단 도용 및 표절 사건’, ‘총장들의 국립대학발전안 지지’, ‘동국대 교수 성폭행 역고소 사건’ 등도 교수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편가르고, 만나고, 모이고, 흩어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서 모이고, 그러다 입맛에 안 맞으면 다시 헤어진다. 21세기 첫 선거를 끼고 있는 해라 그런지 이런저런 정치적 이슈를 타고 유난히 말도 많고 바람도 많이 불었던 한 해. 이런 올 한해를 교수들은 ‘離合集散의 해’로 명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오직 몸보신과 양지만을 선호해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인’과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유리한 방향으로 분별없이 헤치고 모이는 모습’이 그 여느 때보다도 두드러졌기 때문이라는 것.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이 꼽힌 올해의 사자성어는 ‘同床異夢’. 열 길 우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던가. ‘남과 북, 한국과 미국, 북한과 미국, 한국과 일본, 여당과 야당 모두 나름대로 해석·이용’하려 한 2002년은 영락없는 동상이몽의 그것과 닮아있다고 말한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일부 교수들은 ‘右往左往’에 ‘左衝右突’이라 말하기도 한다. 한 교수는 이에 덧붙여 “규범과 원칙, 미래의 방향을 상실하고 소문에 휩쓸려 가는 세태”를 개탄하며 2002년 “우리의 대학과 학문의 자화상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던가”하며 되묻기도 한다.
2002년 해외 흐름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眼下無人’에 입을 모았다. 세계적인 비판과 우려 속에서도 보수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과 최근 전국민적 촛불시위까지 이어진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에 대한 ‘아름다운 나라’, 미국의 부당한 태도에 대한 따가운 일침을 가하는 비유인 셈.

학생에 웃고, 학생에 울고

어수선했던 ‘이합집산’의 한 해 속, 교수들의 삶은 어떻게 꾸려졌을까. 많은 교수들이 자신들의 2002년을 ‘戰戰兢兢’, ‘暗中摸索’, ‘四面楚歌’으로 표현해 장밋빛만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학부제로 인한 기초학문의 위기 등 ‘학교 강의가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학문 외적인 잡일’에 시달리거나, ‘교육과 연구 이외의 일이 너무 많았을 때’, 혹은 ‘졸업생의 진로 향방을 지켜볼 때’ 교수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더구나 학문 외적인 일은 늘어만 가는데, 업적 평가는 더욱 강화돼 질적 연구보다 양적 연구 산출에만 힘써야 하는 모순적인 양상 역시 교수들의 사기를 꺽는 일 중 하나.
자신의 2002년을 ‘走馬看山’이라 밝힌 한 교수는 “잡일에 매달려 연구에 전념하지 못한 것이 내 2002년이었다”라며 “월급을 올려주지 않아도 되니 내버려달라”라고 응답해 교수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 마련의 절실함을 토로했다.
교권 침해와 대학 구성원간의 문제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전체 설문 응답 인원의 30% 이상에 달하는 교수들이 ‘편입생을 모아오거나 학생 지도일지 작성을 강요하는 학교’와, ‘총장선출과 재단의 의견조율’, ‘비합리적인 교수 인사과정’, ‘대학 경영진의 관료적인 태도’, 일부 ‘교수들의 보신주의 행태’ 등 학교 행정과 동료교수들 간의 갈등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무성의한 수업 태도도 한 몫 한다. ‘학생들이 공부를 게을리 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며, ‘학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는 교수들에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다.
그렇다고 보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구성과물을 책으로 펴내거나, 논문이 해외 학술지에 실렸을 때, 연구비 지원 등 자신의 연구 성과물이 인정을 받았을 때 많은 교수들이 ‘苦盡甘來’의 희열을 맛봤다고 답했다. 교수회 설립이나 교수노조의 활동이 성과를 거두었을 때 역시 교수들에게 보람의 순간.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함께 호흡하는 제자들로부터 힘을 얻는 것 역시 교수들. 과반수에 달하는 교수들이 2002년 가장 보람있었던 때를 학생들과 함께 했던 바로 그 때에서 찾았다. ‘대단위 교양 강의에서 경청을 한 학생들을 마주할 때’, ‘종강 후에 강의를 유익하게 들었다고 이메일을 받았을 때’,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심히 수업에 임해주는 학생들의 열의를 느꼈을 때’, ‘학생들의 지적 성장이 몸소 느껴질 때’, 그리고 ‘학생들이 나를 찾을 때’ 그 누구보다 뜨거운 위로와 용기를 얻는 것이 교수 아니던가.

꿈★은 이루어진다

다가오는 2003년. 교수들은 ‘연구시설 확충과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내년에 가장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로 꼽는다. 저서 활동과 논문 발표도 한 축을 이룬다.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여건을 개선하고 그 위에 학자들의 열의가 보태진다면 설문에 응한 모 교수가 바라는 것처럼 선진 대학과 같은 “불꽃튀는 연구 분위기”가 그리 요원하지만은 않을 듯 하다.
‘사립학교법 개정’과 ‘교수노조, 교수회 등의 합법적 인정’, ‘지방대학 육성책 마련’, ‘SOFA 개정’ 등 사회적 사안에 대한 바람도 빼놓지 않는다. 교육 정책과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교육개혁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새롭게 거듭날 교육환경에 교수들은 기대를 걸고 있다. 조용하게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自己省察’의 시간과 ‘건강’이라는 소박한 희망 역시 빼놓지 않는다.

이은정 기자 iris79@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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