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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문명 관점에서 분석한 빅히스토리 … 그의 논의에서 빠진 것들은?
자본주의 문명 관점에서 분석한 빅히스토리 … 그의 논의에서 빠진 것들은?
  • 강문구 경남대·정치외교학과
  • 승인 2017.10.10 11: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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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_ 유발 하라리의 인간 종의 역사와 미래에 관한 거대담론(2)

예루살렘의 히브리대 역사학과에 적을 둔 ‘유발 하라리’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저서『사피엔스』(2015)를 통해 인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논쟁적인 담론을 제안한 그의 지적 수사에 대해 구체적 내용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라틴아메리카 변혁운동과 한국 민주주의 문제를 천착해오다 회심한 정치학자인 강문구 경남대 교수가 <교수신문>에 유발 하라리의 지적 작업을 자본주의 문명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진단한 글을 보내왔다. 200자 원고지 52매 분량에 담긴 촘촘한 그의 논의는, 하라리의 책을 투과하면서 자본주의 문명, 과학 제국, 행복한 삶의 문제라는 연관된 고리로 더욱 단단해진다. 정치학자가 유발 하라리의 빅히스토리를 어떻게 분석하는지 따라가 본다. 강 교수의 글을 2회로 나눠 싣는다.
 [계속]

 

3) 허구적 상상의 질서와 세 가지 보편적 질서
하지만 사람들이 창조한 모든 상상의 질서 안에는 ‘우리’와 ‘그들’의 경계선이 분명히 있었으며, 그들은 주로 야만인, 오랑캐들로 간주됐다. 이러한 구분과 구별의 세계관에 일대 변혁, 즉 보편적 질서를 향한 심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질서였고,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으며,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사피엔스』, 247쪽) 온 세상에 공동의 질서를 세우고자 한 부류는, 하라리에 의하면, 상인, 정복자, 예언자 들이었다. 상인은 세계적인 단일시장 질서를, 정복자들은 세계적 단일제국을, 예언자들은 하나의 진리로 통일되는 세계를 꿈꾸었다.

4) 인간이 만든 최고의 신뢰 시스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정복자-돈
이 중에서도 돈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라리의 예찬을 조금 극화시키면, 돈이 종교보다, 제국보다, 영원하고 강력하고 유연하다는 것이다. 극도의 관용과 융통성을 지니고 사람들을 열렬한 사도로 만들었던 역사상 최대의 정복자는 돈이라는 것이다. 하라리의 표현을 빌리면, “같은 신을 믿거나 같은 왕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로 기꺼이 같은 돈을 사용하려 한다.”(『사피엔스』, 247쪽) 하라리는 사도 바울이 신약(디모데전서)에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만 악의 뿌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와 동시에 하라리는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으로서 돈이 언어나 헌법, 문화코드, 종교,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개방적이고 유연함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으며,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라고 평가한다. 돈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평가는, 마르크스가 강조하려 했던 자본주의 체제의 혁신적이고 구조적 특징, 월러스틴이 제기한 하나의 통합된 틀로서의 세계자본주의 체제, 브로델이 추적한 삼층 모델을 통해 장기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중층적 특징을 하라리 특유의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하라리 메시지의 장점은 이렇게 대단해 보이는 돈이 가져올 해악에 대해서도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변환시킬 수 있는 돈은, 따라서, 지역 전통, 친밀한 관계, 인간의 가치를 부식시키고, 자식을 노예로 팔기도 하고 신성한 교회에서 면죄부를 팔기도 하며, 왕과 조국을 배신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인간관계의 지고지순한 것, 그래서 돈으로 매매해서는 안 되는 것들마저 모조리 사고팔고 함으로써 돈이 지배하는 제국과 종교를 만들어 낸다. 여기서 인간의 가치나 존엄은 화폐에 드러난 수치에 불과해진다. 하라리는 돈이 공동체, 신앙, 국가라는 댐을 무너뜨리면, 세상은 하나의 크고 비정한 시장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러한 경고를 들어왔으며 얼마나 그냥 또 무시해왔던가?

5) 과학 제국 자본의 되먹임 고리
하라리는 이러한 논의를 ‘과학과 제국과 자본 사이의 되먹임 고리’ 논쟁으로 이어간다. 과학과 제국이라는 쌍둥이 터빈이 어떻게 서로 맞물렸는지, 그리고는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돈 퍼내는 펌프에 정착됐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과학과 제국의 ‘결혼’은 근대, 특히 유럽의 근대를 획기적으로 추동시키고 성공시켰으며, 이 뒷배를 봐준 게 바로 자본주의였다. 돈의 이윤 창출 작동 기제를 기술하면서 시작된 자본주의는 서서히, 그리고 거대한 규모로 경제적 교리를 넘어서 윤리와 규범을 내재한 자본주의 교리로 격상돼 왔다. 근대를 열었던 유럽에서 작동된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는 신용대출과 자금공급, 신대륙발견과 식민지 쟁탈을 불러왔는데, 이는 주지하다시피 두 차례의 전쟁을 초래했던바, 화려한 색깔로 채색된 인류 근대성의 잔인한 면모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선조가 기원전 8천500년 전에 농업혁명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농업을 포기하지 못했듯이,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라리는 진단한다.

6)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는가?
하라리의 거대 담론이 인간의 행복에 대한 논의로 결론에 이르는 것은 흥미롭다. 그리고 이 행복론은 인간의 행복만을 문제 삼지 않는 데서 하리리 담론의 일관성이 엿보인다.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이 산업적 착취에 희생되는 이 전대미문의 비극적 사태에 직면해 오로지 상류층이나 유럽인이나 남자만을 대상으로 지구 전체의 행복을 측정하는 것은 잘못이며, 또한 인류만의 행복을 고려하는 것도 같은 논리에서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인간의 행복이 생화학적 시스템에 의해 작동된다면, 역사의 의미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왜냐하면 역사는 인간의 생화학 시스템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라리의 행복론을 단순화시키면, 인간 뇌의 생화학적 시스템에 대한 적절한 오법을 개발하건, 아니면 종교든 신념이든 간에 자신의 내러티브와 주변인들의 내러티브를 일치시킬 수 있는 집단적 환상(신조)을 믿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인간은 스스로 생화학 시스템을 개조하든지, 스스로를 좀더 효과적으로 기만하라는 것이다. 하라리 자신도 밝혔듯, 이는 아주 우울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제국의 흥망과 경제발전, 종교 부흥 등도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는 이 공백 메우기가 앞으로의 가장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하라리는 불멸을 향한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언급하면서 인간이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동시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 것인가?’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질문이 얼마나 섬뜩하냐는 自問과 함께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 거대 담론의 아우라와 아쉬움

 잠시 동안 쉬며 /  황량한 사막 가운데 있는 /  샘물에서 솟아난 것과 같은 /  존재의 한순간을 맛본다. / 그러나 보라! / 무(無)에서 온 /  유령의 상단(商團)들이 이미 도착했다. / 아, 서둘러 살자! ―크리스천, 『시간의 지도』 중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그간 분과학문의 틀과 구획에 갇혀있던 주요 주제들, 예를 들면, 행복, 불멸, 감정, 욕망 등의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통합적, 통사적, 통섭적으로 조명하고 조망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인간의 욕망과 충족의 기제를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성취를 설명했다면, 하라리는 그 진폭과 지평을 훨씬 확장하고 심화시켰다. 인간 종의 기원으로부터 그 종이 이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과정을 세 개의 혁명, 즉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통해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인류가 통합을 이루면서 세상을 정복하는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돈, 제국, 종교를 통한 보편적 질서의 추구와 자본주의, 제국주의, 과학혁명을 통한 인류 사회의 발전 과정을 총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기능과 기여, 한계와 해악을 촘촘히 검토하고 있다. 

필자는 모두에서 자본주의의 장기지속과 성공의 비결을 문화에 대한 좌파적 통제와 장악이 아니라 자본과 경제를 통한 간접적인 접근에서 찾으려 했다. 이러한 입장은 하라리가 강조하는 가장 유연한 최고봉의 정복자가 바로 돈이었으며, 이 돈을 통한 보편적 질서의 구축이 자본주의 체제 혹은 문명 발전의 엔진이었다는 진단과도 맥을 같이 한다.    

자본주의는 그 본질상 인간의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욕구에 기초하기에 폐쇄적이거나 독단적이거나 교조적으로 변질되는 순간 사양길로 접어든다. 돈, 제국, 종교의 관계에 있어서 제국과 종교, 혹은 국가(정치)와 종교가 결탁하는 것이 어떠한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유럽정치사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정교분리의 근대 세계에서 돈 혹은 자본은 날개가 꺾이지 않은 채 계속 비상해오고 있다. 돈이 만들어낸 보편적 세계질서에 대한 하라리의 높은 평가는 자본주의 체제나 문명에 대한 그 어떠한 분석이나 평가보다 현실적이고 통합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돈, 제국, 종교가 자본주의, 제국주의, 과학주의로 변모 발전하는 과정에 대한 인식도 설득력이 높아 보인다. 종교가 후퇴하고 제국주의의 폐해를 목격한 이 시점에 남은 것은 이제 돈과 과학이다.

자본주의 체제와 엮여있는 자본주의 문화 혹은 문명은 다양한 인간의 욕망을 수용해야 하므로 열린 체제이고 하이브리드식이고 종합적이고 통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경제·산업· 기술·과학은 물론, 디자인·예술·문화·문명·미학 등의 얼개도 다면적으로 수용하고 다층적으로 주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과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정치·문화·문명을 접근하고 인식하는 방식도 당연히 통사적이고 통섭적이고 통합적이 돼야 한다. 하라리의 접근방식이 태곳적부터 미래로 열려있는 무한한 공간에서, 오랜 기간 인간이 맞닥뜨려온 본질적 주제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 사회와 세계 혹은 그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반드시 참조하고 의식해야 할 이정표가 됐다고 생각한다. 

인간 종의 과거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한 하라리의 문제의식은 현실과 만나 미래를 예측하면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그러나 이 인간의 행복 추구 과정이 생화학적 시스템과 컴퓨터 알고리즘 차원으로 위축되는 것은 인간이 처한 사회적·정치적·종교적·문화적 환경과 구조적·상황적 변수들과의 관계를 희석하는 것 같아 아쉽다. 종교와 제국의 질서를 거쳐, 다층적 자본주의 문명 하에서 자유분방하고 재기발랄한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시대에서, 만약 생화학 시스템과 컴퓨터 알고리즘의 신봉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이라면, 세계의 지배자이자 정복자로 등극한 인간은 여전히 별반 더 행복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도, 자발적인 희생도, 무엇보다 사랑의 흔적과 자리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강문구 경남대·정치외교학과
연세대 영문과를 나와 미국오하이오대에서 정치학 석사, 미국 뉴멕시코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간 라틴아메리카의 변혁운동과 한국 민주주의 등에 관심을 가져오다 2004년 회심했다. 지은 책에는 『포위된 혁명: 니카라과 혁명건설 10년 사의 현대적 조명』,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와 진로』, 『한국 민주화의 비판적 탐색』, 『성경동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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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17-10-10 15:54:50
선과 악이나 정의와 불의라는 단어는 인간이 만든 것이며 하느님은 세상을 선과 악이나 정의와 불의로 구분하지 않으므로 하느님은 선한 자나 정의로운 자의 편이 아니다. 오랜 역사동안 종교인들과 진보세력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규정한 ‘선’과 ‘정의’를 실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유명한 과학자들도 이 책에 반론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