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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잃은 소년, 문학사의 숲에 큰 나무로 남다
나이 잃은 소년, 문학사의 숲에 큰 나무로 남다
  • 송희복 진주교대·국어교육과
  • 승인 2017.10.10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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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 정정호의 『피천득 평전』(시와진실, 408쪽, 29,000원)을 읽고

 

“스승인 피천득의 평전을 쓸 것 같으면, 정정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체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피천득을 지나치게 객관적인 존재(대상)로 파악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일쑤 세평에 기댄 감이 없지 않았고 (자신이 경험한 내용은 다소 반영돼 있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된 평판도 그다지 다채롭지가 못한 것 같다.”

 

백년 가까운 평생을 두고 자연인으로, 또 시인과 수필가와 영문학자로 살아온 피천득에 관해 평전을 쓴 비평가 정정호는, 그의 수필을 가리켜, 한마디로 말해 운명이요, 존재 양식이요, 무의식이며,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삶이라는 '운명'과 산문이라는 '형식'이 만난 그의 수필에는 우리를 윽박지르는 억압도, 어떠한 이념적 강권도 없다고 한다. 이 긴요한 사실의 적시는 정정호가 피천득 수필관을 가장 요약적으로 드러낸 평판의 내용이라고 하겠다. 수필가라는 주된 이미지 때문에 가려진 시인으로서의 피천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시 역시 삶이라는 '운명'과 운문이라는 '형식'이 만나게 된 글쓰기의 한 소산인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은 결곡한 시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산문이다. 그의 시와 수필은 서로의 경계가 모호해진 합일의 경지를 지향한다. 그에게 있어서의 시와 수필은 서정성을 공통점으로 삼는다. 그의 시에서든 수필에서든 교훈적이고 논설적인 거대담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그것들은 작고 소박한 데서 아름다움을 찾는 주정적인 소품일 따름이다. 정정호는 운명이 형식을 규정한다는 루카치의 미학 이론에 기대어 피천득의 시와 수필을 가리켜 ??하나의 운명으로서의 형식??(225쪽)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루카치에 따르면, 시가 운명으로부터 형식을 받아들여 이를 운명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면, 에세이(수필)는 형식을 운명 자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나의 독법이 치명적인 오류를 가지는 게 아니라면, 운명이 세계를 재현하는 관계(망)라면, 형식은 언어를 표현하는 관습이다. 피천득 수필의 운명이 시의 형식을 녹아들게 해 안팎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융합의 형식을 완성해간다. 이 완성된 경지에 수필 「오월」이 놓인다. 이 작품은 시적 산문이거나, 아니면 숫제 산문시와 같은 것이다. 그의 산문 같은 시에 서사적인 성격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또한 그의 시 같은 산문에 시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정정호의 『피천득 평전』은 피천득의 생애와 문학과 사상에 관한 세세하고도 다층적인 정보의 총량을 제시하려고 했을 뿐 아니라, 평전적인 글쓰기에 있어서 연대기적 서술의 線형보다는 주제적 접근의 点형을 지향하고 있다는 게 최대의 미덕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미시적인 면에서 새로운 비평적인 화제를 적잖이 도출하고 있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가 황진이에 대한 문학적인 경애의 감정을 나타낸 부분이다. 점과 점을 연결시켜 한 개인의 새로운 전기적인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평전의 자랑거리다. 피천득은 황진이가 시간을 공간화하고 또 공간을 시간으로 환원하는 데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도 없는 기법이라고 한다. 정정호는 이 기법과 피천득의 시 「기억만이」가 서로 무관치 않다고 본다. 나는 이 「기억만이」야말로 피천득 시편 중에서 가장 주옥같은 명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현대시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놓일 명시의 한 편이라고 해도 결코 손색이 없다.

황진이는 거문고를 잘 탔다. 피천득이 평생을 두고 그리워한 요절한 어머니도 거문고를 잘 탔기 때문에 자신의 호를, 거문고에 능한 여인의 아이, 즉 琴兒라고 했다. 그의 외손자인 스테판 재키브는 천재적인 바이올린 주자로서 국제무대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점묘법의 방식이 주제비평의 관점에서 한 개인의 전기적 사실을 재구성하게 한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피천득이 수필가 이전에 먼저 시인으로서 문학적인 성취도를 높였다는 데 놀라웠다. 딴은, 그가 남긴 최초의 저서는 시집인 『서정시집』(1947)이 아니던가. 그는 시조도 연시조를 포함해 30편을 남겼다.

피천득을 소극적 저항주의자로 본 것도 주제적 접근의 평전이 남긴 부산물이다. 평전의 제3부 제3장에 이르러선 18면의 분량에 걸쳐 인간 피천득의 소극적 저항주의를 주목하고 있다. 그가 상해에서 영문학을 공부할 때 연구 대상으로 아일랜드의 민족시인인 예이츠를 선택한 것도 식민지 청년 지식인으로서의 동병상련 때문일 것이다. 정정호가 피천득의 소극적 저항주의를 돌올하게 드러낸 것은 교수신문 기자 최익현이 이미 지적한 바처럼 기존의 평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해석이다.

또 불교와의 관련성을 주목한 것도 뜻밖이었다. 독자 대중에게는 피천득이라고 하면 가톨릭적인 청빈과 무욕의 이미지가 매우 견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제강점기에 금강산에 입산해 불경을 공부하면서 승려로 출가하려고 했다고 한다. 내게 가장 크고도 선명한 울림으로 남아있는 부분은 그가 금강산에 계속 머물러 승려가 됐다면, 고승이 됐을 거라는 사실이다(98~99쪽 참고).

피천득은 늘그막에도 아이 같은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는 어른으로의 성장을 멈추고 나이를 잃은 영원한 소년이 됐다. 그의 모든 글쓰기는 동심의 발현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심미적 단순성의 극치에 도달한 것이다. 불교의 이른바 禪이라고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비이성적, 불합리한 동심이요, 논리의 세계를 넘은 단순성이 아닐까? 고승들의 얼굴을 보면 노경의 피천득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자연에 순응하는 미소’(342쪽)랄까? 고승이 됐을 것이라는 가정은 꽤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남는 말이 내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피천득이 시인으로서 과소평가를 받았다면, 유족과 제자들이 나서서 연구자들을 위해 낱낱의 시 작품의 개작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시전집을 간행해야 한다. 물론 원작은 그 당시의 표기와 띄어쓰기를 그대로 살린 것이라야 한다. 둘째, 평전이 더 전문적인 내용을 세목화 할 필요가 없었겠느냐 한다. 피천득이 가졌던 우리 말글의 사랑 및 모국어 의식은 주제론의 매우 중요한 세목인데, 논의가 여기저기에 파편화되거나 분산돼 있다. 이런 것은 한 곳으로 모여야 한다. 셋째, 스승인 피천득의 평전을 쓸 것 같으면, 정정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체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피천득을 지나치게 객관적인 존재(대상)로 파악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일쑤 세평에 기댄 감이 없지 않았고 (자신이 경험한 내용은 다소 반영돼 있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된 평판도 그다지 다채롭지가 못한 것 같다.

피천득 삶의 목적이 '나무되기'에 있었다고 본 것은 적절했다. 그의 영혼은 지금 나무로 성육신(incarnation)화돼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문학사의 숲에 남아 있는 큰 나무일 것이다.

송희복 진주교대·국어교육과
필자는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입선함으로써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책에는 『고전문학사의 벼리』, 시집 『경주의 가을을 걸으면』, 평론집 『호모 심비우스의 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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