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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대 판매와 대형 서점의 정체성
매대 판매와 대형 서점의 정체성
  •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 승인 2017.10.1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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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가계동향조사’에서 매년 감소하는 지출 항목이 있다. 바로 도서구입비다. 가계의 소비와 지출은 대체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여 왔지만, 유독 책을 구입하는 데는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도서구입비는 2003년 이래 매년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학습참고서를 포함한 가계 월평균 도서구입비는 2003년 3만7천793원에서 2016년 1만5천234원으로 무려 59.7%나 감소했다. 절대 액수뿐만 아니라 가계 지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도서구입비의 비중도 대폭 감소했다. 2003년 1.3%이던 것이 2016년에는 0.45%로 추락했다. 정부가 2018년 7월부터 도서구입비에 대해 추가 소득공제를 한다고 발표했지만, 그렇게 한다고 책을 더 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오프라인 대형 서점들이 경영난 타개법 중 하나로 택한 것이 ‘매대(판매대)를 판매’하는 것이다. 개인의 책 구매가 줄어들자 광고용 매대를 출판사에 빌려주고 매출을 보전하려는 것이다. 책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하는 ‘평대’라 불리는 판매대가 그 대상이다. 물론 이러한 매대 판매는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대형 매장에서 통행량이 많은 일부 매대에 한해 출판사에 일정 기간 유료로 빌려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렸다. 제한적인 ‘광고 매대’라 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대형 서점들이 매대를 대대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독자들이 많이 찾는 일부 서점에서는 매대를 사려는 출판사를 대상으로 추첨하는 일도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대형 서점의 사회적 역할 중 하나는 가능한 많은 책을 진열해서 독자들에게 책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일이다. 많이 판매되지 않더라도 해당 분야의 필수 도서나 고전급 도서를 비치하는 것도 대형 서점이기에 기대하는 일이다. 대형 서점에 없는 책이라면 그 책의 실물을 보고 구매 여부를 판단할 기회는 거의 얻기가 어렵다. 물론 아무리 넓은 대형 서점이라도 모든 책을 진열하기는 어려우므로 나름의 선택과 추천(큐레이션) 기능이 필요하다. 서점마다 각기 다른 구색과 특색이 거기에서 생겨나고, 독자는 이를 신뢰하며 구매의 판단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져 왔다. 다른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달리 소비자인 독자는 서점이 독자의 편에서 구입할 만한 좋은 책을 매장에 진열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매대를 판매’하는 서점이라면 그런 기능을 하기 어렵다. 서점의 책에 대한 판단이 제거되고, 신뢰할 만한 유통경로로서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오로지 자본력 있는 출판사의 영향력이나 마케팅 경쟁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품 전시장’에 지나지 않는다.

오프라인 서점만이 아니다. 인터넷서점에서도 초기 화면의 배너광고가 매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데, 실제로는 광고이면서 광고가 아닌 책 소개인 것처럼 만든 눈속임 기법들이 독자의 눈을 현혹한다. 이미 5년 전에 대형 인터넷서점 4곳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 명령과 함께 상당액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지만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여전히 책의 추천인지 광고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오프라인 서점도 광고 매대임을 명확히 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처럼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대형 서점들의 매대(또는 광고) 판매는 독자를 무시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형 서점의 매대 판매는 출판사 입장에서도 큰 문제다. 책이 팔리지 않아 걱정인 마당에 불필요한 ‘매대 구입비’ 경쟁에까지 판매촉진비를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형 서점들의 과잉 서비스로 서점이 안락한 공짜 독서실로 바뀌며 실제로 진열되는 책의 종수가 대폭 줄었다는 것이 출판사들의 불만이다.

근래 한국의 대형 서점들은 일본의 ‘츠타야’ 방식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서점을 지향한다고 한다. 말이 그럴 듯해서 그렇지, 책과 잡화를 함께 판매하는 ‘책이 있는 상점’일 뿐이다. 츠타야에는 두 가지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츠타야는 책과 영화·게임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 상품을 판매·대여하는 프랜차이즈 매매를 통해 수익을 남기는 모델로 성공했다. 반면 책과 잡화를 결합시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모델은 다이칸야마점을 필두로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 서점의 역사를 연구한 『서점 vs 서점』(로라 J. 밀러 지음, 박윤규·이상훈 옮김, 한울, 2014)을 보면, 미국에서는 돈을 받고 책을 서점에 전시하는 행위가 1980년대부터 있었다. 그러한 행위는 서점의 자율성과 개성을 말살하고 책의 내재적 장점이나 성격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일침이 무겁게 다가온다.  

대형 서점들이 전국 단위로 매장 개설 경쟁을 벌이며 매대 판매를 늘리는 것은 수익 논리에 따른 것이다. 책 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서점의 가장 큰 고객인 독자의 신뢰를 저버리고 출판사의 경영을 압박하는 자멸적인 방식은 우려스럽다. 책 생태계에서 대형 서점의 역할은 독자를 위해 구매의 망라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다. 독자는 책 백화점이 아니라 서점다운 대형 서점을 바란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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