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6:35 (목)
융합연구자의 길
융합연구자의 길
  • 장혜원 한국교원대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17.10.09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장혜원 한국교원대 학술연구교수

나는 노동경제학에 기반한 숙련 연구와 교육을 통합해 연구하는 융합연구자다. 물리교사로 중·고등학생 및 영재 아이들을 대상으로 물리를 가르치다가 교육정책 박사과정을 하면서 진로를 바꿨다. 융합연구를 하면서 크게 세 가지 질문을 해왔다. ‘이 연구주제가 나의 시간, 에너지, 비용을 투자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가?’, ‘연구자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가?’

나의 연구는 ‘미래 교육은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교육자로서 기존의 교육과정방향이나 교육정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왔을 뿐 적극적으로 탐색해본 적이 없어 답답함을 느꼈다. 미래교육 방향 및 교육정책을 제시한 참고문헌들은 다른 나라의 교육정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선행연구를 읽으면서 ‘실증적인 논의가 뒷받침 돼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실증적인 논의를 할 수 있을까?’의 질문에서 노동경제학과 교육을 연계하는 융합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융합연구자로서의 길은 쉽지 않았다. 연구 질문을 소개했을 때,  몇몇 교수님들은 ‘중요한 연구를 하는 구나’, ‘내가 정확히 찾아왔던 연구주제네’, 등등 격려를 해주었지만 ‘과학교사가 무슨 인적자원정책이야’, ‘하나만 제대로 하는 것도 어렵지 않나’와 같은 비판도 들었다. 연구과정은 흥미진진했으나 도전, 실패, 재도전, 성공의 연속이었다. 노동경제학 지식은 대학원 과정을 통해 습득했는데, 처음에는 용어부터 낯설고 어려웠다. 실증분석을 위해 5천400여 개의 직업정보를 분석하고 64만 명의 임금구조와 결합해 회귀분석을 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이신 지도교수님께 조언을 구했고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나의 연구를 위해서 교육연구의 전문성도 필요했다. 최신의 기술과 교수방법을 적용해온 하버드 대학에서의 연구 경험은 미래 교육의 방향을 논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버드 대학교 에릭 마주르 교수는 대학교육에 기여한 바로 미네르바상을 받은 교육혁신가로, 팀 프로젝트 기반으로 수업과정을 개선하고, 자동화된 채점 및 즉시 피드백 시스템을 구축해 학습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팀 평가를 위해 학습자 역량과 학습스타일에 기반해 균형된 팀을 구성하는 것에서 부터 온라인 텍스트북 플랫폼 제작, 학생들의 코멘트를 딥러닝을 활용해 자동 채점하는 시스템까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교육연구의 장이었다.

국내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친 연구자로서 하버드대학에서의 박사후 연구원 경험은 여러모로 터닝포인트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연구 논문의 수준이 양보다 중요했다. 20명이 넘는 전체 그룹 구성원들에게 논문 아웃라인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아야 했다. 박사후 연구원으로서 영문으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IRB 승인, 실험 수행, 논문 작성 및 투고까지 적극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공동연구진과 논문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30장에 달하는 초고는 좋은 학술지에 투고하기 위해 2천500자로 줄여야 했다. 돌이켜보면 시행착오가 많았으나 내가 가진 역량을 뛰어 넘어 우수한 성과를 만들 수 있었던 배움의 경험이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직업에서 요구하는 숙련은 변한다. 교육의 방향을 고민함에 있어서 실증적인 분석은 중요하다. 노동과 교육의 연계가 필요한 시대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나는 학교 현장 및 대학교육에서의 다양한 경험뿐만 아니라 숙련 연구를 했기 때문에 미래 교육의 방향을 논의함에 있어서 거시적이면서도 정교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됐다. 기존의 노동경제학자들이 경제적 분석에, 교육학자들이 교육적 담론에 치중한다면 나는 두 가지를 연계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숙련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고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방향을 논의하고 제안한다.

한국은 융합연구를 장려한다. 그러나 융합연구자들이 설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다. 물리화학이라는 새로운 융합 분야를 열었던 노벨화학상수상자 빌헬름 오스트발드(Wilhelm Ostward)는 무시된 차원의 세계(the world of ignored dimensions)라는 말로 자신의 학문 분야를 일컬었다. 나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운 좋게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모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한국 대학은 전통적인 학제체제가 공고하다. 학문 지식적 차원에서 융합연구는 장려되고 있다. 학자 개인 및 제도적 차원에서도 많은 융합연구자들이 학자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란다. 이는 독창적인 학문 발전 및 자립적인 학문 생태계 구축에 기여할 것임을 확신한다.

 

장혜원   한국교원대 학술연구교수
한국교원대에서 인적자원정책으로 박사를 하고, 하버드 공과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했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숙련의 변화를 분석하고 이를 교육과 연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