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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학자·예술가 어우러져 축제 같은 분위기 …“모든 문자는 평등하다”
시민·학자·예술가 어우러져 축제 같은 분위기 …“모든 문자는 평등하다”
  • 박지미 세계문자연구소·학술코디네이터
  • 승인 2017.09.29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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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자연구소, 세계문자심포지아2017 문자-잇다개최
세계문자심포지아에서 고은 시인이 강의하고 있다.  사진제공=세계문자연구소
▲ 세계문자심포지아에서 고은 시인이 강의하고 있다. 사진제공=세계문자연구소

세계문자연구소(소장 임옥상)는 문자 생태계를 보존하고 새로운 문자 꼴을 발견하기 위한 학·예술 협업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세계문자심포지아’라는 이름의 축제로 알려오고 있다. 올해로 4회를 맞은 세계문자심포지아는 ‘서울로7017’과 윤슬 그리고 대우재단빌딩에서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나흘간 펼쳐졌다.

‘세계문자심포지아2017’은 예술행사로 참여 시민들과 함께 꾸미는‘기억의 집’을 놀이 형식으로 제공했고, 학술행사는 세계문자에 대한 체험과 문자를 기억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이론들 그리고 문자를 소재로 한 작가들의 초청 대화로 꾸며졌다.

지난 14일 오후, 세계문자심포지아의 시작을 알리는 첫 행사는 특별하게 진행됐다. 김종구 이화여대 교수(조형예술학부)와 김원명 한국외대 교수(철학과)가 ‘서울로 고가’에서 침묵으로 벌인‘천천히 걷기’라는 퍼포먼스가 그것. 그들은 ‘1011, 녹슨 녹슬 문자들’이 적힌 피켓을 들고 “이미 녹슨 문자들을 애도하고, 현재 녹슬어 가고 있는 문자들을 보살피자”라는 침묵의 외침을 외치며 개막식 장소인 윤슬까지 행진했고 마침내 행사의 팡파르가 울렸다.

천천히 걷기로 문 열린 ‘초대의 정원’

이창현 국민대 교수(신문방송학)의 사회로 ‘문자 정원’에 초청된 각계 인사들이 저마다의 인사법으로 문자 축제를 축하하는 인사말을나눴고, 특히 환경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린아시아포럼’, ‘골드만 환경상(Goldman Environmental Prize)’의 수상자들이 자리를 빛냈다. 이어 임옥상 대표는 세계문자 생태계의 다양성에 대해 공감과 지지를 표한 참여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와 더불어 “앞으로 세계문자연구소는 세계문자의 평등과 문자의 미래 가능성을 학·예술 협업을 통해 그리고 시민과 더불어 실현해 갈 것”을 약속했다.

학술행사는 크게 세 도막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첫 번째 도막은 한글의 어제와 내일에 관한 것이었다. 발표자 김용희 한국의 정신과 문화 알리기회 연구원은 한글과 세종의 위대함을 감동적으로 전달했는데, 한글에 대한 세계 각국의 언어학 석학들의 찬사가 이어질 때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발표자 이돈규 한글로망 개발자는 한글이 폰트 제작 프로그램의 관점에서도 파스파 문자뿐 당시 그 어떤 문자도 도달할 수 없었던 문자성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제시했다. 파스파 문자는 1265년 몽골의 원나라의 국사 파스파가 쿠빌라이 칸의 명령으로 몽골어 표기를 위해 만든 문자로, 한글 창제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재준 서울여대 교수(시각디자인)는 한글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아래아)를 되살릴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두 번째 도막은 문자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이번 학술행사의 감독인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리더십교양학부)는 기조강연에서 “문자의 본질이 글이나 글을 적기 위한 기호체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기억을 담기 위한 수단”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펼치며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소리와 모습 그리고 시간이나 현장 자체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글자가 창제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기억을 그것의
전체에서 아로새길 수 있는 글자를 ‘알자’라고 불렀다.

전날 발표자였던 전병권 건국대 강사(경제학) 또한 갑골문자로 쓰인 天符經이 종교적 경전이 아닌‘당시 세계에서 발견된 천문 사실들’을 기록한 ‘알자’라는 새로운 학설을 내놓았다. 이도흠 한양대교수(국어국문학과)는 신라시대 비문자의 의미작용 체계를 바탕으로 삼국유사에 나타난 수많은 기록들을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기억의 틀에서 새롭게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문자 독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디자이너 봄로야는 문자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했던 인포그래픽스 ‘사방세계’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을 통해 문자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하나로 통합하는 ‘디자인 방법’을 발표했다.

天符經은 종교경전 아닌 천문기록

세 번째 도막은 문자의 미래 또는 미래 문자에 관한 실험 결과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미래 문자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감행했던 예술가, 프로그래머, 콘텐츠 제작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다른 문자를 결합하는 방법(이광기)과 문자를 매개로 한 증강현실의 구현 방법(이원호), 지도와 시의 결합 방법(권두영), 문자의 이미지두잉 방법(신정아)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번 문자 축제에서 기획된 학술행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민이 직접 학술행사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정진호 작가의 「문자-눈을 달다 ‘문자캐릭터’」는 시민들이 직접 8천 장의 낯설고 읽기도 어려운 세계문자 카드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것을 자기만의 캐릭터로 꾸미는 행사였는데, 5천 명 이상의 시민이 문자 캐릭터를 꾸미고 갔다.

학술행사의 백미는 윤슬에서 펼쳐진 ‘문자와 기억’을 소재로 한 작가들의 대화였다. 여류 소설가 유경숙 작가와 박초이 작가는 서로의 소설작품을 시민과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었다. 원로 작가인 정현기 전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과)와 한국의 국민 시인 고은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과 그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작품에 대한 회고를 시민들에게 들려주었고, 고운기 한양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교양교육원)는 두 원로 작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민과의 자유로운 대화를 이끌어 갔다. 작가들은 누구보다 말과 글에 가장 큰 정성을 쏟는 사람들인 만큼 세계문자심포지아가 ‘녹슬어 가는 문자들’을 지키는 노력을 지속해 줄 것을 당부했다.

세계문자연구소는 이번 심포지아를 통해 ‘모든 문자는 평등하다’는 가치를 퍼트리고, 그를 위해 관용을 넘어선‘서로살림’의 윤리가 필요함을 역설하며, 죽어가는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세계문자 정원’을 건립할 것을 호소했다. 이는 세계문자연구소 누리집에 ‘모든 것을 기록한다’라는 정신이 담긴 무료 아카이브가 개설된 이유다.
 

 

박지미 세계문자연구소·학술코디네이터
이탈리아 피렌체국립대에서 석사를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구술자료 수집을 했고, 『국민이 명령한다 국방을 개혁하라』편집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콘텐츠 및 학회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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