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1:05 (금)
급변하는 시대 속 유교의 재발견… 위기극복 계기 제공할까
급변하는 시대 속 유교의 재발견… 위기극복 계기 제공할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9.28 1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 전공자들의 ‘유학(유교)’ 조명한 책들은?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함재봉 지음, 전통과현대, 2000)

정치학자이자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인 저자가 2000년에 발표한 책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유교. 한국에서 유교가 가지는 의미와 위치는 ‘일소해야 할 구악’에서부터 ‘계승 발전시켜야 할 전통’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유교가 수백년 전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통유교사상을 오늘날의 주류사상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속에서 재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유교를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맥락에서 크게 ‘동아시아 발전 모델’과 ‘아시아적 가치’논쟁으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이 두 논쟁은 그 동안 인문학자들간의 순수한 학문적인 연구의 대상에 불과하던 유교를 첨예한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논쟁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미구 학계에서 제기한 ‘동아시아 발전모델로서의 유교’론을 국내적 맥락으로 이끌고 온 책이다. 총 7장으로 구성한 본문에는 유교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 동아시아 발전모델 또는 유교자본주의, 아시아적 가치논쟁의 국제정치학, 한국 지식인의 정체성, 경복궁의 복원과 전통의 재평가 등 한국 사회에서 유교를 중심에 둔 이슈들을 정리하고 있다.
저자의 의도는 이 책을 통해 수입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보다 우리 상황과 정서에 잘 맞도록 개조하고, 현재의 시스템에 건설적인 비판을 가하며,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고자 하는 데 있었다.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김상준 지음, 아카넷, 2011(2016 신판)) 

경희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중층근대성론’을 내세운다. 중층근대성론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도 근대문명의 기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내용, 그 축은 과연 무엇인가? 저자는 동아시아 문명의 축을 우리가 낡은 사상이라고 치부했던 ‘유교’에서 찾는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유교의 근본 원리, 제2부는 유교의 작동 원리, 제3부는 유교 동아시아, 제4부는 유교 조선을 다룬다. 뿌리에서 시작하여 점차 넓게 펼쳐가다 마지막 부분에서 조선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총체적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이다.
그는 유교의 定礎 지점을 독창적으로 재발견한다. 그것이 바로 ‘맹자의 땀’과 ‘성왕의 피’다. ‘맹자의 땀’은 장례 풍습이 생기기 이전에 들판에 방치된 부모의 처참한 시신을 목격한 고대인이 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는 『맹자』의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성왕의 피’란 요순우탕 등 聖王의 행적을 기록한 『서경』의 감춰진 이면에서 발견한 핏자국, 왕권을 둘러싼 폭력을 말한다. 유자들은 이 ‘성왕의 피’를 한사코 지우려 했다. 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군주를 창조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인류의 도덕적 몸의 탄생을 의미하는 ‘맹자의 땀’은 유교의 윤리적 기원을, 왕위 없는 왕을 지향한 ‘성왕의 피’는 유교 비판성의 기원을 풀어주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맹자의 땀, 성왕의 피’를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이 두 개념이 그만큼 유교문명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새로 태어날 유교는 밝고 능동적인 시민사상과 시민윤리가 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럴 때 유교의 ‘天下爲公’ 정신이 제약 없이 진정으로 만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하위공이란 『예기』의 한 대목에 나오는 말로 인간 문명, 천하의 모든 일은 公의 실현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아울러 현 시점이 동아시아가 지구권 문명 재편에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매우 귀하고 중차대한 때임을 강조했다. 그는 20세기의 좁디좁은 냉전적 사유 틀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래야 동아시아 공통의 문명적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동아시아 문명이 인류문명을 한 단계 높이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김상준 지음, 글항아리, 2014)

책의 제목은 난해하다는 평을 받던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맹자의 땀 성왕의 피』(아카넷)의 후속작인 이 책은 전작에 대한 이론의 정교화 작업이자 사례 분석의 확대이며, 『맹자의 땀 성왕의 피』 논평에 대한 반론도 담고 있다. 전작에서 서구 중심적 근대성론을 시공간적으로 확장하고 보완한 중층근대성론을 유교문명 및 조선사회의 역사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새롭게 정초해낸 저자는 이번 책에서 인류 보편 가치(근대성의 핵심으로서)로서 향후 문명 전환의 한 축을 담당할 유교의 ‘윤리성’과 ‘비판성’을 구체적으로 확장·심화시켜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수천 년 동양 문명을 지탱해온 ‘유교의 무의식’이라는 대륙에서 찾아내는 무의식들은 이 책에서 비판성, 윤리성, 민주, 민생, 문명화, 여성화 등의 기호로 해독되고 있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가 명명한 ‘유교 국가 부르주아’의 개념과 성격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 유교 ‘국가 부르주아’는 왕권에 대한 부단한 계도와 규제라는 게임을 통해서만 존속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돼 있었다. 왕권에 대한 이러한 계도와 규제는 자유주의적(견제와 균형)이며, 공화주의적(성왕론, 선출론)이자, 민주주의적(민본, 下而上의 이념, 民爲堯舜)이기도 한 급진적 잠재성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왕조, 왕권이 무너지는 순간, 그 자신이 딛고 서 있는 토대도 무너지게 되어 있던 것이 유교 ‘국가 부르주아’이기도 했다. 아울러 이 유교 ‘국가 부르주아’의 정치적 무의식이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서세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 그들의 유교 왕조, 유교 체제가 재생의 여지없이 허무하게 무너질 때, 비로소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꿈-작업(dream-work)’에서 불현듯 깨어나 또렷한 의식의 세계로 튀어오르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저자는 바로 여기서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의 ‘급진적 잠재성’을 읽어내려 한다.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한국 근대성의 정당성 위기와 인간적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 (장은주 지음, 한국학술정보, 2014)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장은주 영산대 교수의 이 책은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온 근대적 삶의 양식이 오늘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그러한 위기를 ‘한국 근대성의 정당성 위기’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인간적 이상’의 실현을 추구하는 데서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찾는다.
또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삶의 위기를 ‘근대성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라는 틀 속에서 비판적으로 조망해 보려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근대성 담론 일반이 우리 한국의 근대성이 갖고 있는 고유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접근법을 발전시키지 못해 비생산성을 노정해 왔다고 보고, 그것을 대체할 대안적 접근법을 모색한다. 이 대안적 접근법에서 우리의 근대성은 서구의 근대성과는 다른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문법을 가진 ‘유교적 근대성’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