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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덕분에 행운의 상징이 된 식물
나폴레옹 덕분에 행운의 상징이 된 식물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7.09.2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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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85. 토끼풀
▲ 붉은토끼풀                                                                                          사진출처 = 한국식물생태보감

가수 은희가 불렀던 「꽃반지 끼고」란 새콤한 노래속의 꽃반지는 바로 클로버 꽃이었으리라. 어디 한 도막만 불러 볼까나? “생각 난다 그 오솔길/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
 
우리가 어릴 적엔 꽃반지 말고도 풀싸움, 꽃술싸움, 잎 따기 놀이도 했으니 주변의 푸나무들이 모두 훌륭한 장난감이요, 그 놀이가 모두 생물공부렷다! 토끼풀꽃송이 하나를 따서 긴 꽃줄기를 손가락에 창창 돌려 매면 멋진 꽃반지가 되었고, 토끼풀이나 제비꽃 풀줄기를 서로 걸어 잡아당겨서(끊어) 승부를 내는 것이 풀싸움이며, 진달래 꽃술을 十字로 걸어 당겨 자르는 것이 꽃술싸움이고, 가위바위보 하여 이긴 사람이 아까시나무 한 잎씩 따서 판가름 내는 놀이가 잎 따기 놀이다. 물론 동무이마에 꿀밤을 먹이고, 손목을 때려 벌겋게 퉁퉁 부었지.

토끼풀(Trifolium repens)은 콩과의 여러해살이풀이고 높이 20∼30cm로 잎은 3장의 작은 잎(leaflet)이 모인 複葉이다. 속명 트리폴리움(Trifolium)은 3장(tri)의 잎(folium)임을, 종소명 레펜스(repens)는 땅위를 뱀처럼 기어간다는 뜻이다. 토끼풀은 세계적으로 300종이 넘고, 붉은토끼풀(Trifolium pratense)도 그 중의 하나이다.

토끼풀(white clover)의 잔잎은 진녹색으로 심장모양이고, 잎에 ‘V’자 꼴의 흰 무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길이 15∼25mm, 너비 10∼25mm이고, 끝은 둥글거나 오목하며,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줄기는 땅을 기고, 줄기 마디마디에서 뿌리를 내린다. 꽃은 이때쯤에 백색으로 피고, 긴 꽃줄기(꽃대) 끝에 여러 개의 꽃이 달려 전체가 둥글다. 열매는 콩과식물이라 꼬투리(莢果)고, 4∼6개의 종자가 들었다.

유럽원산으로 목초로 심던 것이 온 세계로 번졌으니 우리나라에도 귀화하여 야생하게 되었다. 아일랜드의 국화이고, 3개의 작은 잎은 애정·행복·기지를 나타내고, 네잎클로버는 희망·신앙·애정·행운을 나타낸다고 한다. 꿀벌이 꿀을 따는 蜜源植物로 중요하고, 입체교차로를 ‘cloverleaf interchange’라 부르며, 여린 잎은 샐러드로 먹는다고 한다.

클로버 잔잎(소엽)은 보통은 3장이지만 4장(four-leaf clover), 5, 6장인 것도 있고, 소엽이 무려 56장(‘56-leaf clover’)인 것이 지금까지 세계기록이라 한다. 나폴레옹이 포병장교시절 우연히 발견한 네잎클로버를 내려다보다가 총알을 피하게 되었고, 그래서 네잎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이 됐단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네잎클로버 등 정상보다 많은 수의 소엽이 생기는 것은 유전되는 돌연변이(mutation)가 아니고 그 대에 그치는 개체변이(individual variation)다. 個體變異란 같은 종류의 생물에서 개체에 따라 형질이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는 생식세포가 아닌 체세포에서 일어나므로 그 형질이 후손에 전해지지 않는다.
 
토끼풀은 다른 콩과식물처럼 뿌리혹박테리아라는 질소비료공장을 가져서 그들이 질소고정(nitrogen fixation)을 하는지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대기 중에는 질소가스가 약 79%나 있으나 이런 질소는 식물이 이용하지 못한다. 천둥번개로 가스 상태의 질소가 식물이 쓸 수 있는 암모늄염(NH4+)이나 질산염(NO3-)으로 고정되거나 또 토끼풀이나 아까시나무 같은 공과식물의 뿌리에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根瘤細菌)가 질소고정을 한다.
 
뿌리혹세균(Rhizobium)은 따로 흙 속에 있으면 질소고정을 할 수 없고, 콩과식물의 뿌리에서 번식하여 뿌리혹(根瘤)을 만들어야 질소고정을 한다. 토끼풀을 꽃삽으로 깊게 뿌리를 뽑아보면 거기에 똥글똥글한 작은 알갱이들이 많이 붙어 있으니 그것이 뿌리혹(根瘤)이고, 그 속에 세균(bacteria)들이 한가득 산다.
 
토끼풀은 뿌리혹세균에게 탄수화물(당분)을 주고, 식물은 자라는데 제일 많이 필요로 하는 질소성분을 얻는다. 이는 식물과 세균의  대표적인 공생(symbiosis/mutualism)으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다. 공생세균이 만든 질소성분을 토끼풀이 그 일부만 사용하는 까닭에 흙을 걸게 하여 다른 식물이 쓸 수 있게 된다. 또 토끼풀에는 질소성분으로 만들어지는 단백질이 많아서 토끼도 좋아한다.

붉은토끼풀(red clover)은 덴마크의 국화로 토끼풀과 비슷하지만 잎이 아주 크고, 색깔이 홍자색이며, 줄기가 땅바닥에 기지 않고, 꽃자루가 거의 없다. 역시 유럽원산으로 소엽은 긴 타원형으로 끝이 둥글거나 조금 파이고,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으며, 잎사귀 중앙에 옅은 색의 八(V)자 무늬가 있다

老子 가라사대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런 까닭에 혀는 부드러워 남을 수 있으나 이는 강하여 부러지는 것이다(柔勝剛 弱勝强 故舌能存 齒剛則折也).”라 했다. 잔디밭에서는 잔디와 토끼풀이 힘겨운 싸움을 펼치는데 그 柔弱한 토끼풀이 검질긴 잔디를 판판이 이긴다. 빠르게 줄기를 뻗어서 널따란 잎으로 햇빛을 가려 밑에 있는 잔디를 녹여버린다. 우리가 몰라 그렇지 그들은 상대를 못 살게 하는 타감물질(他感物質, allelochemicals)까지도 쏟아 붓는다. 겉으로 평화롭게 보이는 식물들도 동물세계 못잖게 시끌벅적 죽고 죽이는 혈투가 한시도 그칠 새가 없도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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