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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모델’과 선거민주주의
‘차이나모델’과 선거민주주의
  • 이연도 중앙대 교양대학·철학
  • 승인 2017.09.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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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연도 중앙대 교양대학·철학
▲ 이연도 중앙대 교수

북송 때 학자 歐陽修는 「朋黨論」에서 군자라야 제대로 된 붕당을 결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릇 군자는 군자와 더불어 도를 함께 함으로써 무리(朋)를 만들고, 소인은 소인과 더불어 이익(利)을 같이 함으로써 무리를 이루니, 이는 자연스러운 이치다. 소인은 붕당이 없고 오직 군자라야 붕당을 이룰 수 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소인이 좋아하는 것은 이익과 녹봉이고, 탐하는 것은 재물과 화폐다. 그 이익을 같이 할 때는 잠시 서로 끌어들여 당을 만들고 한 무리라 하나, 이는 거짓이다. 그 이익을 보고 앞을 다투는 데,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멀어지고, 심하면 서로 해치기까지 하니, 비록 형제 친척이라 하더라도 서로 보전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소인은 붕당이 없고, 잠시 붕당이 된 것 또한 거짓이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진행된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시대 정치의 민낯을 보며 떠올린 문장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을 선출하는 일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 하지만, 그래도 어쩌다 저런 이가 대표로 뽑혔을까 하는 개탄을 금할 수 없는 풍경이 계속 반복됐다. 오히려 의원들의 愚問에 여유 있게 답한 총리의 모습이 세간의 화제가 됐으니, 그만큼 국회의 무능과 교양 없음이 부각된 셈이다. 앞서 진행된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 역시 정당정치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동의안이 부결되자 희희낙락하며 얼싸안는 의원들이나, ‘우리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SNS에 띄운 지지율 4%의 정당 대표의 모습은 참담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이런 상황들이 선거민주주의, 정당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아야 할까.
  
대니얼 A. 벨은 최근 번역 출간된 『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 김기협 옮김, 서해문집, 2017년)에서 선거민주주의의 폐해를 네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비이성적인 다수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소수를 억압하고 나쁜 정책을 채택하는 ‘다수의 전횡’, 둘째 경제력을 장악한 소수가 정치 과정에 개입해 公共善에 부합하는 변화를 가로막거나 자신들 이익에 맞는 정책을 관철할 위험, 셋째 미래 세대나 외국인처럼 정책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투표권을 갖지 못한 집단과 투표권을 가진 집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후자의 입장이 언제나 관철되는 문제, 마지막은 ‘경쟁적 개인주의 전횡’으로 선거는 사회갈등을 완화하기보다는 격화시킬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은 중국의 賢能主義 체제(meritocrcy)를 옹호하는 관점에서 쓴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드러난 선거민주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적절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현능’은 『예기·예운』편 ‘大同’절에 언급된 ‘어질고 유능한 사람에게 정치를 맡긴다(選賢任能)’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중국의 현 정치체제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이 여전히 더 우세하지만, 능력주의에 기반한 지도자 양성과 선발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省級 지도자가 되려면 능력과 품성에 관한 직·간접적 시험을 무수히 거쳐야 하며, 그에 맞는 행정 경험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차이나모델은 세 층위로 구분된 중국 체제의 특징을 요약한 것이다. 맨 아래는 1980년대 만들어진 촌민위원회가 중심으로 기초간부와 인민 간의 소통 능력이 강조되며, 가운데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실험 공간으로 작용한다. 중앙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는 먼저 일부 지역에서 이를 시행해 본 후 그 결과에 따라 전국적 확산 여부를 결정한다. 최상위층은 현능주의에 기반한 집단지도체제다. 이 자리는 복잡한 정치, 군사, 민족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세계가 중국의 정치 실험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짧은 기간 비약적 경제성장을 거둔 효율성이 주요인이지만, 선거민주주의의 대안으로 그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중국 또한 부패와 독재, 인권 부재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차이나모델이 긍정적 요소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특수한 사회체제에서 운용되는 모델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다만, 갈수록 격화되는 국제관계 속에서 다양한 위기를 헤쳐 나갈 역량을 갖춘 정치인을 양성하고 선출하는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참고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10% 남짓의 지지율을 가진 정당이 37%의 의석을 점유하고, 수준 이하의 질문과 고성이 난무하는 국회의 현실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우리가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그 긴 시간을 광화문에서 보낸 것은 아닐 것이다(김해자, 「여기가 광화문이다」). 아직은 촛불을 내릴 때가 아니다.

이연도 중앙대 교양대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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