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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인문학의 경계와 연구자 네트워크
[학이사]인문학의 경계와 연구자 네트워크
  • 강용훈 인천대 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7.09.27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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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이맘 때 필자는 한림대 한림과학원 인문한국(HK) 사업단에 소속돼 있었고, 같은 연구소의 영문학 전공 연구자들 및 일본인 연구자와 함께 일본 사상가 도사카 준의『일본이데올로기론』을 강독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나는 서로의 박사논문 집필을 도와줬던 동료 한국문학 연구자들과 함께 도사카 준의 다른 저작도 읽고 있었다. 도사카 준과 한국 비평가들의 교류 양상을 살펴보다 도사카 준의 저서를 더 읽고 싶은 마음으로 건넸던 제안에 서로 다른 위치의, 각기 다른 전공의 연구자들이 기꺼이 응답해줬다. 한국 문학 연구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일본 사상가에게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함께 강독을 했던 동료 연구자들 덕분이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문학 연구는 시·소설·비평 등의 개별 장르 중심, 그리고 구축된 정전 중심, 더 나아가‘한국’이라는 국민국가 중심의 연구영역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드러냈다.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인 내가 일본 사상가의 저작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또한 그러한 재구성 작업과 연관돼 있다.
 

한국 현대문학 연구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한국문학 연구의 경계를 무분별하게 해체했다는 지적, 개별 작품들 사이의 가치 차이를 섬세하게 포착하지 못했고, 더 나아가 한국(문)학의 능동적 역할을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비판 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제기 역시 한국 현대문학 연구의 경계 변화가 이끌어낸 생산적 논쟁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한국 현대문학 연구의 영역이 변화한 시점은 인문학 연구의 경계, 그리고 인문학 연구자의 네트워크 자체가 재구성되기 시작한 때와도 맞물려 있다. 그 재구성은‘수유+너머’와 같은 대안적 연구 공동체의 탄생으로부터 촉발되기도 했고,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인문한국 사업’과 같은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가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인문한국 사업’에 HK연구교수로 참여했던 3년 8개월 동안 나는‘개념(사) 연구’라는 어젠다를 매개로 역사학, 철학, 일본학 등 다른 전공의 연구자들과 소통했다.‘ 한국 현대문학’연구자들과 주로 교류했던 나에게 이러한 경험은 신선한 자극이 됐다.
 

현재는 인천대 국어국문학과에 몸을 담고 있지만 연구교수 시기에 형성된 문제의식들은 지금 나의 연구, 그리고 전공 및 교양 강의에 여러 양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나의 경험은 어떤 시기, 특정 연구소에서 활동했던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일반화시키기 어렵다. 다른 한국문학 연구자들은 학회, 혹은 대안적 연구공동체나 협동조합 등에 참여하며 나와 유사한, 그렇지만 조금은 다른 체험들을 했을 것이다. 현재 내가 활동하고 있는 학회들에는 이러한 연구자가 주를 이루며 그 중 여럿은 학제간 연구, 혹은 비교연구를 통해 한국(문)학 연구의 경계를 재구성하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 제도에 갇힌 인문학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고, 인문학이 공공 도서관 등 대학의 바깥으로 나아가 더 많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 연구의 성과를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일은 중·장기적으로 인문학 연구의 경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주체들을 형성하는 작업과도 맞물려 있다. 그렇기에 인문학 연구자들의 다층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실험, 그리고 그 네트워크를 지속가능하게 해줄 작업들이 인문학 대중화 사업과 함께 고민될 필요가 있다. 그 실험은 학문후속세대의 목소리가 더 활발하게 울려 퍼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표출될 수도 있고,학문적 역량을 검증 받은 연구자들과 신진 연구자들이 같은 인문학적‘어젠다’를 매개로 교류하는 형태로도 드러날 수도 있다.
 

후자의 방향을 고민했던 인문한국 사업이 지난 8월로 종료되고 새로운 사업이 준비 단계에 있다. 연구자 네트워크가 분화된 학문 영역, 학교 간의 경계, 세대 간·직급 간의 차이를 넘어서 형성될 때, 고정된 영역에 갇혀 있던 연구자의 고민은 더 새로워질 수 있다. 대학 연구소와 학회 등 제도권의 안, 또 제도권 밖의 대안적 연구 공동체에서 연구자 네트워크를 갱신할 실험들이 전개되도록, 그리고 그 실험들이 결합되고 지속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강용훈 인천대·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비평적 글쓰기의 계보-한국 근대 문예비평의 형성과 분화』, 공저서로『동아시아 예술 담론의 계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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