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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학문후속세대가 아니라 폭탄이 됐다
그들은 학문후속세대가 아니라 폭탄이 됐다
  •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과
  • 승인 2017.09.2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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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과

올 여름 도쿄의 ‘막스베버연구소’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다녀왔다. 교육과 이민 분야를 연구하는 일본, 한국, 홍콩, 대만의 연구자들이 최신 연구들을 발표했고 그들의 열정적인 연구에 감탄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각국의 교육 체제와 전략을 서로 ‘비교’하며 이해할 수 있어 이 분야에서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 저녁 만찬에서는 동아시아 각국에서 온 발표자들 개개인의 연구와 삶의 고충과 보람을 들었다. 국가는 다르지만 모두 열심히 공부하는 연구자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비교와 공통점 찾기는 언제나 교훈을 준다.

도쿄에 ‘막스베버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이 연구소가 런던, 파리, 카이로, 모스크바, 도쿄 등 세계 13개국에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독일 학문의 전통을 소중히 간직하면서도 이를 세계화시키려는 정부와 교육 당국의 노력에 감복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회와 문화에 속한 학자들과의 열린 교류를 위해 막스베버연구소를 ‘세계 사회과학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장기적 안목과 비전에 한 수 배웠다. 세계적 대학들을 보유한 일본 연구자들의 수준 또한 놀라웠다. 교토여자대학의 쿠도 교수는 수십 년에 걸친 트랜스내셔널 종단연구를 통해 일본 여성과 파키스탄 남성 사이의 결혼가정에서의 이민, 교육, 종교, 가족 문제를 다층적으로 분석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연구였고 일본 학자의 ‘곤조’를 느낄 수 있었다.

비교는 교훈과 동시에 아픔도 주었다. 학술대회 자료집에는 발표자 개개인의 짧은 약력이 소개돼 있다. 일본의 학자들은 모두 국내박사 출신들이었고 홍콩, 대만, 한국의 학자들은 모두 미국 또는 유럽 박사 출신이었다. 이것은 분명 선진국과 비선진국의 (극명한) 차이 중 하나이리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몸소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연일 대학교수들의 갑질, 비리, 성추행 사건이 언론에 도배되고 있었다. 올해 학문후속세대인 대학원생들의 저항이 전면에 등장했다.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 서울대 사회학과 갑질 교수 사건, 고려대 교수의 대학원생 폭행 사건 등 교수들의 갑질과 비리에 못 이겨 대학원생들의 저항이 폭발하고 있다. 유교적 권위주의 문화, 대학의 비민주적 환경, 한국대학에 만연한 성 불평등은 한국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들이어서 각 캠퍼스에서 대학원생들의 교수들에 대한 각종 고발과 규탄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침에도 모 대학 의대교수의 갑질과 성추행 사건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학문후속세대는 절망에 빠져 있다. 존경할 교수가 없다. 희망도 없다. 일자리도 없다. 마음을 둘 학문공동체는 더더욱 없다. 반면 교수들의 갑질과 비리에 원망과 원한만 쌓인다. 대학교수직은 유학파 차지다. 미래는 없다. 꿈도 없다. 따라서 한국대학과 한국사회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 대학원생들의 기본 멘탈리티가 됐다. 젊기에 때 묻지 않은 이들은 부정의와 부당함을 참지 못한다. 가장 민주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할 대학에서의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비리와 기회박탈을 이들은 참지 못한다. 한국대학 자체가 거대한 적폐다. 한국교수집단이 갑의 대명사다. 한국교육자체가 참을 수 없는 모순이자 폭파시켜야만 할 악이다. 따라서 그들은 학문후속세대가 아니라 폭탄이 됐다.

교육부는 하루 빨리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박사 교수임용쿼터제, 대학원생들의 장학금과 생활비 확대, 안정적인 주거 공간 마련, 교수들의 갑질과 비리 근절 등 종합적인 대책들을 마련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하기 바란다. 일본의 국내박사들이 세계적인 연구 역량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대학과 학계의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 덕분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대학과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대학원생들이 학자 대신 폭탄이 되기를 원하는가? 우리의 대학과 미래가 폭발하기를 원하는가?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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