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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로서의 첫 걸음
연구자로서의 첫 걸음
  • 채단비 건국대 경제경영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17.09.25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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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채단비 건국대 경제경영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더 나은 곳에서 더 멋진 여성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박사과정에 들어선지 약 5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5년 8월, 기적처럼 너무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학사모를 썼던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후로 반 년 정도의 시간동안 나는 수많은 고민 속에서 밤잠을 설쳐야만 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좁혀지지 않는 문제들에 매달리고 있었다.

고민이 깊어가던 무렵, 나는 불현듯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내 20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학원 생활을 통해 얻은 다수의 논문과 프로젝트 성과물들, 이들을 단지 이력서의 내용으로서 취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10년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마케팅이라는 분야는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한 분야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측정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어려움을 동반하지만, 내가 보낸 10년이라는 기간이 있기에 향후 해당 전공자로서 변화하는 트렌드에 인사이트를 가질 수 있는 눈과, 비로소 연구자로서 시작할 준비가 된 상태라는 조그마한 확신에 도달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혹자는 조금 더 활동적인 영역에서 지식 공유와 경쟁을 통해 적극적으로 삶을 쟁취하길 바라기도, 또 어떤 이는 조금 더 날카롭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 현재 상태에 자부심을 느끼며, 내가 다짐한 그날의 확신들이 결코 틀린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내 확신을 하나하나의 결과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유지된다는 점에 더한 감사를 느낀다.

한해 국내 박사학위를 받는, 소위 박사님들은 몇 명이나 될까? 공식적인 수치로 집계된 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숫자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 적지 않은 숫자 속에서 나와 같은 청년으로서 뜻을 펼치며 더 나은 미래를 그리기 위해 고행의 시간을 보낸 숫자는 더욱 적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이 보낸 그 고독한 시간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부여되는 연구의 기회는 현저히 부족하다. 많은 대학들이 문을 닫고, 많은 과들이 통폐합되는 현장을 직접적으로 몸소 겪을 수밖에 없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상황이 ‘참’교육자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고 말하기도, 혹은 누군가는 비로소 ‘참’교육자로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많은 연구자들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와 마주칠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이 배가되면서도, 감사한 마음과 비례하는 책임감 또한 막대하리라 생각된다. 이를 알기에 한국연구재단이 나에게 부여해준 연구의 기회는 그 무엇보다도 큰 의미가 있다. 이에 부합이라도 하듯이 불과 한 달여 전, 나는 졸업 후 처음으로 도전했던 독자적인 나만의 레이스를 완주했다.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아기새 마냥 모든 것이 서툴렀고,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첫 레이스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내가 학사모를 쓰면서 다짐했던 많은 것들의 반도 이루지 못했다. 그 다짐 중에는 사소한 것도, 버킷리스트의 한 줄이 될 만한 거창한 것들도 있지만, 혹시나 이루지 못할 상황에 대한 걱정은 없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나하나 이루기 위해 난 준비할 것이고, 이미 이룬 작은 소망의 첫 시작을 이렇게 한국연구재단과 함께 했다. 다시 한 번 나에게 작은 날개를 달아준 연구재단에 감사하며, 많은 후학들이 나와 같이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졸업의 문턱에서 뜻을 이루며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데 연구재단이 함께 해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채단비  건국대 경제경영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경영학과
건국대 경영학과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통 및 소매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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