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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백자로는 전례 없는 작품 … 시대상 유추할 수 있는 유물
조선 초기 백자로는 전례 없는 작품 … 시대상 유추할 수 있는 유물
  •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 승인 2017.09.21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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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文響_60.백자수성노인상(白磁壽星老人像)

壽星老人은 인간의 수명과 장수를 관장한다는 노인성의 화신인 壽老人을 신선의 이미지로 의인화해 칭하는 말이다. 老人星은 남극 가까이에 위치한 별로 추분 때 관측되며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수평선 근처에서 드물게 관찰된다. 이 별은 처음에 나라의 평안과 君主의 수명을 상징하다 점차 그 의미가 확산돼 개인의 수명과 장수를 상징하게 됐으며 나중에는 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민간에도 널리 퍼져 별의 화신인 壽老人을 도상화하고 숭배하게 됐다.

중국 북송시대에 나타난 키 작은 노인의 일화에서 시작된 수성노인의 숭배는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유입돼 老人星에 대한 제사가 처음으로 시행됐고 조선시대에는 수성노인에 대한 민간신앙이 더욱 성행하게 됐다. 이에 따라 회갑축하와 장수를 축원하는 축수용 그림으로도 많이 제작 됐으나 조선 전기 임진왜란 이전의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조선 후기의 작품들이 대부분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성노인은 중국과 유사한 모습이지만 토착 민간 신앙과 결합해 친근하고 익살스런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긴 頭狀과  작은 키의 수성노인은 발목까지 오는 긴 道衣를 입고 손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두루마리 책이나 불로초, 복숭아를 들고 사슴이나 학 또는 선동자와 함께 그려지기도 했다. 수성노인은 단독으로 그려지거나 여러 신선들과 함께 표현되기도 하고 福, 祿, 壽의 三星圖(사진1)로 그려지거나 불교의 탱화에 나타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壽星老人圖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윤덕희(1685년~1766년)의 「수성노인도」(사진2)를 비롯하여 이정(1554년~1626년)의 「수노인도」(사진3), 김명국(1608년~미상)의 「수노예장도」(사진4)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민간의 무명화가들에 의해 長壽를 상징하는 민화로도 많이 제작됐다.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중국의 明代에는 유행하던 수성노인도가 그림은 물론이고 돌이나 木刻으로도 많이 제작됐으며 도자기에도 나타난다. (사진5)는 중국 광동성박물관에 소장된 명대의 청화백자사발인데 사발의 외면에는 청화로 쓴 작은 ‘壽’자가 가득 하고 내면의 바닥에 수성노인을 그려 넣었다. 일상 생활용기에 수성노인을 그려 넣어 장수를 기원하는 당시 사회의 한 단면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전기에 제작된 백자에 수성노인이 그려진 사례는 아직 찾을 수 없었고 수성노인상이 백자로 제작된 사례도 없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수성노인에 대한 민간신앙이 유행했지만 조선전기에 수성노인과 관련된 유물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도자기로 도상을 만든 것은 더욱 그러하다.

(사진6)은 조선 초기의 왕실용 官窯에서 제작된 ‘白磁壽星老人像’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유물이다. 높이는 7cm이고 지름은 3.5cm~4.5cm인 작은 기물이며 속은 비어있다. 이마위로 머리가 급격하게 넓어지며 머리의 뒷면에는 정수리 뒷부분의 머리카락을 묶어서 내린 것처럼 보이며 이목구비가 또렷하다. 지긋이 뜬 눈에는 여유가 보이며 입가엔 얇은 미소가 서려있다. 작은 키에 커다란 두상, 몸 전체를 덮는 두터운 도포를 입은 몸통 밖으로 삐져나온 양 손은 도톰한게 귀여울 정도이다(사진7~9).

표면의 유약은 雪白色으로 맑고 투명하며 최상급이다. 유약이 두껍게 시유돼 있으며 속에는 기포가 보인다. 조선초 상품의 관요백자에서 볼 수 있는 유약과 동일하다(사진10).

바닥은 유약을 훑어내고 가는 모래받침을 사용해 번조한 흔적이 남아있으며 작은 구멍이 나 있다. 몸통의 속은 비어있고 바닥에 구멍이 하나 있지만 硯滴은 아니다(연적은 2개의 구멍이 필요하다). 바닥에 있는 구멍은 번조할 때 熱氣로 인한 터짐을 방지하기 위해 뚫은 화기 배출구멍으로 보인다(사진11~12).

조선 전기 고분에서 출토되는 像形白磁는 부장품인 명기로 말, 동자상, 남녀인물상 등이 대부분이다(사진13~14).

소품에 해당되는 작은 상형백자이지만 능숙한 조각솜씨를 나타내는 세련된 작품으로 그동안 조선 초기백자에선 사례가 없었던 유일한 ‘백자수성노인상’으로 당시의 시대사회상을 유추할 수 있는 주목받을 만한 유물이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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