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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틀렸다” … 결코 가볍지 않은 중후한 에세이의 힘
“애덤 스미스는 틀렸다” … 결코 가볍지 않은 중후한 에세이의 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9.21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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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자유의 비극』 유진수 지음, 한길사, 242쪽, 15,000원

미국 UCSB 생물학과 교수인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의 논문 「공유자원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사이언스>, 1968.12.13.)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실은 ‘자유의 비극’이란 제목에는 좀더 철학적인 내포가 담겨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또한, ‘자유의 비극’이란 제목이 주는 언어적 구조의 긴장감도 한몫 거든다. 대체로 이 경우 ‘비극’ 그 자체보다는 비극을 발산시키는, 혹은 비극이 광범위하게 폭발하는 사건 지평에 더 의미가 놓이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자유’가 어떤 비극 상태에 도달했다는 저자의 생각, 주장은 어떻게 이 책에서 펼쳐지고 있는 걸까.

저자는 ‘도덕적 의무’라는 말을 모순된 표현에 가깝다고 본다. 도덕철학에서라면 모르되, 합리성을 경제적 개념으로 엄격하게 제한해 이해하고 있는 경제학자다보니, 그의 말도 일리 있어 보인다. 지키면 좋지만 그렇다고 강제할 수 없는 것(도덕)에, 강제성을 담고 있는 ‘의무’를 더했으니 형용모순이란 지적이다. 이런 표현을 만든 사람은 멍청하거나 사기꾼이 틀림없는데, 저자도 지금까지 이 말을 써왔으니 꽤나 멍청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덕에 대한 관심이 자유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게 됐다.

‘도적적 의무’에서 ‘자유’로
 
“도덕을 지킬 것인지 안 지킬 것인지가 선택의 문제라면 도덕과 자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자유는 선택을 바탕으로 하고 선택이 없는 자유는 실질적인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선택의 학문’인 경제학을 전공한 내가 자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고백한 저자는 이 책에서 자유의 다양한 개념과 자유에 관한 여러 시사점을 정리했다. 그리고 현실을 극히 단순화한 무인도에서의 자유를 생각해봄으로써 자유가 초래하는 비극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다뤘다. “모든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없음을 보이고, 이 시대에 맞는 자유의 개념을 찾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한다.

하나 더. 인간의 자유와 죄에 대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설명을 빌려와 ‘선택의 자유’를 언급한 저자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선택의 자유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 선택의 대가는 부족함과 헐벗음이었다. 또 이에 대한 공포는 이기심, 소유욕, 경쟁, 질투와 갈등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종교적 훈계에 빠지진 않는다.

저자가 제시하는 ‘자유가 비극이 될 수 있는 열두 가지 이유’
1. 공평한 경쟁여건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2.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3. 자원이 고갈하기 때문에
4. 불공정한 거래가 발생하기 때문에
5. 정보의 차이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6. 자유로운 거래로 높은 이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7. 지나치게 저축해 경기 침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8. 외부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9. 외부인이 침입할 수 있기 때문에
10. 토지의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기 때문에
11. 고용의 자유로 열악한 임금노동이 발생하기 때문에
12. 주식회사의 등장과 위험한 투자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먼저 ‘밥상’에서의 자유를 생각한다. 밥상의 형태에 따라 인간의 자유가 뒤따르며, 그 형태에 따르는 대가가 각각 다르다는 걸 읽어냈다. 경제행위 최소 단위의 연대점에서 시작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경제학자는 밥상을 ‘자유형 밥상’, ‘평등형 밥상’으로 구분한다. 자유형은 밥상 가운데 모든 음식을 놓고 식구들이 자유롭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형태다. 누구나 원하는 음식만 덜어서 먹을 수 있으며,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반면, 평등형은 모든 반찬이 개인별로 차려져 있으며, 고구려 각저총 고분에 나타난 고구려 시대의 평등형 상차림처럼, 한국에서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형태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경제학자가 이론이나 수식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인데,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왜 어떤 곳에서는 자유형 밥상이 일반적이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평등형 밥상이 일반적일까. 정확한 이유와 유래는 알기 어렵겠지만 몇 가지 주장은 가능하다.” 그가 내놓은 해석은 ‘위생’, ‘풍요로움의 정도’, ‘자유와 평등 간의 선택’, ‘가족에 대한 믿음이나 사람을 보는 시각’이 자유형과 평등형 밥상을 가른 요인이다.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무척 흥미로운 해석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밥상’이란 가장 절박한 실존에서 시작한 그의 사유는 이론실험에서 다시 빛난다. ‘무인도에서 자유가 비극이 될 수 있는 열두 가지 이유 Ⅰ·Ⅱ’가 그것이다. 자유가 비극이 될 수 있는 열두 가지 이유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저자는 결국 자유가 초래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유화’에 대한 고민은 그런 저자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사유화를 자유의 맥락에서 파악한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적 소유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이는 단순히 토지나 자원을 사유화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특정 식물 종자에 대한 특허권이나 유명인의 이름까지도 사유화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자유의 개념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요컨대 저자의 주장은, 자유가 인간을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자유의 개념을 발견할 기회도 남겨 놓으면서 말이다.

좋은 질문의 미덕 … “새로운 자유의 개념 찾아야”

“인간의 자유는 어디까지여야 할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자유가 야기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 결과를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이는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인간의 자유가 인간을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인류는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 머지않아 자유를 절제하는 것이 오히려 발전이라고 여기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4·6판(127×188cm), 242쪽 그리 두껍지 않고 호주머니에 좀 우겨넣으면 들어갈 수 있는 『자유의 비극』은 공공재의 사례를 들어 애덤 스미스의 신념(개인은 자신의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면 된다.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을 반박하고 있다. 시장이 마치 절대 선인 것처럼 여겨지는 오늘날, ‘스미스는 틀렸고, 보이지 않는 손이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자유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쉽고, 가볍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중후한 한편의 에세이로 남는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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