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신념이 될 때 … 이미지로 담은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평화가 신념이 될 때 … 이미지로 담은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9.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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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일념, 평화통일 길』 박재규 지음 | 경남대출판부 | 196쪽 | 비매품

준국어대사전을 펼쳐 ‘비매품’을 찾아보면, “일반인에게 팔지 아니하는 물품. 특정한 사람에게 무료로 배부하거나 견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만든 물품을 이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 최근 내놓은 책 『일념, 평화통일 길』도 비매품이다.
 
팔려고 내놓은 책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에게 무료로’ 배부한 책은 ‘판매용’과는 다른 점이 여럿 있다. 처음부터 수익성을 배제한다는 것, 집필자의 어떤 철학 혹은 삶의 기록이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것(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독자에게 가닿는 부분)이 가장 큰 차별점일 것이다. 여기서부터 책의 의미가 만들어진다.
 
『일념, 평화통일 길』에는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45년에 걸친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물론 모두 저자 ‘박재규 총장’과 관련된 장면들이다. 이 45년에 걸친 시간의 보폭을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평화통일의 길’이다.

1972년 북한·통일 문제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경남대 부설 통한문제연구소(현재 극동문제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경남대 교수(1973~1985),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1973~1986), 경남대 총장(1986~1999, 2003~현재),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2005~2009), 북한대학원대 총장(2005~2009) 등으로 재직해왔으니, ‘평화통일을 위한 연구와 교육’의 한 길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한반도 평화 모색은 그의 ‘숙명’

무엇보다 ‘학자 총장’으로서 그는 정부의 실무 현장에서도 직접 소명을 다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제26대 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 재직 시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앞장섰던 그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으로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제1~4차 남북장관급회담 우리측 수석대표로서 남북 당국 간 대화의 원칙과 기분을 설정하고, 남북관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북학 핵과 ICBM 문제로 남북관계가 경색될 대로 경색된 지금, 현장 감각에서 길어 올린 박 총장의 ‘통일 지혜’는 귀기울여들을 만한 부분이다.

박 총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대통령 자문 통일고문(2006~2013),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2009~2011), 통일준비위원회 자문위원(2014~2017) 등으로 일하며 한국 사회의 원로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국론결집을 위한 사회통합에 앞장섰다. 이러한 노력들을 인정해 제 1회 한반도평화상(2004)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의 제목이 어째서 ‘일념’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뉴욕시립대와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 등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박 총장은 잘 알려져 있듯 광복 1년여 전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런 태생적 환경에서 ‘분단 극복과 평화통일은 하늘이 준 숙명’의 길을 찾았다. 그가 미국 유학길에 ‘북한 문제’에 천착했던 것, 이후 귀국 후 ‘7·4남북공동성명’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972년 9월 1일, 경남대 통한문제연구소(6개월 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로 개칭)를 설립한 것도 이 숙명의 자기 인식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책은 ‘평화통일 연구의 시작과 함께 토대 마련에 진력하다’, ‘남북 화해·협력의 선봉에 나서다’, ‘남북 교류 및 민간 외교 활동에 전념하다’, ‘평화통일 기반 조성 위한 민간외교 지속하다’ 등 4장으로 구성했으며, 부록으로 ‘사진으로 본 지난 세월’을 덧붙였다. 특징은 사진 화보를 중심에 놓고, 서술은 가능한 줄여서 입체화했다는 것. 젊은 날의 ‘박재규’에서 2017년의 ‘박재규’를 한국 현대사의 가장 뜨거운 장면들 속에서 만날 수 있게 배치했다.

특히 제Ⅰ장은 ‘평화학’의 한국적 정착이란 과정에서 눈여겨볼 수 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설립과 이후 남북 학술교류 추진의 중심지로서 연구소가 보여준 動線은 북한연구에서 한걸음 나아가 평화학의 관점에서 의미를 매겨야 비로서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학술적으로 진일보한 발걸음이었다.

제Ⅱ장은 ‘학자 박재규’가 국가의 일에 부름 받고 나아가 최초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준비 및 개최,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제1~4차 남북장관급회담 등의 주요 활약상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 텍스트보다 ‘사진’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는데, 풍부한 사진 자료를 담고 있다는 것은, 이후 평화학 연구, 남북관계사 연구에도 실증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몇 장면.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북 당국 간 군사회담 개최 문제에 북측이 너무 소극적으로 나와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오찬과 면담까지 지연시키면서 김정일 위원장 면담을 요구했고, 밤을 새워 기차를 타고 달려가 자강도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남북국방장관회담 개최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뒀다고 소개하는 부분의 자료는 사료적 가치가 높다.

생생한 이미지들, ‘평화통일학’ 자료로서도 중요

제Ⅲ장에서는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대학으로 돌아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 보탬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추진한 △2002년 KBS 교향악단 평양공연 참석차 방북 △2004년 경남대 북한대학원 통일관 개관 행사에 리종혁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초청·참석 △2005년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정부 대표단으로 방북 등의 성과를 소개했다.

제Ⅳ장에는 평화통일 일념을 지닌 한 개인이 국제사회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이들 관계망은 또 어떻게 사회에 소용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빼곡하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국 주룽지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를 비롯한 해외 정상급 인사들뿐 아니라 각국 외교 사절과 잭 앤더슨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등과 만나 지속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 한국 통일외교의 지평을 넓혀가는 활동상을 담았다.

그렇다면 이 비매품 『일념, 평화통일 길』은 핵과 미사일로 남북관계 ‘빙하기’를 보내는 지금, 어떤 시사점을 제공할까. 그는 한 때 남북관계가 활발한 대화·교류가 있었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남북관계에서 ‘잃어버린 10년’이 지나는 가운데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를 추진하는 등으로 인해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미래가 우려되는 등 안타까운 심정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잃어버린 10년’ 앞의 세월들에 대한 復碁, 정부의 적극적인 평화모색 노력을 그는 우회적으로 주문한 셈이다.

민족사의 새로운 위기 앞에서 박 총장은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로 ‘평화통일’을 위해 긴 노력에 나섰던 시간들을 다시 불러냈다. 새로운 형태의 자서전이란 의미 평은 그 개인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오래된 평화통일의 문법과 지혜의 환기는 한국 사회 전체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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