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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과학과 인문학, 그 협동의 필요성과 가능성
<학술대회> 과학과 인문학, 그 협동의 필요성과 가능성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0.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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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31 00:00:00

근대 최초의 과학자인 뉴턴이 중세 최후의 마술사였다는 사실, 자연을 한권의 ‘책’이라고 생각한 갈릴레오가 그 자연의 책을 해독해 신의 전언을 알아내려 했다는 사실은 지금의 우리로선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현대과학이라는 이념의 옷을 잠깐 벗어둔다면 이 두 자연과학자들의 신비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때로 신비가 모여 과학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연금술이 화학의 발전을 낳았고 공상과학 소설이 우주로 향하는 인간의 걸음을 재촉했듯이 말이다.

인문학과 과학, 분리된 ‘두 문화’


갈릴레오와 뉴턴의 시대에 秘學을 통해 양자는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통로마저 소실된 지금, 이른바 ‘과학적 사고’의 부작용은 크다. 우리들은 어느새 과학이 가치판단에서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점차 과학과 인문학은 두 개의 분리된 문화를 이루어 서로의 논의를 통역자 없이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협의회가 지난 20일 안동대에서 ‘과학과 인문학, 그 협동의 필요성과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는 이런 부작용들에 대한 우려를 언표한 것이었다. 주제발표를 맡은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는 전체 주제와 동일한 제목의 발표문에서 과학과 인문학이 ‘두 문화’로 분열해버린 것에 대해 과학자와 인문학자 모두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창궐한 현대를 그는 이렇게 설명해냈다. “현대문명의 모습은 과학의 ‘앎’을 기술의 ‘힘’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성공한 거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인문학적 지혜가 결여된 기술을 과학으로 오해하는 사회란, 덩치만 크고 머리는 빈 아둔한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장교수의 직유법은 단순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진단이었다. 인문학에 대한 장교수의 비판 역시 새겨들을 바가 많다. 과학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서 현대문명을 비판할 때 근대과학의 폐해를 약방의 감초처럼 끼워넣는다든지, 과학의 개념을 무리하게 인문학의 얼개 속으로 끼워맞추는 것과 같은 오류가 그것이다.
1부에서는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과학사)가 ‘21세기 과학주의의 인식변화’를 발표했고 정상모 신라대 교수(철학)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인문학적 사고로 인해 탈각해가는 20세기 과학주의를 서술한 임교수는, 20세기 이후 과학기술이 대중적인 영향력을 획득한 이유와 객관성·보편성에 대한 믿음이 퇴조한 내력, 포스트모더니즘 과학관이 등장하게된 역사를 소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세기는 논리실증주의 과학관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포퍼와 콰인, N.R. 핸슨 등에 의해 점차 ‘논리’와 ‘실증’이 덮어쓰고 있던 ‘신화’의 막이 걷혀나갔다는 것이다. 임교수의 다음 말은 이른바 ‘포스트모던’한 과학을 집약해준다. “과학적 지식은 수많은 상호양립이 불가능한 단일한 이론들, 서로 다른 동화같은 이야기들, 개개의 신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이러한 무정부주의적 과학관이 포스트모던한 인문학자들의 지적 토양이라 주장했다.


더불어 국내에서도 이미 비판의 초점이 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임교수는 개방성, 관용, 독창적 사고라는 장점을 추출해 인류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가치관으로 가꾸자는 주장을 폈다. 2부에는 ‘상극과 상생-생태주의’라는 주제로 조용현 인제대 교수(철학)의 생물학적으로 접근한 발표가 주목받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발표한 이진우 계명대 교수(철학)를 마지막으로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20세기 과학주의의 탈신화화


과학과 인문학 사이, 공조할 ‘필요’가 있는지의 논의는 이미 관심의 자장 밖에 있었다. 더불어 ‘가능’하다는 입장 또한 참석한 과학자와 인문학자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학술대회의 발표문들은 개별적이었지만, 그들의 논의는 이미 인문학과 과학 양자의 논리에 깊이 침윤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발표자들이 어떤 조화와 공존의 지평을 열어내는지에 주목해야 할 것이었다. 결국 그 지평이야말로 인문학과 과학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길의 일부이므로.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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