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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움이 가신 뒤 삶의 구체적 무게에 대한 응시들
뜨거움이 가신 뒤 삶의 구체적 무게에 대한 응시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9.13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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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계간지 리뷰_ 무수한 길 사이에서 문득

계간지 여름호들은 뜨거운 열기와 직접 맞닿아 있었다. 9월에 들어서면서 하나둘 얼굴을 내민 계간지 가을호에는 그런 ‘뜨거움’이 확실히 가라앉아 보였다. 특집들만 봐도 그렇다. 한 걸음 열기를 걷어내고, 그 뒤에 있는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는, 시선들. 그러나 이들 시선에서도 ‘저 너머’에 대한 지향성은 숨길 수 없었다. 

공공성과 공동체의 미래를 특집으로 내건 곳은 <창작과비평>177호와 <황해문화>96호다. <창작과비평>은 ‘특집: 커먼즈와 공공성: 공동의 삶을 위하여’를 내세웠고, <황해문화>는 ‘특집: 공동체의 미래를 상상하다’를 들고 나왔다. 이들 사이에 <역사비평>120호와 <오늘의문예비평>106호가 놓여 있다. <역사비평>은 ‘특집1: 조선 건국 다시 보기, 연속성의 관점에서 본 왕조교체① 정치 세력과 통치 제도’, ‘특집2: 21세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내걸었지만, 기획 ‘기본소득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를 배치해 눈길을 끌었다. <오늘의문예비평>은 ‘특집: ‘개성적 능동주의’의 힘을 믿는다’를 힘껏 끌어안으면서, 촛불 혁명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다양한 ‘개인’의 징후를 독해하고자 했다.

<문학과사회>·<문학동네>의 ‘故 박상륭’ 추모 

캐나다에 거주하던 작가 박상륭의 타계와 그의 문학적 유산을 점검한 곳은 <문학과사회>119호와 <문학동네>92호였다. <문학과사회>는 정과리(「신이 되고팠던 이의 행로는 애잔하나니」), 김주연(「죽음의 또 다른 연구」), 함성호(「정전의 파괴자 박상륭」)의 언어로 타계한 작가를 추모했고, <문학동네>는 철학자 김진석(「산은 저를 불태우고, 그 재 속에서 새가 된다」), 정지아(「슬퍼하지 않겠습니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뛰어넘으셨으니」)의 글로 추모했다. ‘故 박상륭 추모 특집’과 ‘추모 박상륭’은 서로 견주어, 보완하면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창작과비평>의 특집 ‘커먼즈와 공공성’에서 백영경(「돌봄의 위기와 공공성의 재구성」)은 현재 한국사회의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현상 이면에는 금융화 자본주의로 말미암은 사회재생산의 위기와 ‘돌봄의 위기’가 작동하는데, 돌봄노동의 부담이 가난한 사람들과 특히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사회재생산과 돌좀의 위기를 감당·극복할 담론적 대안으로 커먼즈론을 검토하고, 커먼즈가 돌봄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상상하고 공동의 삶을 가능케 함으로써 현재의 위기와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긴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하비(「커먼즈의 미래」)는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에 내포된 사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커먼즈를 둘러싸고 벌어져온 다양한 논의를 비평적으로 조망했다. 특히 로크의 재산권 논의를 논박한 마르크스의 견해를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집단이 소유권을 갖는 게 왜 정당한지를 밝히고, 자본의 지대착취로 말미암은 비극을 극복하려면 부의 새로운 공동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커먼즈론에 핵심적인 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외에도 논단에 실린 서동진의 글(「지리멸렬한 기술유토피아: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기술유토피아에 내포된 의미를 읽어내면서 ‘4차산업혁명’이라는 미심쩍은 개념을 구성하는 이데올로기 서사의 속내를 비평적으로 검토하며, 이를 바탕으로 기술유토피아로부터 진정 우리가 구해내야 할 유의미한 미래상이 무엇인지 따졌다. 

촛불 이후 한국사회의 중장기적 과제들

김현철(「자유와 평등의 권리장전을 위한 헌정투쟁」), 홍석만(「장기침체와 다지털 전환시대의 헌법」), 진태원(「‘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철학적 단상」), 김영선(「시간의 민주화를 위하여: 과잉노동 없는 사회를 위한 기획과 실천」)의 글을 특집으로 묶은 <황해문화>의 ‘공동체의 미래 상상’은 이 가을 계간지 가운데 가장 흥미롭게 읽힐 토픽들이다. 물론, 이들은 <황해문화>측의 고백대로, ‘촛불항쟁이 추구한 중장기적 과제들에 대한 성찰’의 첫 걸음이기도 하다. 

“이 특집은 촛불항쟁이 사실상 연속된 정권에 다름 아닌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종식과 민주정권의 수립을 통한 정상국가의 회복이라는 단기적 목적을 넘는,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훨씬 더 장구한 미래전망으로 이어져 있다는 전제 아래 이제부터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나가야 할 더 자유롭고 더 평등하며, 더 행복한 공동체의 이미를 자유롭게 상상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성격이 이렇다보니, 글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논의들은 우리 공동체의 새로운 미래를 담보할 헌법의 모습, 그 실질적 내용인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노동, 새로운 사회상에 대한 상상을 담고 있다. 특히 진태원의 논의는 전통적 좌파이론과 근래의 포스트이론들의 한계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정치철학적 문제제기로서 시의성과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읽힌다.

<역사비평>의 고유한 담론들 사이에 서 있는 기획 ‘기본소득 대안론’은 ‘기본소득’ 논의를 일별하고 한국 사회에서의 전망을 진단했다. 안효상(「서양의 기본소득 논의 궤적과 국내 전망」)과 전강수·강남훈(「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 등장 배경, 도입 방안, 그리고 예상 효과」)의 글 두편에 불과하지만, 논의의 진폭은 폭넓다고 할 수 있다. 전강수·강남훈의 글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1인당 얼마씩 정기적으로 지급한다고 해서 황당하게만 들리던 기본소득이 한국 정책 공론장의 중심에 들어왔다”로 시작된다. 이들은 한국 기본소득제 논의 동향을 정리하고, 제도 도입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후 그 경제적 효과와 역사적 의의를 논했다. 특히 이들은 앞으로 한국에서 기본소득제를 도입한다면 어떤 모형 사이에서 정책 내용을 결정해야 할지를 진단했는데, 이재명 성남시장의 기본소득제를 ‘국토보유세·지역상품권 연계형’ 기본소득 모형(기본소득 모형Ⅰ)과 정원호 외 2인이 제시한 ‘토지세·환경세·시민세 연계형’ 기본소득 모형(기본소득 모형Ⅱ)을 비교 분석했다. 물론 이들은 기본소득 모형 Ⅰ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 가능한 기본소득제라고 봤다. 실천가능한 정책 논의에 불을 지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공화적 개인주의’의 모색

부산의 문화적 자긍심이라 할 수 있는 <오늘의문예비평>은 여전히 고투중이다. ‘개성적 능동주의’라는 특집 자체가 어쩌면 이들의 사활을 건 지적 고투를 방증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의문예비평>은 문학을 통해 ‘개인(성)’의 모습과 자리를 살펴보고, 촛불 혁명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다양한 ‘개인’의 징후를 독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개인’의 표상, 다시 말해 一者로서의 개인을 창안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각기 다른 ‘개인(성)’의 발견을 통해 ‘개성의 능동주의’가 지닌 역능의 가능성을 찾고, ‘일상의 민주화’에 다가가기 위한 시도라 하겠다.” 

평론가 신샛별(「공화적 개인주의자를 위하여: 최은영, 백수린, 조해진 소설의 개인에 대한 생각」)은 “개인 중심의 가치들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삶’의 방식과 공공선에 대한 사유를 중시하는 ‘공화주의적 삶’의 방식을 우리가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정리하면서, ‘공화적 개인주의’라는 이름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개인(성)을 탐색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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