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유행하는‘살까기 프로그램’, 한국드라마 속 가냘픈 여성 실루엣 욕망했다.
평양에 유행하는‘살까기 프로그램’, 한국드라마 속 가냘픈 여성 실루엣 욕망했다.
  • 표연희 한국뷰티융합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7.09.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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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 기획‘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_ 39. 뷰티 문화를 통해 바라 본 북한 사회의 변화

눈에 보아도 가는 허리와 S라인을 강조한 타이트한 의상이 여성의 몸매를 돋보이게 하고 그녀는‘나이스 바디’라 흥얼대며 자신의 몸매를 한껏 뽐내고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서 깨어난 그녀는 본래의 뚱뚱한 몸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쉰다. 이는 한 여성 가수의 뮤직비디오 내용으로,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아름다운 몸매에 대한 열망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한다. 영화「미녀는 괴로워」(감독 김용화, 2000), 「금발이 너무해」(감독 로버트 루게틱, 2001),「 용의주도 미스 신」(감독 박용집, 2007) 등 여성의 몸을 소재로 한 문화콘텐츠들은 오늘날 상품화된 아름다움을 선망하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그려내고 있다. 다이어트 캠프, 식욕억제제, 다이어트 보조제, 식이요법 등 몸매에 관한 다양한 산업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심에는 이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뷰티 산업의 확장 경향은 최근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북한 여성의 몸매 관리는‘성분 좋은’잘 사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당장의 식량을 걱정해야 하는 대다수 인민들의 삶과 유리된 고위 관료의 부녀자나 상류층 여성들만이 그런 분야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에서도 몸매 가꾸기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뷰티 산업의 확장과 미적 기준의 변화

그런데‘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근대 미학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분명‘참과 거짓’이라는 진리적 범주로 답하기 어려운 명제일 것이다.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며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창작물에 대해서도‘예술 작품’이란 가치를 부여할 때 우리는 단순한 논리나 겉보기 등급으로 그것의 가치를 판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대 예술의 전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결코‘추상적인 것’을 아름다움의 범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당국이 규정하는‘아름다운 것’은 인간이 자연, 생활환경, 인민의 계급성 속에서 조화로운 존재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북한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북한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지극히 인민의 의무와 책임감을 중심으로 한 집단주의적 가치 혹은 군사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며, 대부분 사회 속에서 내면적 갈등을 겪는 인간의 화해와 극복을 극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가장 대중적 여가 활동인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기술적 측면과 더불어 내용적으로 작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의 TV 방송은 지난 2015년 2월 9일부터 표준화질(SD) 방송을 중단하고 고화질(HD) 방송으로 완전히 전환됐으며, 주민들의 사상과 교양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 제작에서 흥미와 재미를 주기 위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오후 8시 30분에서 9시 30분까지 황금시간대에 드라마가 편성되었는데 당, 수령, 체제의 우월성만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사이의 문제, 주민들의 일상생활, 사회갈등의 해소와 같이 다양한 드라마 소재가 등장하고 있다. 물론 북한 주민들의 TV 드라마에 대한 수요와 기대치는 비밀리에 유통되는 한국 드라마 콘텐츠를 통해 이미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온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북한 여성들은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가냘픈 몸매를 선망하고 그것이 북한 사회에서 아름다움을 규정하는 한 기준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통해 아름다움을 실현하려는 여성들의 미적 욕구는 남북을 떠나 보편적인 것이지만 그것의 기준은 비공식적인‘한류’를 따라 점차 획일적인 유행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북한 사회에서 식량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힘든 난제이지만 북한은 자국 내 식량증산을 지속적으로 독려하면서 최근 들어 식량수급 상황이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대다수 북한 주민들이 누리는 경제 상황은 현저히 빈곤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식량 문제에 있어서는 1990년대의 심각한 기근 상황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굶주림을 벗어나게 되면서 북한 여성들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을 것이다. 생리적 욕구를 충족한 인간이 점차 자아를 실현하려는 욕구를 추구하는 단계로 발전하듯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추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는‘스쿼시’,‘ 요가’,‘ 에어로빅’등 소위‘S라인’몸매를 만들기 위한‘살까기’운동 프로그램은 아름다운‘몸’만들기가 더 이상 남쪽 여성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최근 북한 여성들이 선망하는 아름다운 몸에 대한 인식은 남쪽에서 흔히‘각선미’라고 부르는 군살 없이 매끈한 실루엣을 가리킨다. 흔히 뷰티 산업에서‘미용체중’이라 부르는 보기 좋은 키와 몸무게 지표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북한에서는 마른 체형이건 통통한 체형이건 간에 소위‘알 없는 다리’, ‘알통 없는 팔’이 아름다운 몸의 기준이 되곤 한다. 여기서 ‘북한식 알통’은 긴 세월 동안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단단하게 만들어진 잘 빠지지 않는 근육인데, 북한 여성들은 이것을 ‘몸매 콤플렉스’로 여긴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미적 기준의 기초에는 북한 사회를 여전히 지탱하는 틀로서 존재하는 계층구조가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의 엄연한 구별은 북한 사람들의 의식주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육, 병역, 직업 선택에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 사회는 기본적으로 계층구조에 따라 생활의 수준과 사회경제적 혜택이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남쪽의 사람들이‘명품’가방을 들고 외제차를 운전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것과 같이 북한 여성들에게 그들의 몸매는 그들의 사회적 계층을 대변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북한식 알통’은 몸매 콤플렉스

사실 북한 여성들의‘워너비(Wanna be)’몸매가 된 한국 드라마 주인공의 가냘픈 실루엣이야말로 곧 평양에 사는 지배 계층의 모습이다. 울퉁불퉁한 굴곡 없이 그저 매끈한 선을 가진 몸매는 부유한 생활과 안정된 지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실제 북한의 매체에서는 여성들의 몸매가 사회적 계층에 따라 다르게 묘사된다. 지나치게 마른 몸은 가난한 처지를 뜻하고 몸에 박힌‘알통’이 많을수록 고된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들에게‘알통’은 벗어날 수 없는 육체노동의 흔적이며 투박하고 부족한 일상생활을 상징한다.

그런데 원래 북한 사회에서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몸매를 보기 좋다고 여겼다. 심지어 마른 몸보다는 복스럽게 살찐 몸매를 선호하였고 기근과 식량 문제가 심화되자 북한 여성들은 살을 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몸은 곧 부유함을 떠올리게 했으며 넉넉한 인품을 상징하는 긍정적인 대상이었다. 2000년 대 초반만 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은 남쪽 여성들의 마른 몸에 대한 선호를‘콩순대’라고 표현했다. 콩순대는 줄을 단 콩 옆에 세워 놓는 장대를 가리키는 말로 그들이 보기에 큰 키와 마른 몸매를 가진 남쪽 여성들은 그것을 연상시켰다.

이처럼 오늘날 북한에서 남쪽 여성의 몸매라고 알려진 마른 몸을 아름답다고 인식하게 된 것은 한국 드라마의 영향과 북한 사회 내부의 느리지만 분명한 경제 구조의 변화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북한 여성들이 선호하는 아름다운 몸매는 조금씩 변화해 갔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북한 사회의 가치관 변화를 통해 남북의 문화적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다.

북한 주민들의 사고방식과 감성 체계는 이미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외래문화와의 접촉과 그것에 대한 모방을 통해 사회준법 기풍을 위반하면서도 일종의‘문화적 일탈’을 감행하는 북한 젊은 이들의 모습에서 전국적으로 등장한‘장마당’과 평양의‘고층 아파트’의 건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북한 사회 기층의 인식 변화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통’이 북한 여성들의 고된 노동과 고난을 의미하기에 그들이 매끈한 몸매를 선호하듯이, 한반도를 허리를 가르는 경계선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내부의 통제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거대한‘주름’이다. 그 주름을 제거해가는 미래의 통일 과정은 남북 주민들이 함께 공감하고 감성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표연희 한국뷰티융합연구소 연구원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디자인전공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한국뷰티융합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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