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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시대와 프라이데이
대항해 시대와 프라이데이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7.09.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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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박아르마 건양대 교수

요즘 미드(미국 드라마)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우리세대가 원조 미드족이 아니었는가 싶다. 1970, 80년대 텔레비전에서「6백만 불의 사나이」부터「브이」까지 섭렵했던 세대였으니 말이다. 그 중 알렉스 헤일리 원작의「뿌리」는 흑인노예의 목에 걸린 쇠사슬과 허공을 가르는 채찍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뿌리」는 아프리카 감비아의 주푸레 마을에 살던 만딩카 족의 쿤타 킨데와 그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이 노예라는 이름으로 떠나온 곳이 아프리카 서해안의 이른바 골드 코스트 지역이었고 흑인노예들을 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 등으로 팔아넘긴 유럽인들의 행위가 대서양 노예무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물론 한참 뒤의 일이었다.

『대항해 시대』(주경철 지음, 서울대출판부, 2008)는 ‘거의 모든 것의 해양사’다. 출간된 지 오래됐지만 해양사를 깊고 넓게 다룬 연구서로는 아직 이만한 책이 없다. 이 책은 중국이 鄭和의 원정으로 해상 팽창의 정점에 이르렀다가 돌연 내륙 국가로 돌아선 이유부터 언어와 음식의 교류와 전파에 이르기까지 정치, 역사, 문화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 중 6장은 노예무역의 기원과 역사를 경제,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에서 토지의 소유는 생산물에 대한 지배를 뜻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의 지배를 포함하는 것인데, 노예 획득 전쟁은 생산을 위한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내부에서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고 상대적으로 덜 가혹했다고 해서 인신의 소유와 판매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노예제의 비극은 대서양 노예무역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1441년 포르투갈인이 모리타니아 해안에서 소수의 주민들을 잡아들인 것으로 노예무역이 시작돼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1천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세계 각지로 팔려나갔다. 원주민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최대 20%가 선상에서 질병과 기아로 사망한다. 그들은 팔려나가기 전에 선창에서 체인에 묶여‘중간 항해’중에 죽기 십상이었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의 도착지 중 1위는 브라질 남동부이고 다음이 자메이카였다. 그 기간 동안 노예 송출 1, 2위를 다투었던 나라가 영국과 포르투갈이었다.

우리는 다니엘 디포의 소설『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이 무인도에 표류하기 전 브라질에서 노예를 이용한 담배와 사탕수수 재배로 큰돈을 번 농장주였고 흑인 노예 밀무역을 위해 기니로 가다 난파한 사실을 종종 잊고 있다. 다니엘 디포의 소설에는 당대의 노예무역과 노예의 노동력으로 농업경영을 하는 플랜테이션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배우 전도연 씨가 나온 영화「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알려진 카리브해의 섬, 마르티니크도 플랜테이션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마르티니크는 ‘상업적 목적을 지닌 회사가 경영하는 프랑스 영토’로 1635년에 식민지화가 공식화 된 이래 대규모 노동력을 요구하는 사탕수수재배를 위해 흑인노예를 대거 들여왔다. 『대항해 시대』에서는 흑인노예의 도입 이유를 저렴한 구입비용, 장기노동 용이, 질병에 대한 저항력, 기술의 보유 등으로 꼽고 있지만 흑인이 열대 기후에서 노동에 강하다는 생각은 편견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쨌든 마르티니크를 비롯한 카리브해의 섬에 강제 이주한 흑인노예들은 완전한 아프리카인도 프랑스인도, 영국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뿌리 뽑힌 삶을 살아가야 했다. 프랑스 식민지를 경험한 아프리카 태생 작가들의‘네그리튀드’운동 역시 문화적, 정신적 뿌리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과 궤를 같이 한다.

19세기에 이르러 유럽 각국은 노예무역을 포기한다. 인도, 중국의 계약 노동자들인 쿨리가 흑인노예들을 대체한다. 『대항해 시대』의 저자는 영국의 노예제도 폐지 이유를 박애주의나 이익에 대한 포기에서 찾지 않는다. 영국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주장하며 다른 곳에서 더 큰 수익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산업화와 경제적 성장이 빠른 나라가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노예무역에 굳이 의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노예무역으로 시작해 노예의 노동력으로 큰 수익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따라서 소설의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처음 만난 원주민을 노예로 복종시키고 그에게‘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게 읽게 할 유일하고 최고의 책으로『로빈슨 크루소』를 권했지만 프라이데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제외시켰다. 루소에게도 노예의 존재는 불편한 진실이었나 보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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