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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듯 닮은 남북한 도시 경관 탄생의 전말
전혀 다른 듯 닮은 남북한 도시 경관 탄생의 전말
  • 장세훈/ 동아대 사회학
  • 승인 2017.09.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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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냉전, 분단 그리고 도시화: 남북한 도시화의 비교와 전망』장세훈 지음|도서출판 알트|628쪽|30,000원

20 세기 후반 남북한 사회의 얼굴이라고 할 서울과 평양은 한 눈에 봐도 크게 달랐다. 자본주의 특유의 활기와 번잡함이 넘쳐흐르는 한편으로, 빈부격차와 사회·경제적 차별로 인해 갈등과 대립 또한 끊이지 않아 팔팔한 생명체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서울의 모습과 달리, 평양에서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 작동하는 기계와도 같이 당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주민들의 단조로운 일상생활과 획일적인 도시 풍광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두 도시에서 매우 유사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63빌딩과 유경호텔, 5·16광장(현재의 여의도공원)과 김일성광장, 세종문화회관과 인민문화궁전 등과 같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대형 건축물들을 경쟁적으로 짓는가 하면, 공습을 대비한 지하시설물과 고층 건물 옥상의 대공화기, 탱크 진입을 막기 위한 대전차 방호벽 등을 도시 곳곳에 설치하며 요새도시, 병영도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서로 다른 발전 경로를 설명하는 제3의 방식

이처럼 서로 전혀 다른 경로를 밟으며 상대방을 욕하면서도 닮아가는 남북한의 독특한 도시화 양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왕의 선행 연구들이 자본주의/사회주의 도시화 논의나 과잉도시화, 수위도시화 같은 제3세계 도시화의 이론적 자원을 적용해서 그 답을 찾으려 했지만, 제대로 해명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해답은 한반도의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한반도의 특수성에 주목한 후속 연구들도 남북한 쌍방 중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서 사태를 바라보는‘외눈박이 인식’에 갇혀 남북한의 도시화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데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20세기 후반 한반도를 휘감고 있던 냉전과 분단 상황에 주목해서 남북한 도시화 양상을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냉전과 분단이 한반도에서 서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뒤엉켜있었지만, 냉전의 해체 뒤에도 분단 상황이 이어지는 작금의 현실에서 보듯이, 둘은 별개의 논리에 따라 전개돼 왔다. 따라서 미·소를 중심으로 한 동서 냉전 상황에서의 냉전 도시화와 남북한 간의 분단 상황에서 벌어지는 분단 도시화를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냉전이 준전시적인 체제 대립의 양상을 띠었기 때문에, 냉전 시대의 도시에서는 지하 벙커와 대피 시설 등의 전시 경관이 일상적이었고,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할 목적으로 과도한 도시 개발이 이뤄졌으며, 도시 곳곳이 정해진 틀로 찍어낸 듯한 획일적인 건축물들로 채워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냉전 도시화는 전시 경관, 과잉개발, 획일화된 단조로운 경관이라는 특징을 갖는다고 할 수있다.

동서 냉전이 한반도에서 남북 대치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기 때문에, 분단 도시화는 냉전 도시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냉전 도시화의 속성을 공유하지만, 몇 가지 다른 특징을 보인다. 먼저 열전 뒤의 정전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전쟁도시, 요새도시의 속성이 보다 강했다. 또한 남북한 사회가 냉전적 체제 경쟁의 최전선에서 맞서고 있어, ‘보여주기 식 도시화’에 치중해서 초대형 초고층 건축 경쟁에 열을 올린 탓에, 사회 체제의 성격은 정반대인 데도 물리적 경관은 서로를 흉내 내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 같은 경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 제한된 자원을 집중적으로 동원하는 국가 주도적 도시화의 길을 밟아왔다. 따라서 분단 도시화의 특징으로 전쟁도시, 도시 경관의 동형화, 국가 주도적 도시화를 꼽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냉전 도시화와 분단 도시화를 잣대로 삼아 남북한의 도시화 양상과 도시 경관을 비교해서 그 차별성과 동질성을 밝히고자 했다. 냉전과 분단은 남북한 사회가 자본주의적 도시화와사회주의적 도시화라는 전혀 다른 궤도를 달리도록한 결정적 계기였다. 압축적 도시화와 주체형 도시화라는 형태로 변형시키기는 했지만, 이들은 자본주의적/사회주의적 도시화의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냉전과 분단은 남북한 도시의 이질화와 함께 동질화 및 동형화도 부추겼다. 치열한 체제 대결 과정에서 남북한 도시 모두 대내외적 과시를 위해 초대형 광장과 고층 건물 등을 잇달아 조성하며 유사한 도시 경관을 조성했다. 또한 권위주의적인 국가가 주민들의 의사는 도외시한 채 무차별적인 철거와 같은 일방적인 규제와 대규모 매스게임이나 군중궐기대회 등과 같은 대대적인 동원을 통해 주민 배제적 도시화에 박차를 가했다.

현실적 제약 때문에‘북 공식 자료’에 의존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냉전의 해체와 斷續的이나마 남북 관계의 개선은 이 같은 도시화의 흐름에 균열을 일으켜 남북한 모두에게 새로운 도시화 경로를 모색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탈냉전과 함께 경제 위기에 직면한 북한에서는 신의주, 라진·선봉 등의 특구 조성을 통해 국가가 위로부터의 전환을 시도하는 한편으로, 국가 통제가 이완된 틈을 타 주민들이 장마당을 활성화하고 사적 공간을 넓혀가는 등 아래로부터 도시화의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또한 남한에서는 신자유주의화와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탈냉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어, 한편에서는 각종 규제를 풀고 시장 논리에 따라 자유롭게 도시 공간을 개발하고 재편하려는 시장주도형 도시화가 전개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저항하며 지역공동체와 주민들이 주도해서 도시 공간과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마을 만들기 실험이나 각종 주민운동 및 공동체운동을 펼치는 시민사회주도형 도시화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이처럼 도시화의 다양한 흐름들이 맞부딪치고 있어, 그린벨트 해제나 5·16광장의 여의도공원화 과정에서 보듯이 도시화의 방향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고조돼 그 향배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남북한의 도시가 냉전 도시화, 분단 도시화의 그늘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가 냉전과 분단의 관점에서 남북한의 도시화 흐름을 비교하는 선도적인 작업이기는 하지만, 자유롭게 북녘땅을 밟을 수 없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탈북 주민의 인터뷰 자료와 북한 당국의 공식 자료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북한 도시 연구가‘소경 코끼리 만지는’격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보다 본격적인 비교 연구는 분단의 깊은 골이 좀 더 메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를 통해 냉전과 분단의 굴레에 갇힌 남북한의 도시화 흐름을 총체적으로 비교하고 탈냉전 이후의 도시화 양상을 다각도로 점검함으로써, 본격적인 남북한 도시 연구로 나아가기 위한 첫 발을 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냉전 도시화와 분단 도시화 개념을 새롭게 제안함으로써 냉전 시대 도시화의 보편성 속에서 분단 사회가 걸어온 도시화 경로의 특수성을 이론적으로 해명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남북한 도시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그 경험적 토대를 보다 든든히 하는 후속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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