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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의 시대
증언의 시대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서울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7.09.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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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서울대·국어국문학과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세월호 참사 이후 영화도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숱한 영화들이 그렇게 의미 없게 느껴질 수 없었다. 예술적이라 해도 그저 그렇고 재미있다고 해도 그저 그랬다. 한 시간 반 이상을 극장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든 일이 돼 버렸다. 캄캄하고 갇힌 곳이 싫어서였을까.

송강호 씨 주연의「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떠돌 때도 극장에 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실 약간은 뜬금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광주 5.18 때 헬기에서 총을 쏘려 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조차도 관심을 그쪽으로 돌리지 못한 채 지금 정말 급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도 같다.

광주 학살의 진실을 세상에 전한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 씨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공지영 씨의 창작집『별들의 들판』에 해설을 쓰면서였다. 그러니까 2004년경 때다. 그때 작가는 독일에 체류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힌츠페터 씨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극장은 집 앞에 있는 씨지브이 계열의‘지점’이었고 너무 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뒤여선지 퇴근 후 저녁시간인데도 상영관 안은 텅 빈 것이나 다름없었다. 광고가 끝나고 불이 어두워지고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자 멀리 1980년대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이 내려왔다. 서울에서 광주로, 한국 사태를 취재하러 일본에서 들어온 힌츠페터,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택시 운전으로 아이를 홀로 키우는 송강호, 검문으로 둘러쳐져 고립된 광주, 공수부대원들, 사찰 요원들, 시위대들, 택시운전사들, 쇠몽둥이, 기총 소사, 외침과 피와 죽음과 기록.

영화는 택시 운전사가 서양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를 빠져나오는 마지막 대목에서 할리우드 영화 같은 추격전을 보여주면서 역사적 진실에서 다소 멀어지는 듯했지만 아주 멀리 벗어났다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을 정도였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더 처절한‘기록’으로 가득 찬 영상을 숨 막힐 정도로 빈틈없이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영화는 더욱 더 예술적이라고, 그 충실한 증언적 성격 탓에 그만큼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사실, 그러했기를 바라기도 한다.

극장에서 나와 돌아오는 길에 이 영화에 겹쳐 떠오르는 소설, 작가 한강 씨의 『소년이 온다』였다. 이 소설의 에필로그에 따르면 작가가 어렸을 때 그 소년은 찾아왔다. 열살 때였다고 했다. 이 소년의 이야기를 작가는 이야기로 꼭 쓰겠다고 생각했고 그 후‘광주’에 관한 자료 더미 속을 헤매며 나쁜 꿈들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이 이야기가 쓰였다. 그렇다면 좋은 소설과 영화는 때를 기다려, 때에 맞추어 발표되고 상영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있음으로써 때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도 있다. 『소년이 온다』가 그랬다면「택시운전사」도 같은 경우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자 또 생각나는 소설 하나가 있다. 김숨이라는 작가의 장편소설『한 명』이다. 이 소설은 태평양전쟁 때의 종군 위안부 이야기다. 그냥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그때 잡혀갔다 생존해 돌아온 할머니들의 숱한 증언록들을 헤집어 그녀들의 목소리를 소설 속에 기입했다. 그녀들의 혼을 모아놓은 어떤 집합적 존재로서 지상에 마지막 한 사람 생존해 있는 종군 위안부의 깊은 내면세계를 창조해 놓았다. 소설 제목은 단 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실 소설 속에서는 공식적으로 한 사람이 남아 있을 뿐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또 한 사람이 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이고, 때문에 그녀의 존재는 또 다른 마지막 생존자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문학이 변하고 있다. 시대가 변해서가 아니라 문학이 변해서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2016년의『한 명』, 2014년의『소년이 온다』, 여기에 하나 더해 2017년 황석영의 자서전『수인』. 바야흐로 증언 문학의 시대다. 진실에 목마르던 지난 9년 동안 우리 문학은 증언을‘키웠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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