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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신은 건조하다” 모토처럼 단순한 묘비명 …
그러나 깊고 뜨거운 이론적 열정
“좋은 정신은 건조하다” 모토처럼 단순한 묘비명 …
그러나 깊고 뜨거운 이론적 열정
  • 김건우 독일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 승인 2017.09.0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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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은 지금_ 이론과 사회학으로의 길: 루만의 무덤 앞에서

루만과 1977년 사별한 그의 아내 우르술라 루만이 함께 합장돼 있는 루만의 묘지에 다녀왔다. 루만의 묘는 그의 1녀 2남 중 둘째이자, 첫 아들인 외르크 루만이 관리하면서,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가 2014년 블랑케의 『Niklas Luhmann “…stattdessen… ”』 출간을 계기로 공식적으로 공개됐다. 위치는 루만이 타계할 때까지 거주했던 오얼링하우젠 근교, 산 속에 위치한 한적하고 그리 크지 않은 공동묘지다. 루만은 아내가 자신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1977년 출간된 『종교의 기능』을 “이론보다 종교가 말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題詞와 함께 아내에게 헌정했다. 

결혼과 파슨스와의 만남

1960년 아내와 결혼한 그는 사회학 이론의 현재적인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하버드대 사회학과에서 1960년부터 61년까지 연구하게 된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파슨스에게 사회학 이론을 배우기 위해 하버드대에서 연구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 가게 된 것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파슨스를 만나게 된 것 역시 그가 하버드대 사회학과에 재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연이지, 그에게 지도받기 위해서 하버드대를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루만은 자신이 미국에 간 이유를 ‘읽고 메모를 작성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만족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파슨스를 만나기 전인 1958년 그의 첫 논문인 「행정학에서의 기능개념」과 1960년 두 번째 논문인 「행정은 경제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가?」 를 출간했고, 1964년 출간돼 그의 박사학위로 인정받은 『형식적 조직의 기능들과 결과들』을 고려할 때, 파슨스와 함께 한 시간은 이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사회학적인 관심을 이론적으로 검토하고 확장하며, 조직사회학 저서를 위한 사회학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불행히도 그는 독일로 돌아올 때, 미국에서 작성한 조직사회학 저서를 위한 메모들을 분실하면서, 귀국 후 1년을 다시 이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 할애한다.

사회적 체계이론을 향한 ‘형이상학적 파토스’

루만은 조직사회학과 관련된 여러 테마들과 개념들을 놓고 파슨스와 자주 토론했고, 그때마다 파슨스는 “아주 잘 어울린다(It fits quite nicely.)”라고 말해주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더구나, 파슨스의 서문과 함께 베버의 『경제와 사회』 1부가 1947년 The Theory of Social and Economic Organization으로 소개된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 두 이론가가 베버 사회학의 가능성과 현재성, 그 한계에 대해 직접 토론한 것은 20세기 사회학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론적인 해석의 풍성함과 난점들을 별개로 하더라도 ‘베버-파슨스-루만’이라는 사회학적인 연쇄가 가능한데, 이는 단순히 인물들의 배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념사슬(Begriffskette)’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이 사슬의 연속과 불연속은 20세기 이후 사회학 이론의 현재성의 조건을 이론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하나의 변곡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사슬이 이론의 미로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루만은 파슨스의 행위체계 이론을 그 당시 사회학이 도달한 이론의 정점이자, 사회학적인 체계이론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뒤르켐과 베버의 사회학이 근대사회의 구조적인 우연성과 복잡성, 그리고 그 고유한 합리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갖는다고 파악했던 만큼, 루만은 사회학의 고전과 전통에 기반한 파슨스의 규범적인 행위체계이론이 사회학 이론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봤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루만이 후설에 대한 논문을 쓴 것을 제외하고 하나의 논문에서 오로지 한 이론가를 다룬 세 편의 논문이 각각 뒤르켐, 베버 그리고 파슨스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굴드너가 베버와 파슨스의 관료제 이론에 대한 사회학적인 검토에서 사용한 ‘형이상학적 파토스’라는 용어를 빌리면, 사회학자로 자기규정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루만은 파슨스의 사회학과 거리를 확보하면서 파슨스의 행위체계이론이 아니라 사회적 체계이론을 구축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파토스’를 지니게 됐다. 그것은 또한 ‘이론적 열정’이기도 했다. 

열정으로서의 이론

루만의 60세를 기념한 기념논문집이 1987년 『열정으로서의 이론』으로 출간된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23편의 논문이 실린 이 논문집 서문에서 빌케는 “니클라스 루만은 자신의 고유한 이론으로 매번 놀라움을 선사하는 그런 학자다. 이 때문에, 새로 출간되는 그의 모든 책은 예측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당연히 그의 분화된 이론작업을 결합하는 주요이념들이 작용한다: 비개연적인 것의 개연성의 증가는 바로 그 본보기다”라고 하면서, “구체적인 것으로의 길은 추상화를 경유한 우회로를 요구한다. 루만은 언제나 구체적인 것을 시야에 두면서, 열정에서 이런 우회로를 갔다”고 정리한다. 그 길은 연구자에게 도래하는 길, 나타나는 길이 아니라, 연구자 스스로 가는 길이며, 구체적인 것을 향한 열정과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것, 비개연적인 것의 개연성의 증가를 관찰하기 위한 추상화를 향한 열정 모두가 요구되는 길이다. 즉, 그 길은 이중의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길이다.

루만은 자신의 이론은 전기와 후기, 즉 자기생산 및 자기지시적 체계이론으로의 전환이 가시화된 1980년대 초반 이후의 이론과 그 이전의 이론 간에는 단절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법학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그가 갖고 있던 관심사 즉, “경우들에서 사고를 하는 것, 그 경우들을 어떤 특정한 질서 안에 구축하는 것이 나의 관심사였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거대한 체계 안에 인격들, 인간들, 기대들을 구겨 넣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질서는 구체적인 것들인 사건들과 행위들을 통해서 언제나 매번 새롭게 창출된다는 것이다. 기대의 위반을 포함하는 이 사건이 사회적 체계를 구성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런 이유에서 루만은 “체계이론은 모든 경우들에 기반한 우연한 시도이며, 비록 보편적으로 개념화됐다할지라도, 비할 수 없이 옳고자 하는 요구와는 무관하다. 체계이론은 유일무이하게 옳은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역설들에 기반을 두고자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편적으로 개념화돼 있지만 우연한 사건들, 필연적이지도 불가능하지도 않은 사건들로 구축돼 있는 체계이론은 그 가능성의 조건들 뿐 아니라, 거꾸로 그 조건화의 가능성까지 묻는 이론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학 이론의 지평은 이론 자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서 작동하고 전개하는 근대사회다. 사회적 체계는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그것의 행위로의 귀속을 가능하게 하고, 의미를 현실화하며, 양적인 복잡성을 질적인 것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자신의 요소가 되는 이런 사건들의 ‘분리와 재결합의 능력의 상승’, ‘분리와 관계화 능력의 상승’을 요구하고 강제하는 사회적인 메커니즘이다. 의미가 사회학의 기본개념이 되고, 우연성과 복잡성이 근대사회의 구조와 그 진화적인 변동에 따라 역사적인 의미론을 획득하게 되는 것 역시 복잡성의 감축과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근대사회의 다이나믹과 역동적 안정성 때문이다.

사회학 이론의 역설과 우연성정식

슈미트는 새로운 학문으로서 사회학의 역설을 말한 바 있다. 사회학은 그것이 없으면 개별 인간이 사고될 수 없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개별 인간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사실적인 연관들에 관한 매우 새롭고 특수한 근대학문이라는 것이다. 루만이 “일어나는 것은 영원한 포함과 배제다”라고 할 때, 이는 다른 결합들의 가능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조건들이 끊임없이 현재화하면서 동시에 잠재화하는 이중의 운동을 말한 것이다. 진화적인 구조변화의 조건이 되는 이 이중의 다이나믹은 사회적인 것을 동일성과 주관적 의지의 담지자인 주체로 이해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인간은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다. 오직 커뮤니케이션 만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루만의 유명한 문장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슈미트가 말한 사회학의 역설은 영원한 동어반복의 굴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원하고 무한한 동어반복에도 불구하고, 또 바로 그 이유에서 자기지시라는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자, 이 순환을 단절시키는 구조를 통해서 조건화의 가능성이 되는 것은 의미라는 매체다. 사회적 체계들의 자기지시는 이처럼 의미라는 매체에서 규정되는 모든 것들의 무한한 지시연관이 출현할 때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가라는 사회학적인 문제다. 의미는 대상을 지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의미를 배제하고 동시에 포함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하다. ‘포함이 배제다’라는 역설을 사회적 체계는 의미를 현재화할 때마다 한계상황(Grenzsituation)으로 대면하게 되는데, 이는 루만에게 ‘우연성정식(Kontingenzformel)’ 이라는 의미론적 장치이자 그 기능의 문제가 된다. 우연성정식은 비개연성을 개연성으로, 무한한 정보부담을 유한한 정보부담으로 전환하는 문제이면서, 규정불가능한 우연성을 규정가능한 우연성으로 전환하는 데 중심이 된다. 새로운 상황이 지속적으로 출현할 때마다, 우연성정식은 그 문제해결을 위해서 구조적인 우연성과 ‘비개연적인 개연성’을 산출하면서 다양한 형식들로 확인할 수 있는 응축된 복잡성을 문제해결의 척도로 삼는다. 이런 식으로 문제해결의 조건을 제약하고, 그 의미론적인 구조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루만은 “우연성정식은 첨예화(Zuspitzung)라고 명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무덤 앞에서

루만의 무덤 앞에서 그 스스로 근대사회의 다이나믹을 대면하면서 걸어간 사회학으로의 길을 따라가 보았다. 근대사회를 통해 구성된 세계가 우연성과 복잡성에 대한 복수의 척도들을 요구하는 만큼, 그 길은 우연성정식의 도움으로 끊임없이 문제를 첨예화하고 의미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루만의 묘비는 생몰연도도, 슈미트의 묘비명 “KAI NOMON EΓΝΩ(이곳에 노모스를 깊이 이해한 자가 잠들다)”처럼 대체불가능한 정신사적인 대업을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고 ‘니클라스 루만과 우르술라 루만’이라는 이름만 적혀 있다. “좋은 정신은 무미건조하다”라는 말을 삶의 모토로 삼았던 루만, 그런 루만과 그의 아내가 함께 묻혀 있는 장소를 의미화하는 어떠한 수사와 보충도 필요하지 않았다.

김건우 독일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필자는  칼 슈미트와 니클라스 루만의 국가이론과 공법이론을 비교, 종합하는 작업을 통해 민주주의와 국가의 내적인 연관을 사회학적으로 조명하는 국가사회학을 연구하고 있다. 루만의 저작 『근대의 관찰들』과 『체계에서의 권력』 등을 번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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