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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론 구성하는 사상 변화 추적 …
“‘학진체제’ 등장은 한국학계 위기징후"
탈근대론 구성하는 사상 변화 추적 …
“‘학진체제’ 등장은 한국학계 위기징후"
  • 한기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국문학
  • 승인 2017.09.07 13: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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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_ ‘한국의 학술엘리트: 성격과 이데올로기’를 마치고

지난달 25일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한국의 학술엘리트: 성격과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서 개최한 학술대회로, ‘연속기획, 탈근대론 이후2’로 마련된 자리였다. 

지난 20여 년 간 한국의 학술사회를 달궜던 ‘탈근대론’의 이론적, 사상적 경험은 한국의 역사인식과 사회인식의 재구성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이 학술회의의 목표는 그러한 논의의 본격화를 위한 실마리와 촉매를 발견하려는 것에 있다. 

‘탈근대론’을 하나의 체계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사상의 물결은 분단, 냉전, 반공국가, 개발독재 등을 거치며 세계의 학술동향과 철저히 단절됐던 이전 시대의 지적 빈곤을 짧은 기간 동안 극복하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자양분을 제공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전지구적 ‘보편성’과 한국의 ‘독자적 역사 경험’을 상호 연계된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고 해석하려는 다양한 학문적, 실천적 고투들이 진행됐다. 열기가 잦아든 현재 우리는 그동안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아울러 탈근대론의 사상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새로운 발상과 인식체계를 구체화하는데 필요한 논의의 초점은 무엇이 돼야 하는지, 궁극적으로 한국의 역사경험을 독자적이면서 동시에 전지구적인 맥락에서 해석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엘리트'라는 '주체' … 역사의 재해석 및 통합적 분석에 유용

이번 회의의 키워드 ‘학술엘리트’가 엄밀하게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인지, 혹은 그 용법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용어를 고안한 것은  해석의 기준과 방법, 이데올로기의 목표와 전략을 창안했던 ‘주체’들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역사의 재해석 및 현상과 그 이면의 통합적 분석에 무엇보다 효과적인 초점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공존하면서 어쩌면 극단적 이질성과 내적인 유사성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주체들의 조우와 엇갈림을 심도 있게 파헤쳐야 한다. 그러한 날카로움이 있지 않고서는 탈근대론 ‘이후’를 사유할 지적 가능성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강명관의 논문(「‘실학’과 과거의 해석」)은 한국 국학의 최량의 성과이자 권위로서 우뚝한 ‘실학론’이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근대의 정당성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 중세 후반기 학술 경향의 해석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측면을 비판했다. 문제의 초점은 발전사관에 붙잡힌 근대의 가치로 전통사회의 가치가 ‘구속’된다는 점이다. 이럴 때 이른바 ‘실학적 사유’의 다채로운 의미화 가능성은 약화되거나 정지한다. 

이러한 강명관의 고민은 김예림의 ‘창비론’(「‘갱신’의 그늘―‘창비’라는 문제」)과도 일정한 연계성을 보여준다. 백낙청과 창비는 상당 기간 동안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를 지탱한 하나의 축이며 동시에 그 사상문화운동을 수행한 지식인 집단 전체를 상징했다. 그러나 이 집단상징으로서의 ‘창비’가 궁극적으로 누구를 재현하려고 하는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모호해진다는 것이 김예림의 통찰이다. 그가 언급한 <창비>가 보여준 재현 책임으로부터의 ‘탈각’은 시대의 사상모형을 만들고자했던 집단과 매체의 갱신되지 않는 이념적·사상적 停滯를 지적한 것이다. 가장 최근의 <창비> 기획인 ‘동아시아론’에 대한 그의 평가는 차갑다. “(<창비>의 동아시아론은) 국제정치학의 장소에도, 문화학의 장소에도, 때로는 인문학의 장소에도, 혹은 아예 현실정치의 장소에도, 잘 도착하지 못하거나 착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왜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실학론’과 ‘창비’가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역할을 수행했다면(하지만 그 구조적 유사성과 상호 침투의 양상에 대해서는 매우 정교한 향후의 분석을 요구한다!!)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와 최근의 뉴 라이트는 우파적 지배이론의 형성과 그 갱신의 파장들을 설명한다. 지주형/박지훈의 논문(「박정희 정권기의 지배적 담론과 근대성: 문화정치경제학적 분석」)은 한국에서 국가 주도 압축근대화의 내적 논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현재 한국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과 주체들의 사유체계에 대한(어쩌면 신체조직에 대한) 조사보고서다. 

다른 한편에서 정승진(「‘뉴 라이트’의 이론·사상·영향」)은 이명박/박근혜정권 탄생의 이론적 기초 가운데 하나였던 뉴라이트 분석을 통해 국가주의 혹은 우파 정치의 전략이 나름의 진화와 자기 갱신의 경로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두 논문을 연결해서 생각하면 박정희와 이명박/박근혜의 시대는 짧은 진보정권 10년을 경계로 실질적으로 이어져 있는 셈이다. ‘촛불’의 대중민주주의는 이러한 견고하고 오래된 지배의 현실과 전략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한 대안체제는 준비되고 있는가? 두 사람의 논문은 문재인정부가 박정희 이래 국가주도의 지배전략을 극복할 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에 기초한 새로운 가치의 보편화를 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환기한다. 문제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진경(「지식코뮨의 실험실: ‘수유+너머’와 그 이후」)은 자신이 몸담았던 ‘수유+너머’라는 대안적 학술공동체를 자신의 ‘기억’과 역사적 ‘해석’의 이중맥락을 통해 설명한다. 그가 사용하는 ‘지식코뮨’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 이래의 학술사상운동의 열기를 계승하면서 미래를 향한 지적 생산성에 무력했던 ‘대학’의 무능을 대체하려는 1990년 중반의 새로운 세대의 지적 갈증과 욕망의 실천의 장을 갖게 됐다는 것을 드러낸다. ‘탈근대론’의 가장 활발한 중계자이자 유통공간으서의 기능을 수행했던 집단의 학술사적, 문화사적 기능과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명료하지 않지만 ‘수유+너머’가 공부의 대중주체화, 학교를 경유하지 않는 지식습득이 가능한 것으로 입증하고 아카데미즘의 신화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을 폭로한 것만은 분명하다. 젊은 세대에게 공부가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즘이라는 규율제도의 장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한 이 운동의 다양한 영향들에 대한 추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탈근대론'의 사상지도 조망

천정환의 논문(「탈근대론과 한국 지식문화」)은 이 학술회의의 서론과 같은 글이다. 그는 ‘탈근대론’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그 시간적 성격변화를 추적하면서 1987~2016년 사이의 ‘탈근대론’을 구성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사상변화 추이를 정리, 추적했다. 이진경도 심각하게 지적했지만 천정환 또한 연구비를 매개로 국가가 학술사회를 장악하게 되는 이른바 학진체제(현재는 한국연구재단)의 등장을 한국 학계의 심대한 위기징후로 파악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가 정리한 탈근대론은 마르크스주의(사구체, 변혁론, 주체사상)의 위기-근대성비판론-파시즘 민족주의 비판론-식민지 근대성론 및 젠더 연구 등의 문제의식을 포괄한다. 이글에서 천정환은 탈근대론을 실제로 수행한 매체로 <현실과 과학>(1988), <진보평론>(1999), <문화과학>(1992), <이매진> <리뷰> <상상> <키노> <씨네21> 등의 모더니티 문화론, 그리고 <녹색평론>의 생태주의와 <당대비평>의 탈민족주의를 주목했다. 탈근대론의 사상지도가 구축된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가 남긴 탈근대 문화정치의 복잡한 쟁점을 중요한 한 장면으로 묘사하면서 이 사건을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드러낸 ‘식민주의와 보편주의 착종’의 사례로 지적한 김항의 분석을 소개한 지점이 인상적이다. 아직 현재진행형인 『제국의 위안부』 논쟁은 탈근대론 ‘이후’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혹은 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한기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국문학
연속기획 ‘탈근대론, 이후’의 기획위원이다. 『미친 자의 칼 아래서 1·2: 식민지 검열 관련 신문 기사 자료』, 『식민지 검열-제도·텍스트·실천』(공편), 『저수하의 시간, 염상섭을 읽다』(공편)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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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2017-09-08 16:50:51
기존의 과학과 종교 이론을 180도 뒤집는 혁명적인 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와 종교학자들이 반론을 못한다. 그리고 이 책이 창조의 불가능성을 양자와 시간 이론으로 입증했기 때문에 소셜댓글 ‘라이브리’는 이 책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모두 삭제한다. 이 책은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 이 책을 보면 독자의 관점, 지식, 가치관이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