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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실력
외국어 실력
  •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과학사/과학철학
  • 승인 2017.09.0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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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과학사/과학철학

함부르크 정상회담에 간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메르켈 총리와 회담할 때 독일어로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6·25때 한국에 파견된 의료지원단을 찾아 방명록에 독일어로 쓴 “여러분이 베푼 도움은 잊지 않고 있다(Ihre Hilfe bleibt unvergessen.)”는 말은 인상 깊다.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영어가 가장 뛰어났던 사람은 이승만이었을 것이다. 대통령되기 전이겠지만 그는 가끔 통역을 했다고 한다. 한번은 통역을 하다가 “이분이 지금 재미있는 농담을 했는데 나도 잘 못 알아들었지만 크게 웃어주십시오”했고 웃음 섞인 박수를 받은 연사가 기뻐했다고 한다.

떠돌아다니는 김영삼과 클린턴의 영어 대담은 재미있다. 김: “후아유?” (“하우아유?”를 잘못 발음했다). 클린턴: “아이 앰 힐러리즈 허스번드.” 김: “미투.” 이건 물론 꾸며낸 우스개 얘기다. 옛날 콜 서독 총리의 엉터리 영어농담(“미투”하니까 “미쓰리”했다는 농담)과 비슷하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영국에서 뉴스 시간에 김대중 후보의 기자 회견을 보았다. 우리는 다 알아들었어도 콩글리시라 민망했다. 한국말로 하고 통역을 시켰어야 했다. 박근혜의 프랑스말은 퍼스트레이디 때 아버지가 자랑할 정도였고 그르노블에서 연수도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지 않았다면 연수는 더 오래 계속했을 것이다. 중국어는 방송에서 배웠다지만 수준이 높을 듯하다.

베를린 봉쇄 때 1963년 서베를린을 찾아 연설한 케네디 대통령의 “나는 베를린 사람이다 (Ich bin ein Berliner.)”라는 독일어 한 마디는 너무나 유명하다. 같은 시대 드 골 대통령은 베를린에서는 연설 전문을 독일어로, 메히코 시에서는 스페인말로 하는 것을 방송으로 들었다. 유네스코 회의에서 연설한 시락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말로 했으나 독일학자 한스 요나스를 정확히 발음했고 내용도 잘 아는 것 같았다. 블레어 영국총리는 학생 때 파리에서 접시닦이하면서 배웠다는 프랑스말이 훌륭했다. 푸친 러시아 대통령은 카게베(구소련국가보 안위원회) 동독책임자를 지냈으니까 독일어를 잘한다. 메르켈 총리도 동독 출신이라 러시아말이 유창하다. 한국 왔을 때 그는 영어로 연설했다. 프랑스말 실력은 어떤지 궁금하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어, 독일어를 다 잘한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우리나라 1세대 학자들이 일본 유학을 하며 배운 외국어 실력은 놀라웠다. 쿄토3고를 졸업하고 도쿄대 법학부를 다닌 동양사학자 전해종 교수는 피난 시절 고교 독일어 강사를 했다. 그는 서강대 교수 때 국제역사학회에서 온 공문 편지를 받아 읽고 즉석에서 프랑스말로 답장을 써서 기다리던 조교에게 부치게 했다.

후쿠오카고교 을류(독일어)를 거쳐 도쿄대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고병익 교수는 해방 후 뮌헨대에서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짧은 기간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고교에서 쌓은 독일어 기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1965 년 서울에서 열린 첫 국제회의에서 보인 훌륭한 영어 덕분에 워싱턴대 초빙교수가 됐다. 파리에 출장가서도 프랑스말을 잘 알아들었다고 한국공보관이 감탄했다.

나는 5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때 문리과 대학은 일본의 고등학교 비슷한 자유분방한 학풍이었다.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영어 이외에 외국어 두 과목을 듣는 것은 보통이었다. 화학을 전공한 내가 독문과 여덟 강좌를 신청해 32학점을 땄고 영문과 일곱 강좌와 불문과 한 강좌를 청강했다. 당시에는 부전공 제도가 없었으나 생물학까지 합쳐 세 과목을 부전공한 셈이다. 요즘 학생들은 영어회화는 잘하나 제2외국어는 거의 못해 책도 못 읽으니 한심하다.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과학사·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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