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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吾不關焉
때로는 吾不關焉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대구대·경찰행정학과
  • 승인 2017.09.0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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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대구대·경찰행정학과

며칠 여유가 생겨 무더위도 피할 겸 길을 나섰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그간의 번잡함을 털어내고자 휴대폰을 끄고 인터넷도 내려두기로 했다. 어디나 존재하는 네트워크와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서 벗어나, 잠시 혼란스런 일상으로부터 단절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저런 관계에 얽매여 필요 이상으로 힘겹게 버텨온 것 인지도 모른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사에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무슨 일이든 강박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것은 아닐는지.

여행지를 여유롭게 걷다보니 요즘 사람들은 세상만사에 곧잘 신경을 곤두세우며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없는 일에도 핏대를 세워 논박하곤 한다.  교육정책과 대학입시는 이렇게 바꿔야 한다, 국가경제와 복지정책의 기조는 저렇게 해야 한다, 바람직한 인간관계와 개인의 역할과 행동은 그래야한다는 둥 의견이 난무한다. 사회적 이슈마다 인터넷은 언제나 과열이다. 자신의 의견대로 되지 않는다 싶으면 불쑥불쑥 화를 낸다. 사이버 공간에는 편견과 증오가 넘쳐나고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책무이며, 세상을 향해 깨어나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민주사회를 유지하는 데 무척 중요한 일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정부 정책과 사회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촛불의 힘으로 만들어낸 민주정권이다 보니 국민의 요구가 넘쳐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시민의 힘으로 이룬 정권이라는 생각에 너도 나도 한 마디씩 거든다. 그런데 관심이 지나치면 과잉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에는 어느새 과잉된 정치가 일반인의 무덤덤한 일상과 소시민적 평온을 압도한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세상이 곧 무너질 것처럼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 따르면 정부는 국정 철학이 빈약하고 관료들은 우왕좌왕하며, 사회 지도층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결여돼 있다. 이들의 주장은 자기 못지않게 다른 사람도 세상에 애착을 갖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지나친 태도 는 타인을 인정하고 관용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학교와 회사에서도 이런 독선적인 태도는 흔하게 발견된다.

우리 주변에는 개인과 사회 발전을 향한 선한 의지가 가득하면서 직분에 맞는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곳곳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누가 주목하지 않아도 맡은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사회가 엉망이 될 일은 좀체 생기지 않는다.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세상은 큰 탈 없이 돌아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 일이 잘못될까 봐 불안한 모양이다. 이 복잡다단한 시대에 세상사 어떻게 속속들이 알 수 있을까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내가 모르는 일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지경이다.

현대 사회에는 실상 우리가 잘 모르는 일이 지천이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생각하면, 모르는 일이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안 자체를 알지 못하거나 관련 정보가 없는 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정확하게 모르는 일, 관심이 없거나 듣고도 지나치는 일, 관심은 있으나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일도 많다. 세상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개인의 말 못할 사연도 많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나 조직과 집단이 추구하는 일 중에는 간혹 공개적으로 명분을 내세우기 곤란하거나 그것이 실제 의도와 다른 일이 드물지 않다. 어떤 일은 조급하게 판단하기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 효과를 살펴봐야 한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업무포탈을 확인하고 밀린 전자메일을 열어봤다. 실은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며칠간 밀린 업무 연락과 답장을 기다리는 사적인 메일이 잔뜩 쌓여있다. 지난 소식은 인터넷으로 보고, 몇 가지 일은 검색 엔진을 활용해 따라잡기도 했다. 애써 외면하고 관심두지 않은 며칠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더랬다. 그래도 세상은 별 일 없었던 듯 무심하고 무난하게 돌아가고 있다. 문득 이런 세상이라면 번잡한 세상사에 때로는 오불관언하더라도 무방하리라 생각해봤다.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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