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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과학자의 강의가 아름다운 이유
노과학자의 강의가 아름다운 이유
  • 최성희 기자
  • 승인 2017.09.04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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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_ 편지로 이어진 20년 간의 과학 대화

드와이트 E 노이엔슈반더(이하 드와이트) 미국 서던내저린대 교수(물리학)는 ‘과학, 기술,그리고 사회’라는 제목의 교양강의를 맡는다.
드와이트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책의 저자 다이슨에게 편지를 보내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해서 1993년 4월 6일, 학생들은 당시 일흔의 나이인 프리먼 다이슨과 강의로 함께 만나게 된다. 신간『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드와이트 E. 노이엔슈반더 엮음, 하연희 옮김, 생각의길, 2017.8)는 프리먼 다이슨과 약 3천여 학생들의 편지, 그리고 드와이트의 강의 내용으로 완성됐다.

몽상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상상하는 과학자다. 세계적인 물리학계 석학인 그는 1923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났다. 양자역학에 상대성이론을 도입해 양자역학이 전기역학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양자전기역학의 기초가 되는 일명‘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을 착안해냈다. 젊은 과학도였던 다이슨은 2차 세계대전 당
시 연합군 사령부에서 전쟁기기 개발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또래 수많은 군인들이 전쟁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다이슨은 과학자로서의 윤리적 책임감과 삶에 대한 성찰을 지녔다. 그에게 과학은 세상을 보는 여러 틀 중 하나다. 그의 그런 고민의 흔적은 저서『상상하는 세계』,『무한한 다양성을 위하여』,『과학은 반역이다』,『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등에 스며들어 있다. 과학자이기 이전에 한사람으로서의 인간이었다. 2000년 5월에는‘종교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위한 템플턴상’을 받았다. 과학과 종교는 마치 詩처럼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 중요하며 세상에 대한 경외심으로 은유의 표현을 빌려오기도 한다. 그에게 과학과 종교, 종교 간의 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재 그 자체였다. 다이슨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코넬대 출신으로 이후 코넬대, 버지니아대, 프린스턴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94년 프리스턴연구소에서 은퇴했다. 현재 그는 93세로 미국 프린스톤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 학생이 편지에 어릴 때는 과학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벅차다고 생각한다고 다이슨에게 고백한다. 아이들이 과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묻는 질문에 그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주로 학교 교육에 대한 공포를 체득한다“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한다. 다시말해 학교 교육이 오히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방해한다는 뜻이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 교육엔 반대

그는‘몽상의 물리학자’답게 학생들의 호기심을 존중한다. 그는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교육방식은 그 자체로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학생들이 기피하고 어려워하는 과학을 주입식으로 교육과정에 넣는 기존 방법은 발상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과목들은 선택과목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배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답변을 찾는 과정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모든 가능성과 의견을 존중하고 과학적 호기심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을 실천한다. 학생들에게 보낸 답장에는“질문을 해줘서 감사하다”, “맞습니다. 현상을 제대로 짚었어요”, “질문이 답변보다 더 흥미롭습니다”등의 격려를 빼놓지 않았다. 학생들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미래 사회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마지막 편지는 2014년 4월 24일의 것으로, 드와이트가 오랜 시간 강의를 진행했던 다이슨에게 보낸 감사 편지였다. 이들의 강의는 이 편지로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된다.
다이슨의 답장에는 그 자신이 직접 경험한 역사 속에서 겪은 경험이 녹아 들어있다. 과학과 기술의 전진 속도는 인간의 가치판단보다 빠르다. 원자폭탄, 수소폭탄, 유전자 조작 등 인간에게 풍요와 안락을 가져다 준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인간과 세상을 파괴했다. 그런 전쟁시대를 살았던 그로서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반성 없이 미래로 질주하는 세계가 미덥지 않았다.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뿐만이 아니다.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2014년 싱가포르의 한 컨퍼런스에서 드와이트와 만난 그는 학생들과의 강의에 참여하게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드와이트와 학생들에게 다이슨은 스승이자 친구였다. 편지로 20여 년간 수업에 함께한 다이슨은 학생들에게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사회에 대해 고찰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의 강의법은 학생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게 했다. 학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삶의 지혜를 느끼게 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어진 20년간의 긴 대화를 보며 문득 든 생각, 이런 대화와 소통이 한국의 강단에도 옮겨진다면 어떤 풍경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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