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9:05 (토)
학술대회 보고서 : ‘새만금 문제’ 화제에 올린 스페인 람사회의
학술대회 보고서 : ‘새만금 문제’ 화제에 올린 스페인 람사회의
  • 교수신문
  • 승인 2002.12.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년 11월 18일부터 26일까지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람사(Ramsar) 당사국 회의가 열렸다. 람사협약에 가입한 국가 대표들이 모여 협약 이행 상황을 보고하고 주요 현안들에 대한 결정을 하는 회의이다. 람사협약의 공식 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으로 1971년 2월 이란 람사에서 채택됐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이후 람사에 가입해 강원도 인제군의 대암산 용늪과 경남 창녕군의 우포늪을 람사습지로 등재해 놓고 있다.
람사는 물새를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 람사회의가 다루는 것은 습지의 물리적, 생물학적 양상 전반과 지역주민의 경제와 문화 등 습지를 둘러싼 생태계와 인간사회 전체다. 11일에 걸친 이번 제8회 람사 당사국회의의 본회의와 지역회의, 전문적 회의, 부수회의를 보면 주제가 온통 습지를 침해하는 개발요인들에 대한 대책과 권고, 손실된 습지생태계의 복원, 습지보전에 대한 문화의 역할, 습지보전에 대한 원주민의 역할과 원주민 권리, 문화 등등 생물학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내용들로 들어차 있다.

새만금 문제 해결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
대부분의 국제기구가 그러하듯 람사도 유럽국가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또한 표방되는 가치가 아무리 범세계적 보편성을 띤다 해도 그 보편성의 우산 아래에서 약소국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중시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제4세계라 불리는 원주민들의 경우 람사에서 그 가치를 널리 표방하고 문화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원주민들은 람사에서 표방되는 ‘대상’일 뿐이지 발언권과 의사결정권을 가진 존재들은 아니다. 한 국가의 잘못된 개발정책으로 인해 습지와 주민들이 고통받을 때에도 바로 그 국가대표가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람사 결의안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권고안을 넣기 어렵다. 원주민이 고통받는 아마존 습지파괴의 문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댐건설과 이주민으로 세계적 사례가 된 인도 나르마다강 개발사업 등에 대해 람사가 이렇다하게 역할을 한 예를 찾기 어렵다. 1999년 코스타리카에서 열린 제7회 람사회의에서는 새만금 문제가 다른나라 정부대표의 발의로 다뤄졌고 연안습지의 무분별한 개발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보호를 촉구한다는 일반적인 내용들로 마무리된 바 있다.
이번 제8회 당사국회의 때에는 아예 물밑으로 학술적 토론을 하고 연대를 모색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새만금 문제는 이번 기간 중에 알게 모르게 초점이 됐다. 람사회의의 전체 여론을 이끌어 가는 다른 한편의 핵심인 세계비정부기구(NGO)회의에서부터 ‘물밑의’ 람사회의까지 많은 사람들 입에서 세계적 규모로 파괴돼 가는 습지들이 거론됐다. 아마존 습지 파괴, 인도 나르마다강 유역 습지파괴, 그리고 한국 새만금간척으로 인한 습지파괴가 대표적이었다. 세계비정부기구회의 때에는 새만금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고, 람사회의 개막 때 이것이 공표됐으며, 폐막 때 세계비정부기구회의 대표가 다시 새만금문제에 대한 람사의 의지를 촉구했다. 심지어는 새만금개발을 추진하는 한국정부 부서가 람사회의에 국가대표를 파견한 데 대해 분노를 표시하는 문안도 있었다.
이번 람사회의에서 새만금생명학회 등이 가장 초점을 뒀던 것은 농업과 습지의 관계였다. 농업문제의 바른 해결을 꾀하면서 새만금개발을 중단시킬 방안을 찾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국제환경단체들과 각국 정부대표들을 만나 새만금개발을 통한 농업개발이 아니라 습지와 농업을 공존시키는, 그야말로 람사의 취지에 맞는 ‘현명한 이용’에 대해 논의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이번 람사회의의 주요주제가 농업과 습지의 관계였다. 이미 결의문을 위한 중간 보고문에서 소규모 영농, 자연습지의 형상에 적응하는 농업, 장기적으로 빈곤과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농업이 거론되고 있었다.

간척 문제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또한 농업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환경보존을 위해서나 현명한 이용을 위해서나 농지개발로 인해 습지를 파괴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되고 있었다. 덕분에 새만금 문제는 쉽게 공감대를 얻었다. 굳이 설명을 않아도 그들은 새만금개발이 어떤 구도인지를 쉽게 파악했다. 새만금 학술포럼은 사실상 동지적 결합의 장이었다. 새만금 문제를 계기로 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 것이다. 국가대표라는 어려운 입장에도 참석하거나, 아예 그 어려움을 무시하고 발표를 수락한 서구 대표들이 있었다. ‘국제습지’(Wetland International)라는 국제환경단체의 대표는 새만금 보존이 한국만의 과제가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 시베리아, 오세아니아가 연계된 국제적 의무사항임을 강조했다. 인도 나르마다 환경단체 대표는 세계적 규모의 환경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연대를 원했다. 일본의 수많은 단체들이 새만금과 일본 갯벌을 연계한 연대를 원했다. 한국측에서는 새만금 간척의 중단이 생태계와 경제를 넘어 사회, 문화, 지역주민의 생존권,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해당됨을 밝혔다. 새만금 문제의 해결은 한국에 국한된 사항이 아니라 세계 곳곳 사람들에게 환경과 삶이 정의롭게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줄 계기임을 밝혔다. 회의장에서는 이제는 제도화된 국제연대가 필요하다는 뜻이 저절로 모여졌다. 이 모든 것들이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의 반영이었다. 람사회의 밖에서 조용히 그 조류가 흐르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