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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과 쟁점 : 진화론의 관점에서 철학을 본다면?
동향과 쟁점 : 진화론의 관점에서 철학을 본다면?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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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이 정초한 사회생물학은 개미나 곤충들이 인간과 다름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그들의 개체간 관계와 위계질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최근 철학자들이 이 사회생물학을 수용함으로써 생물학에 화해의 손길을 내뻗고 있다. 사회생물학의 연구성과를 활용해 인간사회를 보는 인식론과 윤리학을 재점검하는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는 것.

지난 11월 30일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서 ‘진화론과 철학’을 주제로 열린 철학연구회 추계 발표회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이한구 성균관대 교수(철학)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본 철학’에서 “도덕성이란 다소 간의 자기 희생을 포함한다고 생각해온 전통적 철학자들의 견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최대 본능은 종족 보존과 번식에 있다”며 “자기 희생의 이타성은 사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종족보존의 이기성이 표현될 것일 뿐”이라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이런 생각은 사회생물학자들이 동물의 세계에서 발견한 혈연 이타성, 호혜적 이타성, 집단 이타성을 종합하면서 얻어진 결론이다.

자신의 새끼를 돌보는 것은 이타적 행위라 할 수 없으며(혈연 이타성), “네가 나의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너의 등을 긁어주겠다”는 상호 보상의 행위(호혜적 이타성)도 진정한 이타성이 아니라는 얘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성향”(집단적 이타성) 또한 “집단의 번영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노린다는 점”에서 이기성의 변형일 뿐이라고 단정한다. 이날 이 교수는 인간의 사회도 “지능이 높기 때문에 보다 정교하고 간접적인 호혜성의 체계를 구축할 뿐이지 기본적으로는 동물의 세계가 보여주는 종족보전의 움직임과 같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 교수의 이런 주장은 도덕의 본질을 좀더 현실적으로 사회생물학적인 눈으로 보자는 것, 도덕이란 모두에게 상호이익이 되는 호혜성의 체계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입장은 조심스럽게 제기돼왔지만, 이처럼 학술대회의 기조를 결정짓는 논문의 형태로 생산되진 않았다는 점에서 논쟁이 예상된다. 반대론자들은 “인간을 완전히 동물화시키는 것 아니냐,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생존과 번식만을 목표로 삼는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이 교수는 진화론적 윤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화적 요구는 진화론적 요구에 ‘플러스 알파’일 뿐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를 두고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최근 철학계의 이런 인식론적 전회의 시도가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라는 학계의 절박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랜 생활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해온 동물들의 세계에서 그 원형적 모델을 발견하고, 정교화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이렇게 볼 때, 철학과 사회생물학의 결합은 일단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열고 있는 듯하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그 동안 진화론 학계에서 있어왔던 논의들을 역사적으로 되돌아보고, 쟁점별로 부각시켜 오해를 푸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는 ‘다윈의 진화론: 철학 논의를 위한 기본 개념’에서 진화에 대한 가장 빈번한 오해들인 “변이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의문, 진화의 속도에 대한 의구심, 진보의 개념과 다윈의 관계” 등을 풀어주고 있다. 그리고 현대는 ‘통합생물학의 시대’를 맞았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분자생물학, 유전학, 생태학, 진화발생생물학을 지나 도달한 단계”인데 기본적으로 “생명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유전자의 다양성과 서식지의 다양성이 지켜질 때 생물학의 존재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장대익 서울대 강사(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는 “자연선택의 본성, 즉 선택의 수준과 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진화론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작업을 위해 필요하다”며 그동안 비판받아왔던 자연선택론을 좀더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연교 경희대 강사(철학)은 “의외로 많은 윤리학자들이 사회생물학에 기초한 진화윤리학의 의미와 가능성을 폄하하고 있다”며 결론을 “진화생물학과 윤리학의 충돌은 윤리학설의 충돌이 아니라, 세계관의 충돌”이라며 “도덕감/도덕이성, 사실/당위, 간주관성/객관성 등의 지엽적 논쟁을 그만두고 인문학의 전통을 포기하라”고 철학자들에게 요구했다.

날 발표회는 사회생물학에 기반한 진화윤리학의 이론적 정교화를 꾀한 자리였다. 생물학 분야의 생명다양성 추구와 진화윤리학이 말하는 호혜적 이타성은 상호 대화의 값진 성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형이상학의 수준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어서, 오늘날 복잡한 현실사회와의 연관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진화윤리학의 해묵은 논쟁들도 그렇게 투명하게 가닥을 잡은 것 같지 않다는 느낌도 짙다. “인간을 동물화, 단순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좀더 현실로 내려와 많은 설명용어들을 찾아내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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